행복창조(10)판사가 되지 말고 관찰자가 되자/월호스님

2013. 11. 2. 19: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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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10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하다(자동복창)

행복도 내 작품이다(자동복창)

 

실제로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 행복학 강좌를 열었습니다.

일정기간동안 우리처럼 행복행지는 비결 강좌 강의를 개설해서 진행을 했더니

강좌를 듣기 이전보다 강좌를 들은 이후에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해졌다는 거에요.

주변 상황은 하나도 안바뀌었는데

강좌 몇 주 듣는 동안 경제가 크게 바뀐것도 아니고 갑자기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경사나 이런게 생긴 것도 아닌데

들은 이후에 듣기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실증된 사실이에요

행복이라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어떤 외부의 조건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마음가짐 마음가짐의 변화로 오는 것이죠.

상황을 바꿔야만 내가 더 행복해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우매한 생각이고 아직 수다원과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

수다원과에만 진입해도 행복도 불행도 니작품이다 그런 말을 안한다고 그랬죠.

내가 이렇게 불행한 게 너때문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직 수다원과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절에 와서 3년 5년 10년 다니면서 또는 20년 30년 다니면서 수다원과에도 못들어가고 죽으면 억울 하잖아요.

절에 헛 다닌 거죠.

맨날 복이나 빌러 다니면은 그것은 아직 수다원과에도 진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물론 그것도 안다니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왜 절이라도 다니면 그 시간에 도박은 못할 것 아니에요. 최소한 어디가서 나쁜 짓은 안할 거 아니에요.

따라해보세요.

행복도 불행도 내 작품이다.

이런 마음만 먹어도 더이상 퇴보는 안한다는 거에요. 진전하면 진전했지.

내 작품이라 마음먹으면 그 순간부터 내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키를 누가 쥐게 됩니까?

내가 쥐게 되는 거에요.

아직 내가 방문은 안 열었어도 일단 키만 쥐고 있어도 마음이 어때요? 든든하죠

언제든 내 들어 갈 수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시간문제이니까 든든한 거에요.행복해 지는 거에요.

그런데 키를 남한테 쥐어놓으면 마음이 든든해요? 불안해요? 불안한 거에요

저 놈이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몰라

내 행복과 불행의 키를 저 사람이 쥐고 있어! 부처님이 쥐고 있어! 신중님이 쥐고 있어!

이것도 불안한 거에요.

왜냐 어떻게 상황이 변수가 생길 지 모르는 거거든요

내가 쥐고 있는 것만 못한 겁니다.

내가 쥐고 있으면 내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행복도 불행도 내작품이다 라는 거에 대한 철저한 신념만 있어도

이미 수다원과는 최소한 확보했다, 앞으로 진전이 있어으면 있었지 퇴보는 없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행복창조10선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아홉번째죠.

벌써 아홉번째에요.지금 하나씩하나씩 하다보니까 금방 진도가 나갔어요.

아홉번째가 뭡니까?

판사가 되지말고 관찰자가 되자

이것은 진짜 시중에서 얘기하는 판사가 되지말란 소리가 아니고

매사를 판단 다시말해서 선과 악, 나와 남, 이익과 손해

이런 분별심으로 대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 이 소리죠.

있는 그대로 볼려면 일단 분별심을 쉬어야 된다.

이게 부처님의 선가의 선사들의 가르침입니다

오늘은 다소 선적인 내용들을 다룰까 하는 데요

우리 신심명이라는 좋은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따라해보세요

至道無難 ( 지도무난 )이니

唯嫌揀擇 ( 유혐간택 )이라

但莫憎愛 ( 단막증애 )하면

洞然明白 ( 통연명백 )하리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분간하고 선택하지만 말라

증오하거나 애착하지만 않는다면

툭 트여 명백하리라

이제 아주 신심명에 나오는 첫 귀절이에요.

선가에서는 금과옥조로 여기는 게송입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않으니!

여러분들이 기왕에 불자로서 입문했으니까 불교의 지극한 도를 맛보아야 겠죠.

