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보우선사의 임종게와 오도송

2014. 1. 25. 13: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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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亦不得虛 踏破家中石

回看沒破跡 看者亦已寂

了了圓妥妥 玄玄光朔朔

佛祖與山河 無口悉呑剋

 

(太古普雨禪師 悟道頌 1)

 

하나도 얻는 것 없는 곳에서

집안 돌 모두 밟았네,

돌아보면 밟을 자취도 없고

본다는 것도 이미 고요 하여라

분명하고 둥글어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데

그윽하여 광명은 빛나네,

부처와 조사 그리고 산하까지도

입 없이 모두 삼켜 버렸네.

 

 

趙州古佛路 坐斷千聖路

吹毛覿面提 通身無孔竅

狐兎絶潛蹤 翻身獅子露

打破牢關後 淸風吹太古

 

(太古普雨禪師 悟道頌 2)

 

조주에 사는 옛날의 조사

앉은 채 천성의 길 끊었네,

칼날을 바로 눈앞에 대어도

온몸엔 하나의 구멍도 없네,

여우와 토끼도 자취 감춘 듯

문득 뛰어드는 사자 한 마리

철벽같은 그 관문 때려부수니

맑은 바람 태고 적 부는 그 바람.

 

 

古澗寒泉水 一口飮卽吐

却流波波上 趙州眉目露

 

(太古普雨 示贈蔡中庵)

 

옛 시내 흐르는 차가운 물을

한입에 마시다 이내 뱉으니

도리어 출렁이는 그 물결 위에

미목도 완연해라 조주의 모습.

 

 

人生命若水泡空 八十餘年春夢中

臨終如今放皮囊 一輪紅日下西峰

 

(太古普雨 涅槃頌)

 

사람 목숨 허무해라 물거품 같아

팔십년 한 평생이 봄꿈 같구나

인연 다해 가죽푸대 버리는 이 날

한 덩이 붉은 해 서산에 지네.

 

 

白雲雲裏靑山重 靑山山中白雲多

日與雲山長作伴 安身無處不爲家

 

(太古普雨 雲山偈)

 

흰 구름 구름 속에 푸른 산 거듭 있고

푸른 산, 산 가운데 흰 구름도 많구나

해와 구름과 산은 오랜 친구여서

너희가 내 집이라 내 몸이 편안구나.

 

 

[해설]

이 게송은 太古普雨禪師의 悟道頌과 涅槃頌 等等 게송입니다.

태고보우선사는 高麗末期 高僧입니다. 고려 공민왕의 王師와 國師를 하셨으며

1346년에는 元나라에 가서 湖州 天湖庵에 주석하는 石屋淸珙의 法을 받아서

돌아옵니다. 1348년에 귀국하여 王師로 있다가 신돈이 죽자 國師가 된 겁니다.

 

悟道頌이 두 개가 나옵니다. 첫 번째 오도송은 話頭 ‘萬法歸一’을 참구하다

깨달은 오도송이고, 두 번째 오도송은 ‘趙州 無字’ 話頭를 들다가 豁然大悟한

게송입니다. 그래서 오도송이 두 개입니다.

선사가 無字 話頭을 깨달았을 때는 蔡中庵이라는 居士가 자기 집 북쪽에 栴檀園에

국사를 초청하여 주석하게 하였는데, 이곳에서 겨울을 나면서 확철대오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깨달은 후 오도송이 趙州古佛老입니다.

古澗寒泉水는 蔡中庵居士에게 悟後 경계를 게송으로 表現한 겁니다.

오도송도 오도송이지만 거사에게 준 게송이 白眉 아닙니까?

 

“옛 시내 흐르는 차거운 물을

한 입에 마시다 이내 뱉었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옛 시내 흐르는 차거운 물은 뭘 뜻합니까?

諸佛祖師의 傳承된 깨달음을 말한 겁니다. 그 전승된 깨달음도 한 입에 마시다가

이내 뱉었다는 겁니다. 이건 뭘 뜻합니까?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깨달았다 하는 것도 하나의 집착입니다.

뱉어놓고 보니

“도리어 출렁이는 물 위에

미목도 완연해라 조주의 모습.”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런 것을 波前水後의 소식이란 겁니다.

파도 치는 그 속에서 조주선사 면목이 완연하다는 겁니다. 이건 철두철미하게

깨친 자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國師, 王師도 하신 겁니다. 안목이 없으면 국사,

왕사 못합니다. 眼目은 智慧의 눈입니다. 智慧의 눈은 佛眼입니다.

 

“입에서 뱉은 물이 파도를 쳐도 조주의 모습이 완연하다”는 건 당신의 내면을

말한 겁니다. 念念이 菩提라는 겁니다. 조주는 覺을 상징한 겁니다.

나는 이 게송을 보고 춤을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하도 좋아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런 게송은 아무나 흉내를 못 냅니다. 깨침의 노래라 그렇습니다.

이런 게송은 읽기만 해도 흥이 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태고보우선사는 임제종 법맥을 잇는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初祖가 됩니다.

조계종단에서도 初祖가 되고, 태고종단에서도 初祖로 모시고 있습니다.

석옥청공선사가 임제종 법맥을 잇는 분이니까 당연한 겁니다.

태고보우선사는 중국에 있을 때 중국 황제를 위한 開堂說法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큰스님인가는 알 수가 있습니다. 타국에서 온 스님이 황제를 위해

궁중 설법을 했으니 말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중국에 가신 것도 수행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나서 認可만

석옥청공선사에게서 받았습니다. 석옥청공선사도 ‘萬法歸一’ 話頭를 參究했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인연이 묘하지 않습니까?

 

태고보우선사는 저서로는 太古和尙語錄 2권과 太古遺音 6冊이 있습니다.

그리고 太古庵歌가 유명합니다. 태고암가는 증도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소개한 겁니다. 많이들 보시고 전하십시오.

 

화옹 이계묵 거사님 글입니다

 

 

 

 

 절 대 행 복 /  법정스님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운 사람 /  법정스님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