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천의 시작, 무주상보시|마음공부 생활수행

2017. 4. 1. 17: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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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실천의 시작, 무주상보시





보시하는 것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보시야말로 생활속에
불교를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실천 수행입니다.

모두들 '생활속에 불교.. 생활속에 수행..'을 찾지만
막상 가르쳐 주고 나면
실천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시라는 수행이 그렇습니다.

보시는 불교 수행의 핵심입니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지혜를 증득했을 때 자비가 일어나고
이 두가지의 수행심이
보시를 불러옵니다.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相)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없음을 바로 본다면 부처를 볼 것이다.

다시 말해 상을 깨는 것이 바로
깨달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에는 아상(我相)이 근본이며
아상에는 '내것이다' 하는 물질적 소유의 관념과
'내가 옳다'하는 정신적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이 중 '내것이다'고 하는 소유의 관념인
아상을 깨는 수행이 바로 '보시'인 것입니다.
보시의 수행을 통해 우리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보시의 수행은
다만 복 짓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상을 타파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근본이 되는 수행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하며 수행하는...
실천하는 생활속의 수행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행인 것입니다.

보시는 연기법의 실천입니다.
자비의 실천입니다.

불교의 핵심사상을 연기법이라 합니다.
'나'는 홀로 나일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의
티끌만큼도 오차가 없는
상호 인연들... 사람들... 존재들...
그 중심에 '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둘이 아닙니다.
연기하기에 실로 너와 나는 둘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와 인연되지 않은 이가 없으며
그 어떤 작은 티끌 속에서도
나의 인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듯
'나'는 지금의 이 모습, 이 생각, 이러한 외모를 가진
작은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나'
연기하는 존재로서 일체로서의 나입니다.

그렇기에 연기를 깨닫게 되면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나' 아님이 없게 됩니다.
그 속에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
자비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로 깨닫고 나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닙니다.
나와 자연만물이 둘이 아닙니다.
'내 것' '네 것'의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너 그리고 만물이 둘이 아니라면
내가 네게 무엇을 보시했다라는
상을 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삼륜청정이라 한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보시했다는
생각이 모두 비워진 보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주상보시'이며
이런 보시의 수행이
'보시바라밀'인 것입니다.

주고 나면 아깝지만
가만히 명상을 하며 보시를 한다면
그 맑음에 마음이 비워질 것입니다.
그 밝은 행위로 우리는
더욱 청정해 질 것입니다.
우리의 수행력은
나날이 높아만 갈 것입니다.

본래 내것이 없었기에
주어도 없어진 것이 없습니다.
본래 모든 것은
그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텅 비어 있을 뿐입니다.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이
'내 것'이란 어리석음을 일으킵니다.

본래 모든 것이 내 것인데
이 만큼만 내것이다 라고
소유의 울타리를 쳐 놓으니
그 만큼만 내 것이 됩니다.
진정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울타리를 걷어 버리세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것이 됩니다.
아니 내것, 네것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여여해 집니다.

무소유가 전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오늘따라
법정스님의 크신 삶이
너무도 마음 가득 다가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소유하고 사시는...
가진 것 없이
텅 비어 있지만
어느 한 곳 꽉 차여 있지 않음이 없는
깨달음의
맑고 향기로움이여...

 

글쓴이 : 법상스님


추억이 떠오르는 즐겨듣던 노래들-28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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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 / 루미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모두 예기치 않은 손님들이니
그들이 편히 쉬고 가도록 환영하라!

때로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몰려와
네 집의 물건을 모두 끌어내 부순다고 해도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운 마음,
사악한 뜻이 찾아오면

문간까지 웃으며 달려가 집안으로 맞아들여라.

거기 누가 서 있든 감사하라.
그 모두는
저 너머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손님들이니.

- 루미, <여인숙> / 몽지릴라밴드에서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아

어느새 늙어 해는 서산(西山)에 지누나

 

이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이 몸 밖에 무엇을 더 구하랴


- 송담스님 법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