지극한 도를 맛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하면 되느냐

유협간택이라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 혐오한다

간택! 분간하고 선택하는 것

다시 말해서 시비분별심 이것만 안하면!유혐간택이니

단막증애하면 간택을 통해서 증애가 일어나게 되죠.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에 따라서

내 마음에 순종하느냐 거슬리냐에 따라서 애착하거니 증오하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왜 유행가 가사에도 있잖아요.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걱정괴로움 없을거야

딱 맞는 말이에요.불가에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걱정괴로움 없을거야 그게 신심명을 아마 현대어로 번역하라 그러면 제가 그렇게 번역할 것 같아요

우리의 근심걱정 괴로움 이런 것은

그 뿌리가 사랑과 미움에 있죠

사랑하는 사람은 자꾸 만나고 싶은데 내 뜻대로 자주 못만나게 되고

미워하는 사람은 좀 안만나고 싶은데 자꾸 부딪치게 되고

그래서 근심걱정괴로움이 생기는데

그런 사랑과 미움의 뿌리에는 뭐가 있느냐

바로 간택심이 있다는 거죠! 분별심

나다 남이다

옳다 그르다

이쁘다 밉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어여쁜 미녀라고 할지라도

저기 뭐야 다른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우리가 보기에 아리따운 미녀도

고라니 같은 것들이 산에서 만나면 도망갑니다.

으그 뭐 저런게 다 있어!

미녀라고 다가서지않고 그죠.그러니까 입장이 바뀌면 얼마든지 그게 바뀔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인제 고정관념 선입견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있다는 생각 여기에 매이기쉽다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인 윤리나 도덕규범이 물론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도 처음부터 있었던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우리의 사회질서를 위해서 설정된겁니다.

예를 들어서

살인! 여러분들 사람을 죽이는 것 살인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악이죠

기만! 남을 속이는 것 기만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악이죠

그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수많은 왜군들을 기만전술로 유인해서 한꺼번에 수십만명을 수장시켜 죽여버렸어요.선입니까 악입니까? 앞뒤가 다르잖아요.

아까는 살인도 악이다,기만도 악이다 했는데

이건 뭐 한두사람도 아니고 수만명 수십만명을 기만전술로 속여서 몰살을 시켜 버렸는데 선입니다 이러잖아요.

예를 들어서 얼마전에 우리 안중근의사 기념 그런 행사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해서 죽였죠.

우리 입장에서 보면은 정말 민족을 위한 의사이자 열사죠 자기 한몸을 우리 민족해방을 위해서 바친 대단한 분이시죠.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뭐에요. 암살범이자 테러범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들은 철저히 내입장에서 자기나라입장에서 보는 거에요.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빈라덴같은 사람은 미국측 입장에서 보면 악마의 화신입니다.

실제로 언론에서도 그렇게 방송하는 것을 제가 봤어요!저건 악마의 화신

그러나 성전을 주장하는 이슬람 강경파에서 보면 뭐에요,영웅중의 영웅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놓고 왜 이렇게 판단이 바뀌느냐

그것은 모두가 다 자기입장에서 판단하기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선이니 악이니 이런거를 암만 논해봐야 답이 안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이니 악이니 맞니 틀리니 옳으니 그르니 이거 따지지 말고 너나 알아라!

그래서 나온 속담이 Know Yourself! 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 그게 나온 거에요.

바깥의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서 자꾸 옳고 그르고 선이고 악이고 이런거 따지다보면

자기를 모르게 되어요.자꾸 바깥에만 눈이 가 있으니까

우리 육신의 눈은 밖으로 향해 있죠.

그러기때문에 자꾸 바깥의 것만 보고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은 육신의 눈처럼 밖으로 향해 있으면 절대 공부가 안돼요.

마음의 눈은 어떻게 달아야 돼요 까꾸로 달아야 됩니다 마음의 눈은 나를 바라봐야 되어요.

그래야 공부가 되게 되어 있어요.

제가 용화사(인천 남구 주안동 소재) 선방에 산 적도 있는데 거기서 살 때 보면

대웅법보전 앞에 원숭이가 세마리 놓여 있어요.석조상!

한마리는 입을 가리고 있고

한마리는 눈을 가리고 있고

한마리는 귀를 가리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참선을 하는 이의 마음가짐을 얘기하는 겁니다.

참선을 할려면 일단 자기의 분별심을 쉬어야 돼요.

기존의 판단하는 그런 마음들을 다 쉬어야 비로소 참선공부가 시작되지

시기할 거 다하고

분별할 거 다하고

이건 뭐 경우에 맞지 않지 않는 것이 아니냐

따져가면서는 절대 참선에 입문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다쉬고 그래서 과거의 경봉대선사같은 큰 스님께서도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와서 큰스님! 참선을 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예! 가르쳐만 주십시요?제가 하겠습니다

하기는 좀 쉽지않을거 같은데!간단하긴하지만!

