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스님 어록

2017. 9. 17. 10: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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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날에-강윤후


진각스님 어록

스님이 입적하시던 날 법상에 올라 이렇게 설법했다.

 

"봄은 깊고 절 안은 깨끗하여 티끌 하나 없는데,
시든 꽃잎은 시나브로 푸른 이끼 위에 떨어지누나.

 

누가 일러 소림(少林)*¹의 소식이 끊어졌다 하던가.  

저녁 바람이 이따금 그윽한 향기를 보내오는데."




소림 : 달마스님이 수도하던 숭산(崇山) 소림사.
             여기에서는 장소를 기리키는 말이 아니고,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선가(禪家)의 종풍(宗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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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이렇게 설법했다.

 

"결박하는 것도 남이 결박하는 것이 아니고, 결박을 푸는 것도

남이 푸는 것이 아니다.

풀거나 결박하는 것이 남이 아니므로 모름지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깨닫는 요긴한 법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되 놓아버릴 것이 없는 데까지 이르고,

놓아버릴 것이 없는 그것까지도 다시 놓아버려야 한다.

그 경지에 이르면 위로는 우러러 잡을 것이 없고,

아래로는 제 몸마저 없어져 청정한 광명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천길 벼랑에서 마음대로 붙잡고 기회를 따라 움직이되, 조금도 움직이는 일이

보이지 않는 이라야 비로소 안락하고 해탈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네 바다의 물결이 고요하니 용의 잠이 편안하고,

하늘에 구름이 깨끗하니 학이 높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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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는 살아 있는 용이 어찌 썩은 물에 잠겨 있겠으며,

해를 쫓고 바람을 따르는 용맹스런 말이 어찌 마른 동백나무 밑에 엎드려 있겠는가.

 

슬프다, 한갓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선정은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격이고, 문자만을 찾는 미친 지혜는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격이니,

그것은 모두 걸림없는 기틀과 자재하고 미묘한 작용을 모르는 것이다.

 

종은 크게 치면 크게 울리고 작게 치면 작게 울린다.

거울은 되놈이 오면 되놈을 비추고 왜놈이 오면 왜놈을 비춘다.

그들은 이런 이치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와 같이

엎치고 날치는 수단을 얻었다 할지라도 아직 생사의 기슭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말해 보라, 필경 어떤 것인가를...

 

깊숙한 암자 안의 주인은 암자 밖의 일을 관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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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이렇게 설법했다.

 

"구름과 연기가 사라지고 흩어지면 둥근 달이 저절로 밝아지고,

모래와 자갈을 일어 추려 버리면 순금(純金)이 저절로 드러난다.

*¹도 그와 같아서 미친 생각 쉬는 곳이 바로 보리(菩提)다.

성품의 깨끗하고 미묘하게 밝음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크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도 처음 이 일을 깨친 뒤 지혜의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피고 나서 감탄하신 것이다."

 

"신기하구나. 내가 보건대 모든 중생들은 여래의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망상과 집착 때문에 깨닫지를 못한다.

그러니 망상과 집착을 버리면 스승 없이 얻은 지혜, 자연의 지혜,

걸림이 없는 지혜가 드러날 것이다."

 

"여러 대중들, 부처님은 진실을 말씀하시는 분인데 어찌 우리들을

속이시겠는가. 그 말씀을 믿고 그 경지를 향해 들어가 당장 한 칼로

두 동강을 내어 망상과 집착을 쉬어버린다면, 그것은 일마다 분명하고

물건마다 역력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도 별 사람은 아니다. 그 경지에 이르면 벗어나야 할

생사도 없고 찾아야 할 열반도 없어, 다만 일 없는 사람(閑道人)이 될 것이다."


이 일 : 어리석음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닦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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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정월 초하룻날 법상에 올라가 이렇게 설법했다.



"오늘 아침에 그대들을 위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들어 말하겠다.

 어린이는 한 살이 보태지고 늙은이는 한 살이 줄어지며,

 늙고 어림에 관계없는 이는 줄지도 않고 보태지지도 않을 것이다.

 

보태지거나 줄어지거나, 보태고 줄어짐이 없다는 것을 모두 한쪽에 놓아 버려라.

 말해 보라, 놓아 버린 뒤에는 어떤가? 누가 이 세상에 신선이 없다 했는가?

 모름지기 술 항아리 속에 별천지가 있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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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또 이렇게 설법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향상(向上)이나 향하(向下)에 안배할 수 없고,

대장경이나 소장경의 해설로도 통하지 않는다.

 

무엇을 진여(眞如)니 반야(般若)니 보리(菩提)니 열반(涅槃)이니 하며,  

또 무엇을 가리켜 부처가 세상에 나왔고, 조사가 서쪽에서 왔다 하는가.

 갈등을 끊고 당장에 마주 보아야 할 것이다."

 

주장자를 한번 내리치고는 "어서 높게 착안(着眼)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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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이렇게 설법했다.

 

"검소한 데서 사치스런 데로 들어가기는 쉬워도, 사치한 데서 검소한 데로 나오기는 어렵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각생각에 부처가 나타나고 걸음걸음에 미륵보살이 탄생하며, 물건마다 일마다 티끌 같은 세계를 두루 나타내고, 말마다 글귀마다 대장경의 부처님 말씀을 완전히 펼친다 할지라도,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예사 일이니, 거기서 무엇을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한가로우면 앉아 있고 고단하면 잠을 잔다. 불법(佛法)이니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생각이 전연 없고 태평스러운 풍월에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경지인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도 방망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하고 주장자(柱杖子)를 세웠다.



진각 : (1178~1234) 고려때 스님, 법명은 혜심(慧諶. 보조(普照)의 제자.
             저서 - 심요(心要),  선문강요(禪門綱要), 선문염송(禪門拈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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