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생정(因戒生定) 인정생혜(因定生慧) /청화큰스님

2015. 8. 15. 19: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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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생정(因戒生定) 인정생혜(因定生慧)

 <2002. 7. 7 성륜사 정기법회>



우리 불자님들,
불교라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거짓된 나(我)를, 망령된 망아(妄我)를,
또는 거짓 가(假)자, 나 아(我)자, 가아(假我),
거짓된 나를 떠나서 참다운 진아(眞我)라, 대아(大我)라,
진아 대아는 바로 성자가 돼있는,
내가 우주요 우주가 나라는 조금도 한계를 갖지 않는
이른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런 자기 생명자체가 바로 대아․진아 입니다.

그러면 대아․진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철저한 계율(戒律)이 필요합니다.
지금 더러는 우리가 깨달음이란 것은
재주가 있고 그때그때 그냥 훌륭한 스승을 만나
돈오를 하면 될 것 아닌가.
이치(理致)는 철학적인 교리 모양으로
이치는 불교말로 하면 해오(解悟)라,
해석할 해(解)자, 깨달을 오(悟)자,
이치로 해서는 단박에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리즉돈오(理卽頓悟)라, 이치는 알 수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과거 전생부터서 지어내려온 습관성(習慣性),
우리 지금 의식 가운데는
과거 전생에나 금생에나
여러 가지 나쁜 습관성이 많이 있습니다.
이른바 습기가 많이 있단 말입니다.
이것은 단박에 녹아질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선방 들어가서
그때그때 공부도 하시고 명상도 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것도
그냥 모두가 단박에 되어버리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치로는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부처님한테 갖추고 있는 그런 무량공덕이
우리한테는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치만 알 뿐이지.

어째서 없는가 하면
그 습기, 습관성이 안 녹아 있단 말입니다.
습관성은 그때그때 화두도 참구하고 염불도 하고 명상도 하고
또는 경도 보고 또는 남한테 베풀기도 하고
이런 선근공덕(善根功德)이 쌓여져야
그래야 차근차근 습기(習氣)가 녹아진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공부를 애쓰고 하는 것은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선 첫 박스로
꼭 철저한 계행을 지켜야 됩니다.
계행을 지켜야 깊은 삼매에 들어갑니다.
깊은 명상에 들어갑니다.
먹을 것 다 먹고 세속에서 하는
그런 향락스런 짓을 다 하고서 명상에 들려고 하면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 말씀이나 도인들 말씀도
인계생정(因戒生定)이라, 인할 인(因)자, 경계할 계(戒)자,
계율로 말미암아서 생정(生定)이라,
날 생(生)자, 선정이란 정할 정(定)자,
우리가 계율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선정(禪定)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선정에 들어가야 그래야 우리 습관성이 녹아납니다.

그 사람의 근기라든가 여러 가지 상황 따라서
선정도 오래오래 들어 있어야 녹아나는 분도 있고
또는 선정을 별로 얼마 안 해도
우리 업장이 우리 습기가 녹아나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교말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생사를 초월한 그런 영원적인,
진여불성을 온전히 우리가 증득하기 위해서는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삼매에 들어야 한단 말입니다.
선정에 들어야 됩니다.

불자님들한테 저는
그때그때 육재일(六齋日) 말씀을 항시 드립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재가불자는
하다못해 육재일만이라도 지켜야 한단 말입니다.
육재일만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성불의 가망이 없습니다.
성불의 기약이 없습니다.
계율도 안 지키고 참선도 안 닦았으니
어떻게 성불 할 것입니까.

우리가 본래 부처라 하더라도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철저한 계율을 지켜야 되는데
철저히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함부로 먹지 말아야 되어요.
함부로 먹지 말아야 되고
또 한 가지는 이성간(異性間)에 너무 탐착을 말아야 됩니다.
부처님 법문이 어렵다고 생각을 말으십시오.
너무 너무..., 
탐식을 않는 것은
사실은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맑아지고
옆에 사람한테도 피해를 덜 끼치고
훨썩 좋은 것입니다.

또 이성간에도
역시 인연 따라서 같이 내외간 됐으면 같이 동기가 되어서
피차 서로 격려하고 서로 편달해서
성불의 길로 나가면 되는 것을
꼭 같이 불어서 다녀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제 아무리 좋은 정치가 생기고
제 아무리 훌륭한 국토가 생기고 한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이 이렇게 많아서는 안돼요.
인구정책은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에 영국의 멜더스라는 분이
산아제한이나 그런 문제를 내서
사람이 식량이나 그런 것을 생산할 때
이것은 산술급수적(算術級數的)인 것이고
우리 인간의 인구팽창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인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인구증가를 따라갈 수가 없다.
사실 이대로 불어나면 정말로 큰일입니다.