그래도 말씀만 해주십시요?

그래 그럼 한마디로 요약해서 얘기해주지!

예 뭡니까?

따라 해보세요.

바보가 되거라

이 한마디에요

바보가 되어야돼요 참선을 할려면!

바보가 되어야 비로소 참선에 입문하는 거지

뭐 사량분별심으로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경우를 따지고 이건 경우가 이렇지아닌게 아니냐

이건 벌써 참선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보가 되어야 되어요. 아까 말한 입을막고 눈을 막고 귀를 막는거나 똑같은 얘기죠.

그래서 이 공부는 쌓아가는 공부가 아니라 놓아가는 공부다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쌓아가는 공부 

둘째가 놓아가는 공부

쌓아가는 공부가 뭡니까?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공부죠 지식을 쌓고 명예를 쌓고 재산을 쌓고

이게 바로 쌓아가는 공부에요 축적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쌓아가는 공부를 많이해서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생계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생사 일대사에는 도움이 안된다.이겁니다

저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석박사를 해서 박사학위를 땄어요.

석사학위는 도겐선사의 좌선관 조동동의  묵조선에 관한 논문이었고

박사학위는 고려혜심의 간화선연구 한국 간화선에 대한 논문이었어요

그러나 박사학위를 따니까 여기저기서 강의해달라고 많이 부르대요 그래서 생계에는 도음이 돼요.

어디 나가서 얘기할때도 제가 박사입니다 그러면 또 다들 아!대단한가보다하고 그럴싸해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 그래서 생사일대사가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생계와 생사일대사는 다른겁니다.

염라대왕은 결코 박사학위를 두려워하지않는다

저 사람이 죽기전에 박사학위를 땄는지 재벌로 있었는지 대통령으로 있었는지 그런 것을 묻지않는다 이겁니다.

그 사람의 행적과 그 사람의 마음공부 그 사람의 보시복덕 그것만을 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분별심을 놓는 공부! 이게 바로 진정한 불가의 공부라고 하는 것이죠! 

 

저도 처음 출가해서 행자생활을 할때는

일체 책도 못보게하고

아침저녁으로 500배씩 매일 하루에 천배를 했어요.

또 하심공부(분별심을 놓는공부)많이 하고 초발심자경문 있죠 그것만 가지고 6개월 내내보는 거에요.

그걸 달달 외웁니다, 저도 행자생활할 때는 다 외웠어요 지금 오래되어서 잊어버렸지만!

그리고서 강원에 입방을 했더니 강원에 들어갔더니

치문 1학년때는 치문경운이라는 책을 배워요

그런데 치문경운을 배우는데 하루에 석줄 넉줄밖에 안나가요 그래가지고 오늘 배운 것을 하루종일 외어야 되는 거에요.

처음에는 갑갑했죠. 야 이렇게 공부해가지고 언제 공부하나

왜냐 출가하기전에는 하루에도 책을 몇권씩보고 리포트도 쓰고 강의도 하고 엄청 바쁘게 살았어요.

하루 24시간이 정말 짧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강원에 입방해서 공부하는데 하루 석줄 나가고 내일까지 외워바쳐라

그러니까 오늘 배운 것을 계속 하루종일 외우는 거에요. 그 다음날 강의 시작할때 강사스님앞에서 외우는 겁니다.어제 배운 것을!

그래서 참 처음에는 갑갑하기도 하고 이렇게 진도를 안나가서 언제 다 공부를 하나 싶기도했는데

그렇게 한동안 한달 두달 세달 지나다 보니까 마음이 쉬어요

마음이 차분해지는 거에요, 왜냐 뭔가를 외울려면 어떻게 해야되어요.

거기에 집중을 해야 되죠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자꾸 그것만 생각해야 되죠.

그러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거에요.잡념이 줄어드는 거에요.

마음이 저절로 줄어들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분별심이 조금씩 조금씩 놓아지더라

그래서 아! 이것이야말로 출가공부의 매력이구나

그렇게 강원에서 4년동안 공부를 하고 또 선방에 갔더니

선방에서는 그나마 1년에 한꿘씩 보던 책도 못보게해요.

