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깨달음이라는 심층 차원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2014. 4. 16. 16:51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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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기독교`라고 하면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의미하고, 이를 가톨릭과 구별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기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말이다. `기독(基督)`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중국말로 음역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점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말보다 그리스도교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리스도교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나아가 동방정교회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한국에 들어온 지 각각 200년과 10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교와 함께 한국 종교계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종교 갈등이 거의 불거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불교를 박멸하자는 주장을 펴는 그리스도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계에서 근본주의자라고 하면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국의 경우 개신교 중 근본주의자 비율이 90%를 넘는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대부분 미국 보수 교단에서 파송한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비교종교학)는 최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내고 한국 그리스도교가 심층이 아닌 표층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표층과 심층이 있다. 표층 종교의 특징은 경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종교를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이에 반해 심층 종교는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찾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는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깨달음이라는 심층 차원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만을 강조하는 표층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나 예수의 말씀 속에 감춰진 ‘비밀’을 깨닫이야 한다.

 

비밀을 깨달아 아는 것을 ‘그노시스’라 불렀다. 한문으로 이를 보통 ‘영지’라고 번역하고 영어로는 ‘knowledge’라 옮긴다. 그노시스는 앎이긴 하지만 남이 가르쳐 주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눈이 뜨여 사물의 깊은 차원을 봄으로써 ‘아하!’를 외치게 하는 앎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말로 ‘깨침’ 또는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원뜻에 가깝다. 그노시스는 불교의 ‘반야’, 곧 혜(慧) /명(明) / 지혜(智慧), 현대어로 통찰, 꿰뚫어 봄, 직관 등에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말은 그러니까 “눈을 떠서 천국이 가까이 있음을 알라” 또는 “정신 차려라. 천국이란 여기 있느니라”라는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개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리스어 ‘메타노이아’의 뜻이 ‘의식을 바꾸라’, ‘보는 법을 바꾸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좀 더 깊이 해석해서,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 우리의 의식 자체를 바꾸라. 그러면 천국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불경이든 성경이든 경전의 ‘원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수많은 필사본들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성경이나 불경에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본문을 두고는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종교간의 대화는 서로 상대에게 ‘거울을 들어 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불교인과 그리스도인이 대화를 할 경우, 그리스도인은 불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교인 역시 그리스도교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일부를 볼 수 있다.

 

from 책 "오강남의 그리스도 이야기" (MK 이휘향기자 & Yes 24 서평 참고)

 


 

    감사하는 마음이 부자를 만든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부가 생기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면 가난이 온다. 감사하는 마음은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신과 함께 있도록 해 준다. 늘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근심도 풀린다. -존 템플턴 - 정말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은 천국이 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생각을 바꿔보면 ‘모든 고난 속에는 반드시 축복이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감사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함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되리라.'
    이해인 수녀님의 글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오늘도 감사함 속에 더욱 행복한 참 좋은 날 만들어 가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