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3. 18: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극락세계에 가야 하는 이유 / 혜총스님
21세기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소납은 오늘날 세상을 ‘믿음이 상실된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불신의 시대’
아닙니까?
설령 성인이 말씀하신 진리라 하더라도 그 진리가 내 눈앞에서 나를 안락하게 하는 실체적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신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이나 스승과 제자, 사업주와 종사자 등 사회 각계각층이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찼습니다.
서로 믿지 못한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인간사에서 불행의 단초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본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굳이 깨침이나 성불의 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들 일상사의 어떤 일도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지식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 교수도 되고 박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부모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자식이 부모를 의지해 삽니다. 또 자식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부모가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믿음의 구조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 이것을 복구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불자, 지식인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오늘날의 중생을 위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미타경을 설하시고
난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리불이여,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니라.
사실 나는 수많은 부처님들의 찬탄과도 같이 이 오탁악세인 사바세계에서 온갖 고행과 난행을
다 마치고 난 뒤 여기서 드디어 부처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일체중생들을 위해서 정말로 믿기지 아니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느니라.
그것은 바로 박복한 중생들에게 극락세계의 장엄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설명하고 그것을
믿으라고 권유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살이 뜯기고 뼈가 바스러지는 난행과 고행을 한 다음에 아신 것이기에 박복한
중생의 안목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인연이 닿는 중생은 믿어서 윤회의 사바세계를 벗어나지
않겠는가 하는 참으로 간절한 성인의 자비심이 엿보이는 말씀입니다.
세속에 인생의 목표가 있듯이 불교에도 삼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금생의 목표는 살아 있는 동안에 부처님의 가피를 잘 받아 복을 많이 지어서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고, 내생의 목표는 극락왕생하는 것이고, 그 후생의 목표는 성불해서 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불자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삼생의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현생에 복을 많이 짓고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사람이라야 행복하게 살다가 극락에도 가고 성불해서
윤회를 벗어나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가고 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생에 부처님의 가피를 받지
못하고 복도 짓지 않은 사람은 안락할 수도 없고 극락에 날 수도 없으며 더욱이 그 후생에 대원경지를
이루어서 중생을 제도하는 최상승의 삶을 살 수는 더더욱 불가한 일입니다.
그래서 소납은 이 현생에 행복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야 극락에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옵니까?
물론 물질적 풍요도 행복에 필요하지만 영원하지 않지요? 꿈같고 물거품같이 금방 스러지는 환상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참회하고 계율을 지키고 선근을 닦는 공덕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불교는 이와 같이 꿈을 꾸면서 물거품 같이 사는 우리들을 편안하게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극락에 가면 무엇을 하는가?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극락에 가면 성불합니다. 천당은 부처님의 공덕으로 만든 세계가 아니라 중생업(衆生業)으로 만들어진 세?窩堅? 때문에 복진타락(福盡墮落), 이 세상에서 지은 복을 다 소비하고 나면 타락하게 되지만, 극락세계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48원(願)을 세워서 진실한 과보와 진실한 보답으로 만든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요, 아미타부처님께서 공덕을 지어서 만든 공덕장엄토(功德莊嚴土)이기 때문에 타락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설법을 많이 듣고 무량한 공덕을 짓고 지혜를 더 많이 닦아서 금방 성불하는 곳이 극락입니다.
그래서 역대 고승, 선지식이나 문수, 보현보살 등 제불보살이 모두 극락세계의 아미타 부처님을 뵙고자 서원을 세웠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스님, 스님은 극락세계에 가보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는데 극락에 갔다 와서 극락이 있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이니까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공덕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극락세계이기 때문에 어느 곳이 극락세계라고 중생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생은 “여기다. 저기다.”라고 말하지 말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극락에 가고자 원을
세워서 간절하게 일심으로 염불을 자꾸 하면 문득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입니다.
극락에 가는 것도 내 힘으로 가는 것인 줄 착각하기 쉬운데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주 외우는 <천수경>에도 보면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願我決定生安養
願我決定阿彌陀)’라, 모든 제불보살들도 극락에 나서 아미타 부처님을 속히 친견하는 것을 커다란
서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락왕생을 돌아가신 분이나 내세를 위해서만 기원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젊기 때문에 아미타 염불을 멀리 하고 참선이나 관세음보살
만을 염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남녀노소 누가 염불을 해도 염불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켜주시는 이것이 모든 부처님을 마음에
받드는 제불호념(諸佛護念)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모두 지켜주시기 때문에 장애도 없고
소원성취도 됩니다. 생전에는 편안하고 사후에는 극락왕생하고 또 극락왕생 후에는 성불해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행을 실천하게 됨이 모두 부처님의 가피요,
불자의 목표이기에 우리는 꼭 극락에 나야 합니다.
중생계는 고금을 막론하고 힘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권력, 금력, 세력 등등 힘이 지배합니다.
우리 불자는 간절한 믿음의 대신력(大信力)과 굳센 대원력(大願力)과 변하지 않는
정진력(精進力)으로 오탁의 박복한 중생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도리를 찾아야 합니다.
바쁜 일상을 탓하지만 말고 부디 무엇보다도 먼저 간절한 믿음으로써 종교생활의 초석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간곡한 발원을 세우고, 간절하게 부처님을 염하고 부처님의 행을 따라 행해서 받기 힘든 사람의 몸 받은 이생을 끝으로 다시는 윤회하지 말고 반드시 부처님을 뵙는 인연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염불의 업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물었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그대들 수행자들은 ‘백 년 동안 악행을 저질렀을지라도 죽는 순간에 염불을 하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또 그대들은 단 한 번 살생한
과보로 지옥에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말도 믿을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그마한 돌은 물에 뜰 수 있습니까?”
“존자여,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왕이여, 백 개의 수레에 실을 만한 바위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능히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염불의 업은 배와 같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업 중에서도 제일 착한 업은 염불하는 업입니다. 왜 염불이 제일 착한 업이냐 하면 염불은 부처님을
가슴에 모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한 순간도 부처님을 잊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가슴에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업이 되니 만사형통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염불을 자꾸 하면 부처님과 한 마음이 되니 남에게 베풀 마음이 나고, 자꾸자꾸 염불을 하면 태어나고
죽는 문제도 햇살에 눈이 녹듯이 저절로 해결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염불하는 것은 착한 업이 됩니다. 착한 업과 악한 업을 말할 때는 제일가는 착한
업이 염불입니다.
삼계 대도사이고, 사생의 자부이신 부처님도 세 가지 불가능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들의 업을 부처님이 대신 소멸시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인연이 없는 고집이 센 중생을 제도시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세계가 끝날 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이 업장을 소멸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는 방법을 펼쳐놓으셨는데도 우리는
그 길을 알면서도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연이 닿지 않아 태어나기 힘든 사람의 몸을
받고도 다시 윤회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불의 업은 큰 배와 같아서 중생계의 모든 중생을 모두 태우고도 남습니다.
누구든지 염불만 하면 불보살의 광명 속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을 많이 하면
악한 인연은 점점 멀어지고 착한 인연은 각처에서 무시로 만납니다.
어려움이 닥친 연후에 부처님을 찾지 말고 평소에 꾸준히 염불을 하면서 오는 인연, 가는 인연 가리지
말고 세월을 보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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