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몸, 깨달음의 마음 /혜천스님

2014. 2. 26. 20: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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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스님설교 (불기 2558년 2월 23일 서기 2014년 2월 4주) 

깨달음의 몸, 깨달음의 마음  

 

 

 

오늘은 공지사항을 먼저 말씀드리고 강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3월 1일부터 100일 예정으로 도보순례 행각을 합니다. 100일 동안 그저 꽃을 따라서 물을 따라 사람을 따라서 걷고 걸을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배낭을 메고 갔는데 그저 이번에는 배낭, 텐트도 없이 그저 걷습니다. 발병이 안 나면 100일 동안 아마 걷게 될 거예요. 우리 선우님들이 발병이 안 나도록 많이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100일간은 내가 여기에 없으니까 법회를 하지 못합니다. 법회를 하지 못하니까 지난번 했듯이 글을 내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리 문혜선우님을 통해서 글을 보냈는데 이제 문혜선생님 학기가 시작이 되니까 문혜선생님은 할 수 없을게고 이번에는 우리 연해님을 수신자로 해가지고 글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깨달음의 몸, 깨달음의 마음』 입니다.


「깨달음의 몸, 깨달음의 마음」이게 오늘 주제예요. 오늘 강론의 내용은 지난번에 한 「매순간의 앎, 매순간의 깨달음」 그리고 그 앞에 했던 「탁발에서 만난 스승」 그것하고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탁발에서 만난 스승」을 이야기 했던 것은 「매순간의 앎, 매순간의 깨달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것을 한 것이고 「매순간의 앎, 매순간의 깨달음」을 이야기한 것은 「깨달음의 몸, 깨달음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예요.


불교는 오랫동안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가 어떤 사회일까요? 나는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는 다섯 가지 권리를 누리고, 다섯 가지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삶과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일까요? 생명, 평화, 평등, 정의, 인권 이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권리를 누리는 삶. 이 다섯 가지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바로 이것이 불교가 지향하는 세계, 즉 불국토입니다. 불국토(佛國土)라고 하는 것이 다른 세계가 아니에요. 생명이, 평등이, 평화가, 정의가, 그리고 인권이 살아 있는 세계죠.


그런데도 애석하게도 부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신지 2500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그런 삶과 그러한 사회가 건설되지 못했죠. 누구나가 불안해하는 이상한 사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살처분된 오리와 닭이 2백만 마리가 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삽니다. 이 지구상 70억 인구 중에 조류인플루엔자로 일 년에 죽는 사람은 백 명도 되지 않아요. 대한민국에서 해마다 법석을 떨지만 조류인플루엔자로 죽은 사람이 한명이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동차 사고로 일 년에 죽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자동차 사고로 다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일 년에 수천 명이 됩니다. 다치는 사람은 수십만이 되겠죠.


