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 16:43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불교와 시간 | ||
인간사회에서는 동일한 시간일지라도 사람의 감정상태에 따라 느끼는 시간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꼭 봐야할 사람을 기다리거나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 그 1분은 한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에 좋은 사람과 함께 있거나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경우 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빠른 법이다. 이제 우리는 시간개념의 절대성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원래 상대성원리는 아인슈타인이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사건의 동시성(同時性)과 같은 기본적 개념까지 비판함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다. 동시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단순한지 알아보기 위해 별의 관측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빛이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오는 데 8분 정도 걸리고, 태양계 밖의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별에서는 4년, 은하계 중심으로부터는 3만년, 그리고 우리의 은하계 밖에 있는 다른 별무리인 안드로메다에서는 2백만년이나 걸린다. 우리가 지금 관측하고 있는 안드로메다의 빛은 실제로 2백만년 전에 그 별을 떠난 빛이므로 현재의 그 별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즉 우리가 동시에 측정하는 별빛에 대한 지식은 실제로 시간적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존재의 '시초'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는 냉철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가 언젠가 순간적으로 대폭발(big bang)을 일으켰고 그 후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으며 이 팽창속도로 부터 역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가 2백억년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해서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되어 시작되었고 따라서 바로 그 누군가에 의해 종말도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가능성은 동양적 성주괴공(成住塊空)의 반복 또는 불교의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뒤받침하고 있어서 창조론자들의 아전인수격 주장보다 '시작도 끝도 없다(無始無終)'는 우주의 운명에 대한 불교적 해석에 오히려 무리가 없다고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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