선방에서 책보다 걸리면 바로 참회 들어갑니다.선방에 와서 무슨 책을 보느냐고 그래가지고  모든 책을 놓고

오직 좌선 참선만 하는 거에요.참선이 뭡니까?

밖으로 향하는 시선 마음 이런 것들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선어록에 보면 방거사의 오도송이 있어요.따라해보세요.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하야,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하니,   

次試選佛場(차시선불장)이라.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로다

시방동취회하여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개개학무위하니 낱낱이 무위법을 배우니

차시선불장이라 이곳이(야말로) 부처를 가리는 장소다

선불장!멋있는 말이죠 부처를 선출하는 장소이야!국회의원을 뽑는 곳도 아니고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니고 부처를 뽑는 장소!

심공급제귀로다 마음이 공해져야 급제해서 돌아가리라

부처를 뽑는 장소인데 선출기준이 뭐냐?

심공 마음이 공해져야 급제해서 돌아가리라

이런 방거사의 오도송이 있어요.

우리 사집반때 배우는 고봉화상 '선요' 첫대목에 이게 나옵니다

저는 선요를 배우고 나중에 또 강사기 되어서 가르치면서 참 이 게송을 즐겨 외웠어요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낱낱이 무위법을 공부하니

배우는게 뭐냐하면 무위법을 공부한다에요 무위법은 유위법의 반대입니다.

유위법(인연에 따라 발생형성되는 모든 현상,즉 원인과 조건과의 결합을 통하여 현실로 나타나는 여러 현상)은 뭐에요. 아까 가르쳐드렸죠 무슨 공부? 쌓아가는 공부!

애착을 쌓고 분별을 쌓고 지식을 쌓고 명예를 쌓고 재산을 쌓고 이게 바로 유위법의 공부입니다.

그 반대는 뭐라고요? 무위법(인연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생멸의 변화를 떠나 상부불변하는 참된법)

무위법은 어떤 공부? 놓아가는 공부!

분별심을 놓고 애착을 놓고 알음알이를 놓아가서 결국 본마음 참나를 만나게되는 공부가 무위법의 공부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놓는 공부를 하다보면 이곳이 바로 부처를 선출하는 장소가 됩니다.

차시선불장!이라 부처를 선출한다 너무 멋있는 말이죠. 

여러분들 기왕에 이곳에 오셨으니전부 부처로 선출되시기 바랍니다. 부처로 선출.

그렇게 해서 부처로 선출될려면 마음이 어떻게 해야된다구요? 공해져야한다.

심공급제귀로다. 마음이 공해져야 급제해서 돌아간다.

마음이 공해진다.불교는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다 성공설이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그게 바로 마음이 공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선한것도 아니요 악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6조혜능스님의 첫 법문이 뭐였어요?

不思善不思惡 불사선불사악 正當恁麽時 정당임마시 那箇是上座本來面目 나개시상좌본래면목

선도 생각하지말고 악도 생각하지마라

그럴때 그대 본래 면목이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선이니 악이니 나니 남이니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본래면목을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본래면목을 볼려면 不思善不思惡불사선불사악하라

분별심을 놓아버려야된다

이게 바로 6조혜능 스님의 첫 법문이었죠.

여러분들도 본래면목을 보려면 놓아야되어요.

어떤 선사가 참선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본래면목!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을 가져오너라

이렇게 은사스님이 스승님이 지도를 했어요.

참선을 할려고 하는데 화두를 주죠. 화두를 줄 때

그 스승님이 부모미생전본래면목 화두를 준거에요

나는 물론이고 내 부모님이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본래 면목자리

여러분들이 태어나기 이전에 여러분의 부모도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 면목자리  

그게 바로 부모미생전의 본래면목입니다.

그래가지고 아무리 공부를 하는데 이게 뭐 알 수가 있나

도저히 공부는 안되고 머리는 뜨끈뜨끈해지고 열은 받고

원래 화두를 막 열심히 들다보면 머리에 열이 올라요.

그걸 상기(참선을 하면 머리가 아픈 병,참선을 잘못하면 생기는 병)라 그래요.

기가 상승한다

그래가지고 머리가 뜨거워지고 머리가 아파지고 심지어는 여기에 뭐가 우둘두둘 나가지고 크게 고생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화두를 머리로 잡아서 그래요.

화두는 머리로 잡는 것이 아니라 배로 다루어야 돼요.