8․15해방된 때에 비하여
지금의 세계인구가 배가 늘었다고 그래요.
앞으로 배가 더 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차도 배가 늘어야 되겠지요.
환경오염은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인구문제는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인구문제란 문제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기여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남녀 이성간에 성욕을 절제해야 됩니다.
이것도 역시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훨썩 사실은 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불교나 보십시오.
성자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다 독신생활(獨身生活)을 권장하지 않습니까.

성인들의 행동은 모두가 다
인간의 과거나 현재나 모든 면을 통찰합니다.
우리 범부들은 그냥
우선 자기 향락적으로 자기 기분 좋으면 좋다,
이렇게 무책임하지만
성자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인구문제나 식량문제나 무슨 문제나
모든 문제를 다 예상을 해서 통찰하기 때문에
절대로 무절제한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없도록
우리한테 금욕(禁慾)을 권장합니다.
 
어떠한 가르침도 금욕이 없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가사 우리가 기독교를 두고 본다고 합시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아, 불교는 그냥 무엇 무엇을 말아라 하는
금욕하는 그런 조목이 많이 있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지 않는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독교는 사순절(四旬節)이라,
사순절은 40일 동안 예수가 광야에서
여러 가지 마구니의 시련을 받으면서 시련을 다 이겨내서
이른바 도를 깨달아서 성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헤맨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것을 추모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이 40일 동안은
사실은 원칙으로는 단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하니까 하루에 한 끼도 먹고 두 끼도 먹고
적당히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요.

이슬람교도 아무렇게나 되는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루에 다섯 차례씩이나 이슬람 성지(메카)를 향해서
참배를 해야 됩니다.
아침 3시에 일어나 한 번 하고,
해뜨기 전에 한 번 하고,
정오에 한 번 하고,
오후에 한 번 하고,
밤에 잘 때 한 번 하고,
다섯 번씩이나 메카를 향해서
땅에 대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참배를 해야 됩니다.
또 그네들 9월은 라마단 달인데
9월 달에는 온전히 한 달 동안
해 뜰 때부터서 해질 때까지 음식을 한 끼도 안 먹습니다.
다만 해가 진 뒤에야 요기를 위해서 조금 먹는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가르침이나 모두가 다
성자의 가르침은 꼭 금욕이 전제가 됩니다.
나는 믿기는 믿어도 금욕은 귀찮으니까 안해야 되겠다,
이러면 자기 손해입니다.
금욕이란 것은 자기 건강에도 좋고
가정의 화평에도 좋고
사회를 위해서나 다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마따나 인구정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묘수가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 육재일 날,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하면 육재일이 거의 해당되겠지요.
음력으로 8, 14, 15, 23, 29, 30일인데
그렇게 안한다 하더라도
그 날만은 육재일 날 지키라는 계율을 지켜야 됩니다.
그날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루에 한 끼 일종(一種)을 하고
또는 남녀부부간에도 그 날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지내고
술 먹지 않고 고기 먹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고 삼장재월(三長齋月) 그래서, 삼장재월이란 것은
석 삼(三)자, 길 장(長)자, 재계할 재(齋)자, 달 월(月)자 말입니다.
삼장재월은 정오구(正五九)라,
정월하고 5월하고 9월, 세 달에 있어서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그와 같이 육재일 날 하듯이 일종하고
내외간도 자리를 따로 해서 같이 안자고 말입니다.
고기 안 먹고 술 안 먹고
오직 부처님만 생각한단 말입니다.

정월달도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그러고, 5월달도 초하루부터 그렇게 하고,
9월달도 그런단 말입니다.
정오구월이라, 그래서 정오구월은 삼장재월 그럽니다.
보름씩이나 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재가불자도
차근차근 부처님한테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렁저렁 살고 부처님한테 가까워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진여불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 본래 생명자리인 진여불성이 빛나기 위해서는
꼭 금욕이, 절제가 따라야 됩니다.
그렇게 해가지고서 참선도 해야지
먹을 대로 먹고
이것저것 그런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 참선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선에 깊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경에 보면,
능엄경(楞嚴經)에 있는 법문입니다마는
부단음욕수선정자(不斷淫慾修禪定者),
음탕한 마음을 끊지 않고 참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증사작반(蒸沙作飯)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은 것이나 똑같단 말입니다.
모래를 삶으면 밥이 되겠습니까.
음탕한 마음 끊지 않고 욕심을 다 부려가지고서
삼매에 참선하고 선정에 들라고 마음먹으면 증사가작반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이나 똑같단 말입니다.

