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성중 정근,마하반야정근법?

2014. 12. 6. 10: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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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성중은 화엄경에 나오는 여러 성자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지요. 가령 60 화엄에는 수많은 불보살님 외에도 33 인의 성중들이 나오십지요. 그러한 산하대지 일체 우주에 존재하는 거룩한 화엄 수호신들을 공경하고 찬탄하는 것이 화엄성중 정근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엄성중 정근은 해동, 즉 우리나라에만 있는 정근법이라고 하지요. 그만큼 해동은 화엄신앙이 깊은 반증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중국 송대 이후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화엄의례가 있었다고 하는데, 제 개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만큼 화엄을 중시하고 화엄이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든 곳은 없다고 봅니다.
             
화엄성중과 마하반야 정근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한 생각이 일지 않으면 마하반야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화엄성중이 마하반야고 마하반야가 화엄성중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분별하는 생각이 있기에 화엄성중은 화엄성중이 되고 마하반야는 마하반야가 되는 것입니다.
   
마하반야에 관한 강의는 카페 곳곳에 광덕큰스님의 법문이나 혹은 제가 개인적으로 올려드린 글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읽어 보시고 참고 하십시요.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기에 단어 하나 하나가 풍기는 분위기나 힘이 다릅니다. 특히 근기가 깊지 못한 분들은 단어 하나 말 한 마디에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스승님들은 근기에 맞게 그 때 그 때 택법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광덕큰스님이 발견하신, 가장 보편적 밝은 염송이 '마하반야'입니다. 가령 우리가 나무아미타불~하면 아미타부처님만 출현하시나, 또 관세음보살~ 하면 관음보살만 나타나시나, 마하반야바라밀! 할 때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십니다.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가 마하반야이기 때문입지요. 그래서 분별이 잘 이는 범부들을 위해 큰스님은 진리 그 자체의 자리를 우리에게 염송을 할 것을 일러 주신 겁니다.
            
이런 부분은 큰스님이 얼마나 밝은 분인가, 또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가, 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큰스님이 그토록 밝은 분이 아니시면, 또한 자비로우신 분이 아니시었으면 그냥 다른 스승님들처럼 그런 염불만 가르치셨지, 이런 염송법을 만들지도 알려주시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普賢 09.02.27. 10:57             
00님은 자꾸 생각을 짓습니다. 내 생각을 붙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세요. 그러니 공부가 전진을 못하는 겁니다. 생각,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내버려 두세요. 망상이 밀려오든 말든 그건 그대로 놔두고 열심히 염송 혹은 독경만 하세요. 망상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 하는 생각도 망상입니다.
            
망상이 없으면 공부도 안 됩니다. 망상이 있으니 공부가 되는 거에요! 이런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망상이 일면 망상에게 '고맙다!'하고 인사드려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언제 부터인가 망상이 사라지고 아니 나타나는 걸 아실 겁니다. 모든 밝은 수행자들이 그렇게 공부했어요! 처음부터 망상 없이 한 게 아니라, 망상을 끌어안고 망상과 함께 공부한 겁니다. 그래서 그 덕분에 망상도 성불(?)하게 되었다지요...^.^ 

 

 

 첫눈 / 淸松
잿빛 하늘 그리도 우울하더니
첫눈이 하얗게 
그리움 잉태합니다,
그대 있는 곳 
내가 있는 곳
구분 없이 내려 주는 하얀 눈
첫사랑 향기처럼 
달콤함 되어
추억의 창으로 넘어갑니다.
나비가 춤추는 창 
하얀 입김으로 
살포시 그대 향한 사랑을 그려 봅니다 
* 창작 자작시 방에서 모셔온 
淸松/ 김지혜님의 멋진 작품입니다.
 

"삶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던 생전의 샬롯.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Live to the point of tears 

 

두 아이의 엄마 샬롯 키틀리가(영국),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36세 대장암 4기 진단 후, 간과 폐에 전이되어 25회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화학 요법 치료도 견뎌냈지만 끝내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블로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 굴러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Live to the point of tears.)’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카카오 Story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