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봄

2016. 1. 16. 20: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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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리고 봄 

: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다.

 

 

꽃 피니 가지 가득 붉은색이요
꽃 지니 가지마다 허공이네.
꽃 한 송이 가지 끝에 남아 있지만
내일이면 바람 따라 어디론지 가리라.  

 

- 지현후각 스님 (唐)

 

 

 

 연휴인지라 일주일 가량 산중 암자로 가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도심에 살다가 오랜만에 산으로 가니 정말 추웠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아직도 얼어 있는데 그 위로 다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상수도마저 꽁꽁 얼어붙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털모자를

눌러쓰고 잰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물을 바가지로 통에 퍼 담아 와서 밥을 해먹고

세수를 해야 했다.

물을 길어 먹고 또 데워서 발을 씻으니,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오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 속으로 오니 진짜 겨울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래서 옛사람들이 참으로 봄을 기다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섣달그믐이라 마당의 비질은 평상시와 반대로 하였다.

즉 대문 쪽에서 집 안쪽으로 쓸면서 들어왔다. 복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바람을 행동으로 표현한 옛 어른들의 지혜를 본받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서 방과 부엌,헛간 등 집 안 곳곳에 불을 밝혔다.

한 해가 바뀌는 것을 지켜본다는 수세守歲의 세시풍습을 이어가기 위한,어찌 보면

또 다른 역사적 계승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경청선사가 말한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는

덕담으로 한 해를 열고 싶은 내 개인적 기원이기도 했다. 

 지금은 절집 말고는 음력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양력으로 보신각 제야종 소리를

듣고 해맞이로 새해 다짐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까치설날’이다.

진짜 ‘우리 우리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다. 하지만 달력은 이미 한 장이 넘어가버린

상태이다. 현실과 이상은 또 이렇게 다른 것이다.

 어쨋거나 겨울이 없다면 봄의 귀함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보리는 춘화春化처리를 하지 않으면 싹이 돋지 않는다고 한다. 얼리는 것을 춘화라고

하니 참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이름을 붙여놓은 것 같다.  

 

사실 추위라고 하는 것은 더위가 모자라는 것일 뿐이다.

어둠은 밝음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고구마는 가을에 거두어 들이면 열매이지만 봄이 되어 밭으로 나가게 되면 씨앗이 된다.

열매이면서 동시에 씨앗인 것이다. 씨앗 속에 열매가 포함되어 있고 열매 속에 씨앗이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겨울 속에는 봄이 내재되어 있고 어둠 속에는 이미 밝음이 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각각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설날이 지나면 평범한 사람들도 겨울 속에서 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생활에서는 시작의 약속된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 

입춘도 거의 설날과 절기가 비슷하다. 모두가 시작의 의미이다. ‘입춘대길’이라는 큼직한

글씨를 대문에 써 붙이는 것도 한 해의 시작을 잘해보리라는 다짐을 밖으로 나타내는

또 다른 삶의 지혜라 할 것이다.

 이제 봄이다. 모진 겨울이 길다고는 하지만 때가 되면 부드러운 봄기운에 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봄 역시 항상 봄일 수만은 없다.

 

- 원철스님의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에서 

 


 본래의 마음 - 명상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