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사서 쓸 여력이 된다면 사서 쓰면 된다. 그런데 한번쯤 되짚어보자. 그것이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인가, 욕망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인가.
지금 쓰던 것을 조금 더 고쳐 쓰고, 바꿔 쓰고, 아껴 쓴다면, 그리고 조금 불편하게, 조금 느리게, 좀 더 소박하게 쓴다면, 그것이 필요한 시점을 조금 더 뒤로 미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몇일, 몇 달, 아니 몇 년 더 미뤄 두었다가 그것이 정말 꼭 필요할 때 조금 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어렵게 지갑을 꺼내는 것은 어떨까.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당장에 구입하여 사서 쓰면 그것이 그리 감사하지도 않고 얼마간 쓰다 보면 금방 거기에 젖어 즐거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필요하자마자 당장에 사서 쓰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복덕을 감소시키고, 만물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을 소진시키며, 욕망과 아집과 이기를 키워나가는 아주 빠른 방법이다.
필요한 것을 당장에 살 것이 아니라 조금 뒤로 미루고 내 안에서 얼마만큼이나 간절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라.
그렇게 살피고 또 살피다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날 때 그 때 여기 저기 알아보고 비교해 보고 발품도 조금 팔아 힘겨웁게 그것을 구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짠한 감사와 고마움과 행복감이 밀물처럼 몰려 올 것이다.
어릴 적에는 모든 것을 구입하는 일이 이렇듯 언제나 설레임 이었고 감사하고도 행복한 일이었다. 시장에서 5천원하는 운동화 한 켤레를 얻어 신고는 운동화 바닥이 다 닳고 엄지발가락 쪽이 툭 터지면서까지 아직은 쓸만 하다고 생일 때나, 졸업식 때 같은 기념할만한 날을 기다려 어머님과 함께 시장에 나가 이 신발 저 신발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그야말로 고작 5천원 전후의 신발을 고르면서도 색깔도, 디자인도, 튼실함도, 심지어 메이커까지 살펴가면서 -메이커라고 해 봐야 그야말로 짝퉁 혹은 해적판들, 프로스포츠,아삭스,퓨매,나이스...- 어렵게 사서 새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올 때는 그야말로 개선장군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랑스럽고 했었다.
신발 하나를 사는 데에도 설레임과 행복이 가득했다. 그러했으니 다른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그러나 사는 일이 조금씩 넉넉해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엇을 산다는 것의 즐거움이 많이 퇴색되어지고 너무 쉽게 나고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돌아봄이 잦아졌다.
꼭 필요한 것을 적게 소유하고 있을 때 그 때 그 소유물들은 우리에게 행복과 감사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더불어 부족함과 불편함을 견뎌내는데서 오는 그 어떤 진하고 찡한 삶의 에너지 같은 것을 얻게도 된다.
그러나 소유한 것이 많으면 우리 마음이 긴장감을 잃고 감사와 행복을 잃는다. 소유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경외감, 공경과 감사와 같은 덕목을 잃고 만다. 그것은 그냥 쌓여 있는 짐일 뿐 더 이상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좋고 많은 것들은 살 때는 잠시 기쁜 듯 해도 휙 사고 나면 얼마 못 가 다시금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버린다.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적응을 잘 하는지 좋은 것, 화려한 것, 크고 넓은 것을 사더라도 금방 거기에 적응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은 또 다른 것을 찾게 마련이다.
20평대 아파트에 살다가 3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처음 몇 일간은 시원스레 넓은 집이 행복을 주지만 그런 행복은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 얼마 안 가 거기에 금방 적응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얄팍한 마음이다.
그러다가 40평대 아파트에서 사는 친구집에 몇 번을 구경 가고, 40평대에 사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내 집에 돌아와 보면 이게 집 같지도 않고 너무 좁아서 숨이 막힐 것처럼 먹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갖 핑계거리가 생겨난다.
아이들도 커가고 하니까 더 큰 평수로 가야지, 빚을 져서라도 큰 평수로 사 놓으면 뒷날 값이 올라갈 것이니 득이 아닌가, 남들도 다 그렇게 빚져서 집을 산다더라, 아이들 친구나 며느릿감이라도 데리고 오면 그래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애들도 기가 죽지 않을꺼 아니냐...
이런 저런 핑계꺼리들이 늘어나다보면 이제 더 이상 현재의 30평대 아파트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4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되고, 어지간한 단점들이나 부작용 등은 손쉽게 기억에서 지워지게 된다.
거기에는 아무런 단점도 없으며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설사 작은 단점들이 있더라도 장점에 비한다면 그냥 눈감아 줄 정도로 단점들의 비중은 마음에서 약해진다.
그 때부터는 신문을 보더라도,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도 오직 아파트만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를 사는 것만이 내 인생 최고의 목적지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이다. 그러나 또 다시 40평대 아파트를 구입하더라도 우리 감각은 금방 40평대에 적응을 하고 40평이 주는 시원함과 편리함과 너른 공간감각에서 오는 행복감은 곧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좋은 것, 넓은 것, 많은 것을 찾는다. 필요하면 금방 금방 교체한다. 거기에 주저함은 용기 없는 행동이 되곤 한다.