배로 들어야 됩니다.

화두를 머리로 들면 상기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가지고 어쨌든 이 스님도 화두를 열심히 참구하다가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하루는 장터로 나갔는데 바람이나 쐬어야 되겠다하고 길거리를 저자거리를 다니다가

어떤 사람이 남자둘이서 시비가 붙어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거에요.

막 한참 싸우다가 나중에 시비가 풀렸어요.

그래가지고 둘이 앉아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데

한사람이 여보게 내가 면목이 없네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이런 소리 잘하죠

그 말을 듣고 한소식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는!

본래면목은 무면목이라

본래면목은 무면목이다.법신불자리는 고정된 모양이 없습니다.

고정된 모양이 없기때문에 어떤 모양으로도 나툴 수 있다

만약에 부처님에게 어떤 모양이 있다면 나머지는 다 부처님이 아닌것이 되는 거

그러나 고정된 모양이 없기때문에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겁니다

소부처와 말부처 돼지부처 여자부처 남자부처 얼마든지 나타 날 수있는 거에요.

그게 바로 본래면목은 무면목이기 때문에

본마음자리는 무심자리이기때문에 무심하기 때문에 어떠한 마음으로도 쓸 수 있다.

여러분들의 본래마음자리는 무심한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은 본래 선한 사람도 아니고 본래 악한 사람도 아니에요

본래 어떤 사람이다 본래 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인도 될 수있고 악인도 될 수있다

누가 선택한다 내가 선택한다

그게 바로 본래면목자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어떤 수행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좌선수행에 대한 법문을 듣고

혼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선을 하는데 공부가 안돼

그래서 안되겠다 부처님을 만나서 다시 적합한 수행주제를 받아야 되겠다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길을 걷다가 멀리서 아지랑이가 아른하다하는 걸 봤어요.

그걸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아지랑이는 (멀리서 보면)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가(보)면 잡을 수가 없다

(이것처럼) 마음(이라는 것)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있지만

그것은 인연의 소치일뿐 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죠.

애가 성적표를 잘 받아왔어 아이구 기뻐라

애가 또 밖에 가서 사고쳤어 아이고 이눔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르락 내리락 왔다 갔다하는게 마음인데

그것은 마치 저 아지랑이와 같아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있을 뿐이지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걸 터득했어요

여기에 마음을 집중하며 길을 가다가 폭포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폭포옆에 앉아 쉬면서 폭포 물거품을 보다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저 물거품과 같다

몸뚱이가 태어나는 것은 물거품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몸뚱이가 죽는 것은 물거품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아 이런 생각이 들어요.그렇죠 우리 이 몸뚱이가  이 얼마나 무상한 겁니까

일어났다 사라졌다하는 것이 마치 저 물거품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과 같다

금강경에도 나오죠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의 함(애착)이 있는 법(것)은 (마치) 꿈(과 같고) 환상((허깨비)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같(고)으며

이슬(과 같고) 또는 번개(불과)와 같다.

이 여섯가지 현상의 공통점은 뭐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을뿐

잡을려고 들면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번개를 잡을 수가 있어요 번쩍 튀고 지나가는데 탁 잡아가지고 가져올 수 없는 거죠.

물거품도 마찬가지죠 잡을려고 들면 바로 터져버려요

얼마전에 제가 티베트에 다람살라에 가서 달라이라마존자님도 뵙고 그랬는데

그 때 같이 갔던 일행중의 한 비구니 스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비구니 스님이 아직 나이도 뭐 그렇게 많이 안들고 그랬는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저도 어제 그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야! 진짜 몸뚱이가 허망한 거구나

불교에서는

죽음은 그 자체로서는 재앙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살아생전에 보시복덕을 잘 짓고 마음공부를 잘한 사람에게 죽음은 축복이고

살아생전에 마음공부도 안하고 보시복덕도 안지은 사람에게 죽음은 재앙입니다.

