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30. 17:2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1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는 몸, 마음을 자기로 동일시 하는 생각일뿐 실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하나의 개념이고 관념일뿐 입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자기로 동일시하는 동안에는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의 몸 마음과의 자기동일시 과정을 깨닫게 되면 그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 의식의 자발적인 작용으로, 어떤 현상이 드러나면 드러난 그 현상과
동일시 하는 의식 스스로의 속성으로 인하여 자기동일시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 몸과의 자기 동일시가 이루어진 다음 그 몸이 자기라는 바탕 위에
몸을 자기로 유지 하려는 마음이 생겨 나는것입니다.
몸, 마음이 '나'라는 생각이 커져 가면서 모든 존재와 따로 분리된 내가
있다라는 경계가 강화 되면서 전선이 형성되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몸, 마음과의 동일시에서 탈동일시(이것을 이름하여 깨달음 이라고도
합니다) 될때 따로있는 '나' '너'가 본래 없고, 대상으로 있다하는 이
세상마져도 없는,
따로있는 에고도, 행위자도 없는 동시에,
한바탕 전체성인 의식만 있고 모든 존재는 그 의식의 전체적인 작용일뿐이며
또한 전체성인 그 의식의 표현 이라는 것을 그 의식 자체인 그대 스스로가
알게될 것입니다.!!
2 주시자
우리가 보는 방식은 이원성 입니다.
무엇인가를 보는 주체가 있어야 하고 또 보여지는 대상(객체)이 있어
'내가(주관) 무엇을 본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보는 나와 보여지는 대상으로 분리, 구분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주시자는,
보는 나(주관)와 보여지는 대상(객관)을 동시에 포함하는 모양없는 배경으로,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보는(아는)의식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유컨데 내가 눈앞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본다고 하면,
보는 나와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사람을 동시에 포함하는 마치 허공같은 배경 입니다.
주관과 객관을 모두 포함하는 그배경은 아무것도 없는것 같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는봄(아는앎)이 있습니다.
그 보는 봄(아는 앎)은 대상으로서(이원성) 보고 아는것과는 다른것입니다.
이원성의 앎은 대상이 있다가 사라지면 없다 라고 하지만 주시자는,
이원성인 주관또는 객관이 있을때 있다는 것을 보고 알고, 없을때에도 없다는것을
보고 아는,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보는 봄(아는앎)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객관을 포함하는 허공같은 배경(주시자)은,
처음에는 보는 나(주관)와 가까이 있는 하나의 대상만 포함하는 작고 좁게
형성되지만,
깊어질수록 그 범위가 점차 확장(의식확장)되어 온 우주를 포함하여,
전체우주를 동시에 조망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존재, 비존재를 포함한 온 우주(전체우주)가 주시자 자체인 모양없는,
마치 허공같고, 안팎없는 그대(나)안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동시에 그대(나)
아닌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시자 입니다.!! 또한 마음이고 전체의식 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주시)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주시자를 초월해 있는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깨달음은 본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보면,
이러한 주시자가 확보 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깨달음은 없습니다.
참스승은 스승이 되게 할수 있는 스승이 참 스승입니다.
또한 주시자를 확보 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공심님 까페
http://cafe.naver.com/mindhealin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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