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근리와 청백리 /해월스님

2015. 9. 12. 23: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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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근리와 청백리

 

 

 

 

정승댁 부녀자들이 봄나들이를 가는데

염근리로 알려진 황희 정승의 부인은

무명 옷에 기운 옷을 입고 일행과 같이 하니

다들 말은 안해도 속으로 혀를 끌끌 찹니다.

 

더우기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펼치는데

다들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을 펴지만

황희 정승의 부인이 준비한 상에는

보리밥과 싱거운 나물 무침이 전부이니

또 한번 여러 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습니다.

 

이때 조금 늦게 일행에 합류한

고불 맹사성의 부인이 상황을 파악하고

 

“어디서 감히!

나라의 녹을 먹는 정승의 부인으로서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황희 정승과

그 부인을 욕되게 하느냐?

 

그대들이 입고 있는비단 옷과

여기 차려놓은 기름진 음식들이

바로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하고 호통을 치니 대부분 사과를 하였고

두 대감의 부인은 보리밥에 나물 무침을

맛나게 먹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여기서 염근리廉라는 말은

청백리라는 말과  의미가 비슷한데

청백리는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청렴하고 맑게 살다 간 사람을 일컬음이요

염근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청렴하고 근면하여

주위에서 칭찬하는 때에 쓰인다 합니다.

 

요즘 모 기업인과 그가 남긴 살생부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뉴스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돈을 주고받은 사람을 거명하며

오 나라의 고위직 관리라는 사람들이 모두

뇌물 투성이의 더러운 인물로 묘사를 하는데

참으로 눈과 귀가 따가울 지경입니다.

 

나는 그래도 이 나라에는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으로

고불 맹사성과 황희정승같은 이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이나마 이 나라가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정부패한 당사자를

드러내어 천하에 알리고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근리와 청백리로 사는 사람을 세상에 널리 알려

젊은이들이 본받고 살고 싶어하는 스승으로 삼는 것도

후학을 위해 좋은 방법이 될것입니다.

 

세월호 일주기를 앞두고 터져나온 사건으로

그동안 4대강과 해외투자의 손실에 대한 조사나

방산비리를 저질렀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취를 감춰버리고

새로운 뉴스들로 화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사이에

이 나라는 곪을대로 곪아가는 말기암 환자의

모양과 다름이 아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의 빚이 무려 5천조원에 달하고

그 빚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는것 조차

생각할 수 없을만큼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 나

하루에 지불할 이자가 수천억원이 넘는다 하는데도

우리는 지금도 무엇이 얼마나 위태롭고 긴박한지 살펴서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는데는 뒷전이고

코앞에 벌어진 일만 놓고 갑론을박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잘못한 자들에 대한 것은 법이 심판할 일이고

국가는 이 나라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도출해 내어 기사회생의 기회로 삼아야 할텐데

그러한 노력들은 모두가 손 놓은 상태로 보입니다.

 

무언가 사건과 사고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전체적인 형국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이 어두워 지고

스스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형국이 되는 것이지만

조금 멀리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피차를 떠나 보면

마치 바둑이나 장기판의 훈수두는 사람이 수는 낮아도

제대로 멀리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유있는 눈을 갖게 될것이니 그런 사람들이 모여

현재의 시국을 살펴가며 미래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석가모니는 지금으로부터 삼천여년 전에도

이 세상을 가리키면서 삼계가 불타고 있다 하였습니다.

 

삼계란 욕망의 세계 물질의 세계 정신의 세계를 일컽는 말로

온통 불에 들어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난 집에 들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중생들에게

하루 속히 불 난 집에서 벗어나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 밖으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지금 이 나라가 마치 불난 집과도 마찬가지인데도 불구하고

불 난 모습을 즐기고 관전하고 있는 듯한 태도는

정말로 염근리와 청백리들이 모두 숨어 버린 그런 세상이 아닌가

할만큼 어둡고 암담한 현실임을 왜 누군가는 일러주지 않는지,

혹은 일러 주는데도 알아 듣지 못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가야시산에 올라 석가모니가 제자들에 한 말씀을 살펴봅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불타고 있다.

이와같이 눈 귀 코 혀 몸과
형상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불타고 있다.

어떤 불에 의해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에 의해 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은 불길들은 왜 일어나는가?

'나' 스스로 일으킨 망상이 부싯돌이 되어
어리석음의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탐욕과 분노의 불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불길은 점점 세차게 타올라
'나'와 중생을 집어 삼키고
'나'와 중생을 태우게 되느니라.

중생들은 모두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 즉 삼독(三毒)의 거센 불길로 인해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세계를 윤회하게 되고,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번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세 가지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은
오직 '나'에 대한 애착 때문이니,
세 가지 불을 멸(滅)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나'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려야 한다.

나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 있게 되면
세 가지 불길은 스스로 꺼지고
윤회의 수레바퀴는 저절로 멈추며
모든 괴로움은 자취없이 사라지게 되느니라.

삼독의 불길이 너희들 안에서 타고 있다.
이것을 빨리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독의 불길을 주의깊게 닦아라.
주의깊게 닦아 하루 빨리
삼독의 불길을 멸하여야 하느니라."

 

아딧따빠리야야경

 

아무리 천하없는 거부장자라 하더라도

하루 먹는 밥은 세끼면 족한 것이고

대지 수천평에 구십구칸집을 지녔다 해도

한평 방이면 자는데 부족함 없음이요

아무리 값나가는 다이아몬드라도

몸속에 들어가면 병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친 욕심을 자제하고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기꾼들은 사기꾼들 노는 곳에 모여들고

염근리들은 염근리들 모이는 곳에 모여들듯이

이 세상을 바꾸어 가고 향상시켜 나가는 힘은

바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

바로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면 좋겠습니다.

 

남이 똥 싸 놓은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는 아나운서들과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떠드는 모모 정치꾼들이

참으로 불쌍하고 딱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풍자한

중국의 시 한 수 입니다.

 

하루 아침에

꼭대기에 올라 천하 위에 앉아

그러고도 신선이 내려와

같이 바둑두어 주기를 바라네

신선과 바둑 두다가 또 묻네

어디에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느냐고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만들기도 전에

염라대왕은 부르고 귀신은 와서 재촉하네

이사람이 수명을 다하지 않았다면

하늘에 올라가 또 사다리 낮은 것을 탓했으리라

 

 

원효사 심우실에서

海月스님 : 공주 원효사 주지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 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 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첨부파일 9월이오면=안도현mp3.mp3 ; 낭송 / 무광 이의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