그런 스님같은 경우에는 살아서 복덕도 많이 짓고 마음공부도 많이 했으니까

돌아가시면 도솔천이나 도리천으로 바로 가시니까 축복이죠

그래서 오히려 어떻게 보자면 잘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허망하죠 허망하다

정말 물거품과 같은 것이구나 이거를 깨달아야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너무 애착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함부로 다뤄서도 안된다

왜냐 이 몸뚱이는 체험학습의 교재이기때문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 비구 가까이 몸을 나투어서 말씀하셨어요

이 비구 가까이에 몸을 나투신다는건 무슨 뜻이냐하면

이 육신은 저 도량에 계시면서 이 비구의 마음을 읽고 보신을 비구앞에 보냈다는 소리입니다

이 당시부터 벌써

법신(청정법신비로자나불 나고 죽는 것 더럽고 깨끗한 것,늘어나고 줄어드는 일체의 모든 변화와 현상에도 영향받지않고 변함없는 여여한 마음자리 영원불변하는 실상)

보신(원만보신 노사나불 과보와 수행의 결과 주어지는 불신, 보신이란 나의 공능,영향력, 상대방에게 각인되고 투영되어져있는 나를 일컬어 보신이라고 한다)화신(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화신이란 자기가 지은대로 받은 자기의 몸을 말하며 상대에 따라서 경우에 맞게 변하고 응하는 나의 변화하는 몸과 짓을 말함)의 개념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몸을 나투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따라해보세요.

몸이 물거품처럼 허무하고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실체없슴을 깨닫는다면

그는 능히 감각적 쾌락의 화살을 꺾으리니

죽음의 왕도 그를 보지못한다

몸뚱이의 착이 쉬고 마음의 분별심이 쉬면

저승사자도 나를 어찌 할 수가 없다

왜요 보지 못하기때문에 보지못하는데 끌고 갈 수가 없죠.

유명한 마조록에 나오는 마조도일선사일화에도 얘기했죠

옆에 있는 절의 주지스님이 40년 동안 출가한지 40년이나 됐는데

아직 마음법을 깨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저녁때 갑자기 저승사자 둘이 나타나서 가자 이러니까

그때 고민을 했죠 그래가지고 저승사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하루의 말미를 얻었습니다,

겨우 하루 그래도 이건 심한게 아니냐 갑자기 나타나서 가자 그러면 어떡하냐

하루라도 말미를 다오 그래가지고 겨우 하루의 말미를 얻었습니다.

그때 이 스님이 이런 생각을 했어요 따라해보세요.

나는 하룻동안 어떤 수행을 할 것인가!

마음만 먹고 있었지 제대로된 수행을 못하고 40년을 허송세월했는데

하룻동안 어떤 수행을 할 것인가생각한다고 생각이 되겠어요 안되는 겁니다

평상시에 연습해둬야 위기일발의 순간에 써먹을 수가 있는 거지

평상시에 연습을 안해두면 위기일발의 순간에는 막상 써먹지도 못하고 딴 생각만 나는 거에요.

사자가 들이닥치면 그런 생각

그래도 그나마 하룻동안 어떤 수행을 할 것인가 생각 한것만 해도 기특한 거에요

아니면 하룻동안 통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내 유산은 어떤 놈한테 줄 것인가

내가 없는 동안 또 혹시 우리 남편이나 마누라가 새장가 새시집은 안 갈 것인가

이런 생각만 안한 것도 기특하죠

아니면 내가 없는 동안 내 자식들은 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다 애착입니다

그런 애착이 있는한 윤회를 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

그 애착심이야말로 진정한 분별심이죠

그 분별심을 보고 끌고 가는 거는 거에요.

저승사자는 몸뚱이를 데려가지않습니다. 분별심을 끌고 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 스님이 옆에 있는 마조도일선사에게 가서 여차저차하니 저를 좀 살려주십시요.

마조도일선사께서 그렇다면 나를 믿고 내 옆에 앉아있거라

마조도일 스님 옆에 있었어요.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득달같이 어제의 그 저승사자가 마조스님이 계시는 절까지 찾아왔어요.

그런데 희안한 것이 두 스님 눈에는 저승사자가 보이는데

저승사자들 눈에는 두 스님이 안보여요. 끌고 갈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는 거죠.

공부를 잘하면 이렇게 되지만 공부를 안하면 꺼꾸로 됩니다.

저승사자눈에는 내가 보이는데 내 눈에는 저승사자가 안보여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공부를 잘해야 되겠죠 마음공부를!

마음공부를 잘하면 저승사자도 내가 볼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승사자는 나를 못봐요.

왜 내가 무심해지니까 무분별심이 되니까

저승사자가 끌고 가는 가는 것은 분별심입니다.

