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강설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2017. 3. 25. 22: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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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제676

,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3) 남방의 법희혜(法喜慧) 보살의 찬탄

 

爾時衆中復有菩薩摩訶薩하니 名法喜慧光明이라 承佛威神하사

觀察十方하고 而說頌曰


그 때에 대중 가운데 또 보살마하살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법희혜광명(法喜慧光明)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佛身常顯現하사         法界悉充滿하시며

恒演廣大音하사         普震十方國이로다


부처님의 몸 항상 나타내사

법계에 다 충만하시며

광대한 음성으로 늘 연설하사

시방 국토에 널리 떨치시네.


강설 : 남방의 법희혜 보살의 열 게송은 부처님의 적적한 작용이 중생들의 기틀에

부응하는 것을 찬탄하였다. 산하대지와 산천초목이 낱낱이 부처님의 몸이다.

형상이 있음도 부처님의 몸이요, 형상이 없음도 부처님의 몸이다.

바람소리 물소리가 모두 부처님의 설법이요, 자동차소리 사람소리도 부처님의 설법이다.

소리 있음도 부처님의 설법이요, 소리 없음도 부처님의 설법이다.

 

화엄경 강설 제677

,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如來普現身하사          徧入於世間이라

隨衆生樂欲하사          顯示神通力이로다


여래가 널리 몸을 나타 내사

세간에 두루 들어감이라.

중생들의 욕락(欲樂)을 따르사

신통력을 나타내 보이시네.


강설 : 여래가 널리 몸을 나타내어 세간에 두루 들어갔다면 이 세간이 그대로 여래의 몸이다.

그리고 세간은 모두 중생들의 하고자하는 것과 즐기는 바의 대상들이다.

그렇게 여래는 신통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佛隨衆生心하사            普現於其前하시니

衆生所見者                皆是佛神力이로다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르사

그들 앞에 널리 나타나시니

중생들이 보는 것은

다 부처님의 신통한 힘이로다.


강설 : “중생들이 보는 것은 모두가 다 부처님의 신통한 힘이로다.”라고 하였다.

눈과 귀와 코와 혀 등으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하는 등의 작용은 모두가 여래의

신통변화다. 임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도를 배우는 여러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그대들도 석가와 더불어 다름이 없다.

오늘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곳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섯 갈레()

신령스런 빛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다만 한평생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一生無事人].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신통인들 어디 이와 다른 것이겠는가.

 

화엄경 강설 제678

,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光明無有邊이요          說法亦無量이라

佛子隨其智하야          能入能觀察이로다


광명이 끝이 없고

설법 또한 한량없으니

불자들이 그 지혜를 따라서

능히 들어가고 능히 관찰하도다.


강설 : 부처님의 광명과 설법은 가없고 한량없는데 불자들은 그들의 지혜를 따라서

광명과 설법에 들어가고 관찰한다.

법성게에 허공이 가득하게 보배를 비처럼 내려서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건만 중생들은

그들의 그릇을 따라서 이익을 얻도다.라고 하였다.

실로 지금 여기에서 그대로 허공 가득히 보물을 내려부어 우리들을 이익하게 하건만

중생들은 각자의 그릇의 크기를 따라서 이익을 얻는다. 예컨대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그릇이 엎어져있으면 비는 한 방울도 고이지 않지만 설사 가랑비라 하더라도 그릇이

반듯이 놓여 있으면 물이 고이는 것과 같다.

 

화엄경 강설 제679

,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佛身無有生호대                  而能示出生하시며

法性如虛空하니             諸佛於中住로다


부처님의 몸은 태어남이 없건만

태어남을 능히 보이시며

법성(法性)은 허공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이 그 가운데 머무시네.


강설 : 부처님의 몸은 불생불멸이며 한편 능생능멸(能生能滅)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몸은 곧 법성(法性)이다. 법성은 허공과 같으며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아니다. 통일된 하나다.


 

無住亦無去로대          處處皆見佛하니

光明靡不周하야        名稱悉遠聞이로다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으나

곳곳에서 다 부처님을 보니

광명은 두루 하지 않는 데가 없고

그 명칭은 모두 다 멀리 멀리 들??뎬?/span>.


강설 : 부처님의 몸은 곧 법신이다. 법신은 법계에 충만하여 본래로 가고 옴이 없다.

그리고 어디에 머무름도 없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귀에 들리는 것처럼

그 모습 없는 데가 없고 그 소리 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화엄경 강설 제680

,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無體無住處             亦無生可得이며

無相亦無形이라      所現皆如影이로다


몸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으며

태어남도 또한 없으며

모습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나타난 것은 다 그림자 같네.


강설 : 부처님의 법신은 체상이 없다. 체상이 없으므로 머무는 곳도 없다.

체상이 없으므로 또한 생멸도 없다. 아무런 형상도 모습도 없어서 그림자와 같다.


 

佛隨衆生心하사              爲興大法雲하야

種種方便門으로             示悟而調伏이로다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르사

큰 법의 구름을 일으켜서

갖가지 방편문으로써

보이고 깨닫게 하고 조복하시네.


강설 :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많고 많은 법을 설하신다.

모두가 법성을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하고 들어가게 하여 교화하고 조복하신다.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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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다 가는 인생

이세상에 인연따라 잠시 왔다가

고독한 인생살이 마치고 나면 그 누구할 것 없이

다 그렇게 떠나야 하는 삶이 아니던가요 냇가물이 흘러 강물로 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물흐르듯 돌고 돌다 어느순간 멈추어지면

빈손으로 베옷 한 벌 입고 떠나야하는 삶이 아니던가요 여보시오 나그네님들 ! 부모님의 초대를 받고 이세상에 왔지만

마지막 갈때는 아무도 삶을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생에 인연이 다하면 돌아가야 하는법이거늘 길어야 몆 십년 잠시 살다 가는 인생

서로 미워 하지말고 사랑 하며 살다 갑시다 몆 백년 사는 인생이라면

이별도 해보고 미워도 해보고 살아 보겠지만 이땅에서 한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못볼 인연들이아니던가요

가는 시간이 안타깝지도 않으시던가요 여보시오 나그네님들! 세월이 어렴픗이 흘러간뒤에

그리워한들 무슨소용 있겠습니까 삶의 숟가락을 놓은 그 순간 까지

미워하는 인연이 있다면 용서 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인연이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해주고 비로소 꿈을깨는 날숨이 막힐듯 저려왔던

외로움조차 모두 버리고 떠나가야하지않던가요


 












흰구름 가운데 / 서산대사 휴정(1520~1604)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절이 흰구름 가운데 있으니
흰구름을 스님이 쓸지 않네
손님이 찾아오니 사립문은 비로소 열리고
골짜기마다 소나무 꽃가루가 우수수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