5~6년 쯤 전에 용산 전자상가에 나갔다가 잘 아는 분을 통해 조립 컴퓨터를 구입하여 잘 쓰고 지냈다. 100만원을 못 주고 구입해서 쓰던 것인데 그 때만해도 상당히 성능이 좋고, 최신 사양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양도 떨어지고 벌써 몇 번을 용산으로 보내거나 컴퓨터 전문가에게 부탁해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자꾸 멈추고 버벅대고 하더니 얼마 전에는 아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전원 스위치를 눌러도 기력이 쇠진해서 그런가 먹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 마음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만하면 오래 잘 썼어, 이참에 새로 하나 장만하자’ ‘아니야, 전원만 바꾸어 달고, 부품 몇 개만 고치면 몇 년은 더 쓸 수 있는걸’
그러면서 지난번에 어느 신도님 댁에 갔다가 본 큰 LCD 모니터에 최신 사양의 컴퓨터가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다. 시원시원하고 선명한 모니터를 잠깐 써 본 결과는 얼마나 좋아 보이고 부럽기도 하고 보지 않았으면 생각지도 않았을 내 욕망을 부추겼는지 모른다.
그 생각이 나면서 몇 일 동안 인터넷 각종 사이트를 살피면서 좋은 컴퓨터가 없나 한동안 고민을 하고 찾아 헤맸다. TV에 나오는 홈쇼핑 컴퓨터가 싸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몇일을 홈쇼핑 컴퓨터를 보며 요목 조목 따져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제 결론을 보았다. 기존 컴퓨터에 전원부분하고, 메모리하고, 하드만 새로 구입하여 조금 더 쓰자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계산을 해 보니 다 해야 10만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새로 구입하였다면 그 열배가 넘는 돈을 지불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잘 했다 싶지만, 그 때는 새로 사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가 왜 그리 많던지.
필요하다고 그냥 휙 사 버렸다면 아마도 그 크고 시원한 모니터를 보며 처음 몇일 동안은 행복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 눈은 금새 그 큰 모니터에 적응을 했을 것이다. 그 모니터가 크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별 감흥 없이 내 눈은 거기에 완벽히 적응을 했을 것이다.
그러한 크고 많고 좋은 것에 대한 적응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만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살 때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내 안에 숨 쉬는 욕망을 잘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사야만하는 온갖 이유와 핑계거리들로 인해 무엇이든 휙휙 사서 쓰는 데 재미를 붙이게 될 것이다.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있더라도 조금 더 미뤘다가 그것이 정말로 꼭 필요할 때 어렵게 사서 쓰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아는 이의 마음에는 온갖 복이 깃들고 공덕이 쌓인다.
그 마음에는 모든 소유물들에 대한 짠한 감사와 행복을 넘어 그 어떤 경외스러움까지 담겨 있다. 마음에 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서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사람이 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 안에 복이 깃들기도 하고 또 마음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 안에서 복을 쫒기도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조금 더 기다려 보라.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조금 더 뒤로 미뤄 보라.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그 때마다 손쉽게 사먹는 일을 줄여 보라. 그러는 가운데에서 복이 깃든다.
요범사훈에 보면 ‘아름다운 옷을 입을 사람이 하루 입지 않으면 그 옷을 천지신령에게 하루 공양하는 것이 되고, 좋은 음식을 먹을 사람이 하루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을 천지신령에게 하루 공양하는 것이 되고, 큰 집 높은 집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작은 집에 거주한다면 하루 한 달 내지 일 년 수십 년간 그 사는 것만큼 큰 집 높은 집을 천지신령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며, 내 몸이 사치한 일을 끊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사치할 수 있는 사물을 천지신령에게 공양하는 일에 해당하므로 한 푼도 쓰지 않고 희사하는 공덕은 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아름다운 옷을 갖고 싶더라도 바로 바로 휙 사 버리기 보다는 몇일 더 뒤로 미루어 놓게 되면 그 미룬 시간만큼 천지신령께, 화엄성중께, 불보살님들께 그 옷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좋은 음식을 하루 먹지 않고 미뤄두면 그 음식을 천지신령께, 화엄성중께, 불보살님들께 공양하는 것이 된다.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당장에 사서 쓰기 보다는 조금 더 미루어 보라. 몇일 더, 몇 달 더, 몇 년 더 미루어 보라. 내일 사나 오늘 사나 별 차이가 없다고 여기지 말라.
어차피 살 것인데 빨리 사서 좋은 것을 쓰자는 생각은 버리라. 어차피 살 것이라면 될 수 있는 한 그 시기를 늦추고 그 늦춘 시간만큼 그것을 갖고 싶은 욕망을 지켜보라.
하루 이틀 미뤄 두었다가 늦게 사는 것은 큰 공덕이 있다. 미룬 시간만큼 천지신령께, 화엄성중께, 불보살님께 그것을 공양 올리는 공덕이 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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