내가 견문이 넓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자동차로 인해서 죽고 다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해서 자동차를 폐기처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본 적도 없고... 담배로 인해서 술로 인해서 병들고 죽는 사람도 수 없이 많죠. 그러나 담배를 파묻었다는 말은 없고 술병을 깨트렸다는 말도 없죠.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그렇게 법석을 떨고 호들갑을 떨면서 멀쩡한 생명을 생매장을 하면서도 그보다 더 해가 큰 자동차는 폐기하지 않고 담배와 술은 없애지 않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기가 쉽습니다. “자동차 없이 어찌 살까?” 우리는 이 땅위에서 자동차를 타고 누빈지 백 년도 안 되었습니다. 그것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그 위험을 감내하고 있는 거죠. 자동차가 안전해서 타는 것은 아닙니다. 편리함 때문에 그 위험을 감내하는 거죠. 그런데 조류인플루엔자는 감내하려고 하지 않죠. 오리나 닭을 죽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리와 닭도 인간과 같이 생명체라는 거예요. 인간도 이 지구상에서 오리와 닭과 같은 하나의 생명일 뿐이에요. 단지 인간이 우월하게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 힘을 행사하는 것뿐이죠. 오리와 닭을 200만 마리나 죽이는데 아무 망설임이 없는데 인간이라 한들 죽이는데 무슨 망설임이 있겠어요. 히틀러가 수백만 명의 사람을 몰아죽일 때, 우리가 오리와 닭을 죽일 때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우리 가슴에 꽂히게 되어 있습니다.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는 모든 생명이 자기 생명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입니다. 아직 우리는 그런 사회를 이룩하고 있지 못하죠.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시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죠. “아난다야! 때 아닌 때 사라나무가 꽃을 피우고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에 대한 참다운 공양이 아니다. 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그것이야말로 나에 대한 참다운 공양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아난다존자에게 마지막하신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 도착했을 때 쿠시나가라는 사라나무의 숲이었죠. 그때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었는데 사라나무는 흰 꽃을 가득 피웠다고 하죠, 하늘에서는 울려 퍼지고. 부처님은 그러한 것은 나에 대한 공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나에 대한 공양이라고 했죠.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한 장의 설계도를 주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한 장의 설계도는 이 땅위에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불국토를 세우라는 것이죠. 2500년 동안 그 불국토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2500년 이라고 하는 긴 세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직도 우리는 그 세계를 세우지 못했을까요? 두 가지의 문제죠. 첫째는 사실을 보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었고, 두 번째는 사실을 보는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을 보는 방식이 잘못되어져 있으니까, 사실을 보는 눈이 가려져 있으니까 이 땅위에 현실을 보면서도 눈감고 그것을 외면했던 거죠.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2500년 동안 수행을 한다고 해왔지만 그 수행은 실제의 행위나 실제의 수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관념의식속의 뇌전기화학적 신호만 탐닉했던 거죠.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는 분리할 수도 없습니다. 환경은 그 사람의 의식을 만들고 바꿉니다. 한 사람의 의식과 많은 사람의 의식은 환경을 바꾸고 마는 거죠.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열린 삶과 열린사회입니다. 더 좋은 삶은 열린 삶이고, 더 좋은 사회는 열려있는 사회이죠. 닫혀있고 억누르고 억압하고 폐쇄하고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생명과 평화와 평등 정의와 인권이 죽은 사회는 나쁜 삶이고 나쁜 사회고 닫혀져있는 삶이고 닫혀져있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소통이라고 하는 말을 쓰죠. 소통疏通이라고하는 뜻은 그렇습니다. 소疏라고하는 말은 튼다는 뜻이죠. 통通이라고하는 것은 연다는 뜻이죠. 트고 연다. 그게 소통입니다.


