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공부는 본체(本體)만을 문제시 합니다/청화스님

2015. 7. 11. 20:1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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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공부는 본체(本體)만을 문제시 합니다

 <2001. 8. 4 성륜사  청화스님 하안거 해제법문>



우리가 현재 인간존재로 해서
아까 허두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인생고해(人生苦海)라,
고생고생 받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 몸뚱이도 아팠다가, 무슨 실패를 했다가,
결국은 늙어서 죽어버린단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출가하셔 가지고서 공부하신,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신 의도가 어디가 있는가 하면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과거전생에 우리가 인간만치 밖에 업(業)을 못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태어나서도 쉴 새 없이 인생고를 느낀단 말입니다.

현대사회도 얼마나 불안스럽습니까.
지금은 사회나 현대적인 인간의 문명이 어디로 가려는지
우리가 예측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 수는 얼마나 많습니까.
또 차량 수는 얼마나 많습니까.
공해는 얼마나 심각 합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불안스럽기가 한이 없단 말입니다.

이렇게 인촌이 많이 퍼지고
차가 많고 공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할 때에
틀림없이 인간의 족속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단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그냥 삽니다.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것이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를 않습니다.

제가 8.15 해방 막 돼서 서울 올라가니까
서울 인구가 40만 정도라 그래요.
40만 정돈데, 지금 서울인구가 참 얼마입니까.
인구란 것은 가속도(加速度)로 올라갑니다.
지금 지구인구가 60억 정도라 하는데
앞으로 10년 후면 또 얼마나 인구가 더 팽창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곁들여서 인간이 받는 인생고(人生苦)는
얼마나 더 경쟁적이고 비참해 지겠습니까.

지금 여기에 젊은 남녀들이 많이 계십니다만
특히 젊은 사람들은 욕망을 좀 절제해야 됩니다.
욕망을 절제해서 인구팽창을 막는 것도
역시 인류에 대한 굉장히 지대한 봉사란 말입니다.
남녀 간에 서로 애정을 가지고 지내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존재가 금생에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일 중에
가장 최상과제가 무엇인가?
이것은 아까 명상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 인간 존재로 밖에는 안 될 정도로
좁은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확장을 시킨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을 해방을 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런 작업이 제일 중요합니다.
비단 사회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에서도
그것은 하나의 각기 우리 인간에 있어서 지상 명령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우리한테 모범을 주신 것,
또 예수가 우리한테 모범을 준 것 말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역대성인(歷代聖人)들이
우리한테 모범을 주신 것도
모두가 다 그런저런 근본적인 문제가 들어있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특히 우리 기성세대는
이미 다 가정을 구성하고 그래 버렸으니까 늦어버렸지만
적어도 젊은 세대는 결연(結緣)한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렁저렁 남녀 이성간에 욕망가지고 산다고 생각할 때는
인류란 것은 오래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더구나 지금 노령층이 얼마나 많이 불어납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전 같으면 진작 죽었을 것인데,
80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
이것도 하나의 노령화현상 아닙니까.

위대한 사람들 전기를 더듬어 보면
그 분들은 인간적인 상대적 천재일 뿐만 아니라
역시 근원적인 우주, 인생의 장래까지 내다본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석가모니께서나 또는 예수나 플라톤이나
또는 근대에 있어서는 칸트나 니체나,
음악가로해서 슈베르트나 베토벤이나
또는 미술가 조각가로해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모두가 다 보면
평생에 독신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여러분들 자녀들 낳으면
하마 자기 짝을 얻지 못할까봐서
굉장히 여러 가지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내외간 같이 결합해서 자식 많이 낳아서 살고
그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욕계중생(欲界衆生),
욕심을 못 떠난 욕계중생이
욕망 때문에 못 떠나는 것이지,
욕망은 우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이나 사회 혼란이 어디서 옵니까.
집단적인 욕심 또는 개인적인 욕심
이런 것을 못 떠난 데서 인간의 불행이 온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이 차근차근 좁아집니다.
좁아지면 좁은 마음 때문에 저승에 갑니다.
내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그런 육도란 것은
우리가 지은대로 꼭 받습니다.
우리의 행동 또는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모두가 다 우리생의 형태가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을 결정한단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아주 참 더우신데
제가 여러 말씀을 드리면 고통스러우시겠지요.
그러나 아까 말씀마따나 마음을,
누구나가 다 하루 살면 하루 살만치
마음을 열으셔야 됩니다.
마음 연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몸도 그냥 편안합니다.