고정된 실체로서 내가 있다는 생각 고정관념

내다 남이다 옳다 그르다 하는 분별심

이걸 끌고 가는 거에요.

그게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분별심이 쉬면 윤회를 쉬게되는 거에요.

분별심이 있는한 윤회를 하게되는거죠.

그래서 이런 분별심을 쉬려면 화두를 잡고 공부를 해야됩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특히 참선이 핵심이 되고 그중에서도 화두를 잡는 간화선이 가장 핵심적인 공부가 되고 있어요.

따라해보세요.

여기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 워서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이 한물건이란 무엇인가?

이게 뭐로 '이뭣고'화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서산대사께서 동그라미를 그린거에요.

옛 어른은 이렇게 말했어요.

옛 부처님 나기전의 의젓한 동그라미

석가도 아직 모르는데 가섭이 어찌 전하랴

와 멋진말이죠

이름지을 길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그랬죠.

이름지을 길없고 모양 그릴 수 없기때문에

어떠한 이름으로도 붙일 수 있고 어떠한 모양으로도 그릴 수있다

저한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거에요. 악! 하지않고

그것은 악 하는 것은 많은 분들이 써먹은 방법이고

저는 방법을 바꿔서

이름붙일 수 없고 모양 그릴 수 없기때문에

어떠한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고 어떠한 모양으로도 그릴 수있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으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다

모든 모양이 원래 참다운 모양이니

소부처와 말부처 남자부처와 여자부처가

서로서로 빌리지않고도 각자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소부처라는 말 처음 들어봤죠

말부처도 있고 고양이 부처도 있고 닭부처도 있고

남자부처도 있고 여자부처도 있고 아기부처도 있고 할매부처도 있고 할배부처도 있고

왜요

일정한 이름이 없으니까

어떠한 이름으로도 부를 수있고

일정한 모양이 없기때문에

어떠한 모양으로도 나툴 수있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말 있죠.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 이렇게 풀지만

조끔 다르게 풀수도 있어요

일체는 중생이자 실유로서 불성이다

한문은 어떻게 토를 다느냐에 따라서 뜻이 완전히 바뀝니다

일체는 중생이자 실유는 불성이다

일체는 모두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동물 식물만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광물도 살아 움직이고 있고

이 지구도 살아 움직이고 있고 우주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거에요

모든 존재는 그대로 불성의 드러남입니다.

불성은 어디 내몸속의 감추어진 무엇이 아닙니다

만약 불성이 내몸속에 감추어진거라면

내몸뚱이보다 크겠어요 작겠어요.작은거지

불성은 그렇게 오종종한게 아니에요.

불성은 눈앞에 드러나 있는 모든 현실이 그대로 불성이다

내 몸뚱이와  이 본마음 이것은 다 우주도 모두 본마음 참나 자리에서 나온 겁니다.

어떤분이 아까 질문을 하셨어요.

우리는 모두 한고향 사람들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라는 말에 의미를 좀 설명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스님이 큰 스님이 계신데

절에 신도들이 오죠

신도들이 오니까 시자한테 큰 스님이

내 고향에 오신 분들이다 잘 대해드리거라

시자가 아이고 큰스님 고향에서 오신분이다 잘 대해드려야겠다

서비스를 최상(선)으로 했어요

그 다음에 얼마후에 또 신도가 왔는데

이번에도 고향에서 오는 분들이다 잘 대해드리거라

예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도 또 그래요

아이 스님 고향이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전부 오는 분마다 고향에서 오셨다고합니까?

이눔아 우리가 한고향 출신이니라

어느 고향? 본 마음 참나자리에서 왔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지만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일심에서 모든 것이 나오지만

일심은 어디서 나왔다? 본심! 본마음참나자리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공부를 3단계로 나누죠

첫째가 일심공부

둘째가 무심공부

셋째가 발심공부

일심도 무심자리에서 나온 겁니다

본심은 무심입니다.

거기서 한생각  일으켜서

중생제도의 염을 일으킨 것이 발심공부입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우리가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 아홉번째 중요한 내용이 뭐라했죠

판사가 되지 말고 관찰자가 되자

매사를 틀리다 보지말고 나와 다르다고 봐라

이렇게 보는 거에요.나와 다른 거지 저사람이 틀리고 내가 맞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도약을 할 수가 있어요 성장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따라하세요 

행불행자의 서원

부처님 감사합니다

법륜을 굴리겠습니다

행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