우리가 트고 열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겁니다. 마음의 감옥에 갇힌다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의 한계성을 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죠. 부처님의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아파마나(appa-m na)입니다. 아파마나는 중국에서 무량심(無量心)이라고 번역을 했죠. 무량심이라고 하는 뜻은 한계성이 없는 무한성의 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계성에 갇히죠. 자기 마음의 한계성. 그 마음의 한계성에 갇혀서 일생을 불안 속에서 살죠. 아마 일생을 불안 속에서 산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합니다. “나는 그렇게 불안하게 살지 않는데?” 우리는 불안과 초조 속에 살죠. 그렇지 않은가요? 불안과 초조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를 쓰고 명예를 얻으려고 하고, 기를 쓰고 권력을 얻으려고 하고, 기를 쓰고 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불안과 초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돈 많다는 삼성회장 이건희도 불안과 초조 속에 긁어모으려고 하지요.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은 권력이 누수가 될까봐 불안하고 초조하죠. 왜 불안하고 초조할까요? 혹시라도 내가 이 사회에서 도태될까봐 불안하고 초조하죠. 대한민국에 안전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없는 사람은 없어서 불안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없어질까 봐 불안하죠. 내가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헤매다가 물이 없어서 탈수로 죽었죠. 이 땅위에 이 지구위의 4분의 3이 물인데 말예요. 어떤 사람은 사막에서 1리터의 물이 없어서 죽죠. 그 사람에게는 이 지구상에 한 방울의 물도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죽은 이유는 한 방울의 물도 없어서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구에는 한 방울의 물도 없는 거예요. 그 물을 마실 수 없으면 그 물은 없는 거예요. 그 물을 마실 수 있을 때만이 그 물은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가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래서 누구나 말은 안하지만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그 불안이 있습니다. 그 불안이 있는 것은 생명과 평화와 평등 정의와 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것이 보장이 되려면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야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한 영원히 그러한 세계가 이 땅위에 존재하겠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우리는 안락할 수 있습니다.이 땅위가 불국토 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한계성이 없는 무량심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무량심은 깨달음의 몸이고 깨달음의 마음입니다. 무량심이 없는데 살불살조(殺佛殺祖)*주1를 이야기하고 깨달음을 이야기 한들 사막에서 한 방울의 물이 없어서 탈수로 죽는 그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내 마음을 무량심으로 바꾸려면 무량심으로 바꿀 수 있는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됩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넘쳐흐르는 강물도 한 방울도 마실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바꾸는 방식은 수행입니다. 그 수행은 전기화학 신호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 들숨 날숨을 관찰하십시오. 들숨에서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공경하고 생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시고, 날숨에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애심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고 했어요. 자애심이 없으면 설사 깨달았다고 외친다 하더라도 그건 뇌의 전기화학적 신호일 뿐이에요.


자애심은 곧 무량심은 한 갈래입니다. 무량심은 네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부처님은 이야기 하셨죠. 사랑으로써 모든 생명과 공감하는 마음, 모든 생명의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 모든 생명의 기쁨을 공감하는 마음, 어떤 생명도 차별하지 않는 마음 네 가지이죠. 우리가 마음속에 차별심만 없어도, 우리가 마음속에 다른 생명의 기쁨을 함께 해 주는 마음만 있어도.


어제 한겨레신문에 보니까 기러기 아빠 기사가 실려 있었어요. 아내와 아이를 캐나다에 유학을 보냈는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아빠 여기는 한국과 달라! 한국에서 교실 복도에서 넘어지면 얘들이 다 웃어. 그런데 여기선 넘어지면 모든 아이들이 달려와서 일으켜 주려고 해!” 우리는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웃죠. 누구의 불행을 보고 웃는 것은 약자를 멸시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사랑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데 무슨 깨달음이 있겠습니까?


30년 50년 명상하지 않아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줄 압니까? 그 분들이 수행하지 않아서 그렇게 탐욕스럽고 그렇게 몰인정한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무량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량심은 한계성이 없는 무한성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한계성을 넘어서야 됩니다.


나는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한계성과 가능성과 무한성. 무량심은 한계성이 없는 무한성의 마음. 이것을 이해하면 한계성과 가능성과 무한성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게 됩니다. ‘아니 나는 한계성이 없는 무한성의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시면 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뭐 하실 생각 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내가 대통령이 되면 뭘 바꾸겠다! 이런 생각 하지 마세요. 내가 나중에 도통하면 세상을 신통력으로 바꾸겠다! 하는 이런 자기기만적인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살지 않습니까? 결혼할 때 아내에게 무어라고 거짓말 했습니까?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면 됩니다. 그 약속을 지키면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거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 내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부터 시작하십시오. 아니 지금 당장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아까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겠습니다. 조용히 앉으십시오. 앉아서 들숨에서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공경하고 생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날숨에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시면 그게 수행입니다. 처음부터 한계성이 없는 무한성의 마음인 인간은 없어요. 배우고 익히고 숙달시키는 겁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면 늡니다. 봄날에 꽃씨를 뿌리면 그 작은 씨가 싹이 돋고 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않던가요?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는 없어요. 내가 하지 않는 한, 내가 행동하지 않는 한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사회는 없습니다. 불국토를 부처님이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불국토를 만들려고 노력해야죠.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100일간은 법회를 하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다리하고의 전쟁을 선언을 했어요. 내 다리가 이기나 내 마음이 이기나. 분명한 건 하나입니다. 다리가 이기든 마음이 이기든 그 자는 같은 자라는 거예요. 다른 것이 아니고.