우리는 매서운 그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성불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 때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욕심을 더 부려서 돼지가 되고 소가 되고
잘못 살아서 지옥으로 우리가 전락되고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는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불(成佛)하는 도량(道場)으로 해서
성불하는 장소로 해서
우리 인간세상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여러 불자님들,
오늘도 상당히 더운 날인데
좀 청량하고 시원스러운 말씀을 드렸으면 좋은데
그렇게 금욕을 하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제 마음도 답답합니다만은
사실 할 수가 없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셔서
인계생정(因戒生定)하고 인정생혜(因定生慧)라,
계율로 말미암아서,
계율을 지킴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마음이 정신통일이 되고 삼매에 들고
삼매에 들어야 비로소 그때는 그야말로 우리 마음이 훤히 트여서
이른바 아집과 법집을 다 열어버리고서
이른바 망령된 나, 망아(妄我)를 떠나고, 가짜 나를 떠나서,
참다운 자기의 성품을 활연대오(豁然大悟)해서
다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최상의 행복입니다.
또는 동서 모든 성인들이
우리한테 당부하고 또 당부한 가르침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가실 때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자명(母子銘) 중에서 / 감산덕청(憨山德淸)

 

 

母子之情 磁石引鍼 (모자지정 자석인침)

어머니와 자식의 정은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듯 하지만  

天然妙性 本自圓成 (천연묘성 본자원성)

타고난 묘한 성품은 본래 그대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네.

我見我母 如木出火 (아견아모 여목출화)

내가 우리 어머니를 보니,나무에서 불이 나온 것 같아서

木已被焚 火元無我 (목이피분 화원무아)

나무는 이미 타 버렸지만 불에는 본래 ‘나’가 없다네.

生而不戀 死若不知 (생이불연 사약부지)

살아서도 그리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모르는 척 하시니

始見我身 是石女兒 (시견아신 시석녀아)

이제야 내 몸뚱이야말로 석녀가 낳은 것임을 알겠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감산스님이 50세 때 도교사원의 터를 빼앗아

황실의 공금을 유용하여 절을 지었다는 무고를 받고 귀향을 가게 되었는데,

그 귀양길에 남경에 이르러서 강가에서 마중 나온 노모와 만나게 되었다.

노모와 작별하면서 지은 모자명(母子銘)에 앞의 게송이 들어있다.

 

? 맑은 인연으로 법을 펴다가 난을 당했다.

위로 천자의 노여움을 사니 그 성안 고함소리는 벼락같았다.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당신이 만약 이 소식을 들으면 놀라서 기절하실 일이었다.

그러다가 은총을 입어 죽음을 면하고 뇌양(雷陽)으로 유배당했다.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고향을 지나게 되었는데

강가에 마중 나온 어머니를 만났다.

서로 기뻐하면서 담소했는데 우리의 음성은 맑고 밝았고

가슴 속에는 서운한 감정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 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지요?

― 죽고 사는 것이야 정해져 있지.

나 자신도 걱정하지 않는데 자네를 왜 걱정하겠나.

다만 사람들의 말이 갖가지라, 진상을 알지 못해 의문은 있었네.

 

우리는 마주 앉아 밤을 새고 나서 작별을 했다.

 

― 자네는 도로써 몸을 잘 가꾸시고 내 걱정은 하지 마시게.

이번도 자네와 오래 헤어지게 되었네.

기쁜 마음으로 가시고 뒤를 돌아보지 마시게.

 

나는 ‘천하의 어머니들이 이와 같다면

어찌 단박에 죽고 사는 마음을 다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위해 이러한 명(銘)을 지었다.  

- <감산자전>

 

 

 

 

삶이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듯이
사람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영혼의 성장을
위해 마음의 껍질을 벗어야만 합니다.

지나간 일을 이제 던져 버리십시오.
비록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을 초대한 삶에 충실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의 삶 말입니다. 덧없이 늙지
않고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 한스 크루파 《마음의 여행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