마음 여는 공부가운데서
본래적인 수행법(修行法)이
이른바 참선(參禪)공부란 말입니다.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은
본체(本體)만을 문제시 합니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인 우리 마음만을 문제시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런 정도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마치 빙산의 일각 모양으로
바닷물에 잠겨있는 것은 한도 끝도 없이 크지만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는 것은
뾰쪽이 물위에 나와 있는 모서리 아닙니까.
그와 같이 쓰는 마음은 좁은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 깔려있는 마음은
얼음 산 뿐만 아니라
한도 끝도 없이 우주와 더불어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은 끝도 갓도 없는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본래 마음자리가 나온단 말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부처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서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마음과 중생과 부처가
절대로 둘이 아니고 셋이 아니란 말입니다.
꼭 하나입니다.
하나 가운데서
어떻게 마음 쓰는가,
마음을 얼마만치 우리가 넓히고 확장을 시키는가,
여기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뿐이란 말입니다.

지금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아가지고 산다고 하더라도
사람 같은 마음도 못쓰고 너무 욕심에 지나치면
그때는 짐승 같은 마음도 쓰지 않습니까.
또는 표독스러운 맹수 같은 마음도 쓴단 말입니다.
하루에도 우리 마음이 몇 번씩이나 변화무쌍합니까.
그래서 우리 마음 평탄히 평정을 가지고 본래 마음자리,
본래 마음자리가 바로 부처입니다.
따라서 본래 마음자리 거기다가
마음을 굳건히 안주 시키고 지내는 것이
참선공부입니다.

사람들이 불행스럽고
또는 그때그때 마음이 동요해서 흔들거리는 것은
우리 마음이 주체성이 없는 탓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어디다 둘 것인가?
학문에 두기도 하고
또는 여러 가지 것에 두지 않습니까.
일에다 두기도 하고
거기다가 마음을 두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상대유한적인 것에다가
우리 마음을 둔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마음의 불안을 가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 마음의 근본자리를 모르는 것 같이
어리석고도 한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금생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합니다.
비록 담박에 마음의 본래자리,
부처님 자리를 얻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설사 금생에 나와서
바른 생활을 못했다 하더라도
본래 마음자리, 불성(佛性), 자성(自性)자리는
조금도 오염(汚染)이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실망을 품을 필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은 원래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사에 나쁘게 살았다 하더라도
나쁜 버릇만 좀 붙은 것이지
근본적으로 오염이 안 된단 말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청정(淸淨)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자(聖者)의 가르침 따라서 한 생각 돌이키면
그때는 바로 성자란 말입니다.

우리 생활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초월(超越)해야 됩니다.
비약(飛躍)이라,
흔히 실존주의철학(實存主義哲學)에서도
비약이나 초월이나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상(假相)에 얽매여 있으니까
우리 실상(實相), 우리 실존(實存),
우리 본래의 고향자리로
우리 마음을 항시 비약을 시키고 초월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금생에 인간으로 사는 보람입니다.

말씀을 또 한없이 많이 하고 싶으나
여러분들이 땀을 뻘뻘 흘리시니까
제가 미안해서 말씀을 그만 줄이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절대로 청정하고 절대로 오염이 안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음 돌이키는 그때,
순간순간 영원의 자리로,
영원의 고향으로,
영원의 행복의 자리로
우리 마음을 비약을 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이번 기회에
정말로 대단히 훌륭한 깊은 공부를 하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