 

자 다함께 합장하시죠.


 

우러러 온 법계에 충만하신 부처님. 바우또와*주2 불자들이 부처님을 찾아서 이곳에 함께 모였사옵니다.

남쪽에는 꽃소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저희 삶에도 봄날의 꽃소식처럼 새로운 소식이 전해져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언제나 봄날에 따스한 햇살처럼 저희가 가는 길에도 항상 햇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저와 저희 가족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평화와 평등과 정의를, 인권을 누리기를, 생명의 권리를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 ()

 

 

혜천스님 - 초기불교전공  보리도량

 

♥남은 인생 이렇게 살다 갑시다♥

 

사랑하는 울님들이시여!
우리네 人生길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가시밭 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세대가 걸어온 人生 여정은
왜 그리도 험난했고 눈물로 얼룩진
한(恨)많은 세월이었나요.

 
찢어지개도 가난한 이땅에 태어나
새파랗게 돋아나는 새순같은 나이에
전쟁이 뭔지 평화가 뭔지도 모른체
목숨 건 피난(避難)살이 서러움을 겪었고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워
감자밥 고구마밥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며
 
그 지긋지긋한 허기진 보릿고개를
슬픈 운명으로 넘어온 꽃다운 젊은 나날들을
 
 
돌아보면 굽이굽이 눈물 겨운 가시밭길
그 길고도 험난했던 고난의 세월을
당신은 어떻게 넘어 왔는지요?

 
지금은 무심한 세월의 파도에 밀려
육신은 이미 여기저기 성한데 하나없고
주변의 아까운 지인들은 하나 둘씩
불귀의 객으로 사라지고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세월 잘 견디며
자식들 잘 길러 부모의 의무 다 하고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얽메인 삶 다 풀어 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찾아
남은 세월 후회없이 살다 갑시다.
 
 
인생 나이 70을 넘으면

이성의 벽이 허물어 지고

가는시간 가는순서 다 없어지니

남녀 구분없이 부담없는 좋은 친구 만나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가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 마음껏 다 하며

남은 인생 후회없이 즐겁게 살다 갑시다

 


한(恨)많은 이 세상 어느날 갑자기
소리없이 훌쩍 떠날적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 갈것 하나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동행해 줄 사람 하나 없으면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다 쓰고
쥐 꼬리 만큼이나마 남은 돈 있으면


행여라도 사랑 때문에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있다면 미련없이 다 떨쳐버리고

"당신이 있어 나 는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얘기할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

남은 인생 건강하게 후해없이

조용히 살다 가렵니다.

 

 

꽃 물

        테너 색소폰 / 이석화

꽃물이 들었어요 외로웠던 나의 가슴에
빨강 노랑 분홍빛에 곱디고운 사랑 꽃무늬

어서 내게로 오세요 어서 손잡아 주세요
나는 그대 남자에요

하나도 아낌없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모두 줄께요

눈물일랑 주지 말아요 아픔일랑 주지 말아요
이제는 그대만이 나에게 전부에요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꽃물든 나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마세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꽃물이 들었어요 외로웠던 나의 가슴에

빨강 노랑 분홍빛에 곱디고운 사랑 꽃무늬
어서 내게로 오세요 어서 손잡아 주세요

나는 그대 남자에요
하나도 아낌없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모두 줄께요
눈물일랑 주지 말아요 아픔일랑 주지 말아요

이제는 그대만이 나에게 전부에요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꽃물든 나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마세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