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7. 10:3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지식과 지혜
불교를 바로 알고 믿어야 !
깨달음은 산모퉁이를 지나자 넓은 벌판이 한 번에 뵈듯이 온다.
점점 더듬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부처말을 기억해서 가지고 들어가면 더 더욱 아니다.
우리 맘엔 두부처가 없다.
부처님 말, 禪句, 등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
망상을 바탕으로 이해하여 부처님의 말이 귀중하다고
지키고 있으면 그 삶은 고달프다.
왜냐 하면 자신이 아는 불교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불은 우리들 自心이며 자심을 깨닫는 즉 불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불설을 보면 이 때라야 불설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이젠 바른 행이 나온다.
.....생활 중에.... 이게 8정도 중에 正行인 것이다.
들었던 말은 풍월이다,
아는 생각, 그 것들은 좋은 것 같지만
한 개인의 아집이며 아직은 사견인 것이다.
이런 이들은 불교 때문에 삶에서 오는 문제들로부터 시달린다.
성격도 삐트러 지기 쉽다. 삶과 현실이 조화를 못 이룬다.
마침내는 우울증이라는 정서 감정 병에 걸리기도 한다.
세상을 원망하며 지극히 염세적인 인생이 된다.
佛은 우리들 자심이며 이 자심은 밝은 것이다.
지혜가 있어서 접하는 일마다 술술 풀린다.
그래서 불교를 우리들의 삶에 길,道라고 하는 것이다.
신통이니 6식이니 8식이니 하는 것은 중생심을 열거 해놓은
일종의 이론표현 방법이다.
그런 이론에 붙들려 장애를 받아 자심을 등진다면 그 사람은
불설을 그릇되게 접근하여 길을 잘못 든 사람이다.
지식과 지혜의 힘
지식의 힘은 한계가 있으나 지혜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이 지혜의 힘을 장해하는 것이 가끔은 지식이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니다.라고 말하나
나는 그 반대이다.
아는 것이 지혜를 잃고 쓰면 지식은 방향이 없다.
악용한 나머지 교활해지기 까지 한다.
그러나 지혜가 지식을 상생의 길로 데리고 간다.
만약 지식이 지혜와 동반하면 이는
반드시 지혜를 아버지로 하고 있을 때이다.
이때 지식은 말 그대로 힘이 된다.
지혜는 성인을 눈앞에 두고 쓴다
性慾, 性 .사랑 그리고. 識
................
性에서 좋아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좋아하는 것이 마음에 닿으면 사랑이 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마음을 등지면 性은 곧, 성욕이 된다.
성이 사랑으로 쓰여 질 때는 神性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性慾을 사랑으로 오인하여 쓴다.
사랑이 없는 性은 삼가 할 줄 아는 이는 도덕이 있는 사람이다
아는 것과 마음은 다르다.
아는 것과 마음을 구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에 혼돈 중이다. 아는 것은 識이다.
마음은 형상이 없는 것이어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
그러나 있다. 형상이 없이 있다. 妙하게 存在한다.
이 마음을 만나면 아는 것은 붙어 있을 곳을 잃는다.
이 때를 식이 공하다고 한 것이다. 시비 같은 것이 없다.
시비가 이미 끊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비하고 있는 동안 아는 것이 마음인 줄로 착각한다.
그게 망식이다.
마음은 지혜를 품고 있다. 아는 바 없이 안다.
그러면서 할 것은 다 하고 행을 동반한다. 그게 능력이다.
이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만 쓰지 못하고 있다.
바로 아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 불법을 빙자한 망상 때문이다.
이것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교는 아는 것이 오기 전에 믿음을 먼저 길러야한다.
믿음 속에서는 망동한 생각은 없고 공덕만 자라난다.
이 몸이 나라고 아는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내 몸 같이 봐진다. 그러나 사실 마음이 없으면
이 몸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은.....?
생각이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툼 없는 마음으로 생각이 같은 것을 말한다.
맘에 다툼이 없게 되면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
뜻이 저절로 같아 진다.
이때는 생각은 달라도 생각 때문에 이렇쿵 저렇쿵 하지 않는다.
삶의 폭이 넓어져 있다.
동쪽에 살아도 기쁜 소식이 들리고 서쪽에 살아도 기쁜 소식이 들린다.
생각이 달라도 맘 길이 같으니 이세상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같고 맘 길이 다르면 내것 네것을 만들어 폐를 가른다.
마침낸 경쟁관계로 변한다.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속에서 어떤 길을 가든지 같이 가기 위해서는
나속에 다툼이 없어야 한다.
이 다툼은 惡과 善의 근본 이다.
그래서 육조는 악도 생각치 말고 선도 생각치, 말라 ,...
라고 하는 성품의 길을 보여준다.
이 사회가 갈등이 많은 것은 똑똑한 생각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너 잘라고 나 못나 하는 생각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서로 같이 살아 가는데 편할 수가 없다.
나와 남이 만나서 편하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똑똑한 생각들이 맘 길을 막아서 그렇다..
맘 길이 같으면 저절로 너와 나라는 생각이 적어진다..
이럴때 서로의 뜻이 달라도 우리의 삶은 아름답게 된다.
시끄럽고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도 갈등 없이
살아 가는 상생의 길이 뵌다.
스승 부처님은
우리 들에게 이런 길을 보여주고 간 사람이 아닌가 싶다....
/ 현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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