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위대한 어머니 / 숭산스님

2017. 9. 17. 10: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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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위대한 어머니 / 숭산스님



선(禪)은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일이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이 매우 중요(重要)한 물음이다.

空手來 空手去 是人生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獨有一物常獨露 (독유일물상독로)
湛然不隨於生死 (담연불수어생사)
湛然這一物麽    (담연저일물마)

인생人生은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가는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는 것은 일어나는 한 조각 구름 같고,
죽는 것은 흩어지는 한 조각 구름 같다.
떠 있는 구름은 본래 없는 것.
살고 죽고, 오며 가는 것도 그런 것.
그러나 늘 맑은 대로 머무르는 한 물건이 있다.
그것은 홀로 항상 청정(淸淨)하여 생사(生死)에 기대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항상 청정하여 순수하고 깨끗한 한 물건인가?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깨닫는다면
생사에 걸림이 없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어떻게 생사에 걸림 없는 자유를 깨달아 얻을 수 있을까?
우선 목표가 분명(分明)해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면 생활이 밝아진다.

"왜, 선禪을 수행하는가?",
"왜 날마다 먹는가?"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모두 놓아 버려라.
그 다음엔 우리의 견해나 조건, 상황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행(行)할 뿐이다.

거기에는 주인과 객, 안과 밖이 따로 없다.
안과 밖은 이미 하나가 되고 너와 나의 목표,
행동이 같게 된다.
이것은 위대한 보살의 길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하늘처럼 깨끗해서 거울처럼 맑다.
붉은 것은 붉게, 흰 것은 희게 보인다.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준다.
모든 것이 이 맑은 거울에 비쳐서 보인다.

그러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파랗다.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
개는 '멍멍' 짖는다.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것이 그대로 진리이고 우리 또한 진리이다.

그러면 진리가 어떻게 바르게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 올바로 이끌어갈 것인가?
남이 배고플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부처님을 만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담뱃재를 어디에 털 것인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온전히 실천하면
우리의 평상심은 올바른 삶이 된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신 것도 바로 그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는 게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안다고 하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는데,
만약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인가?
아무리 특별한 경험이 있고 선(禪)에 대한 이해가 깊다 해도
순수하고 깨끗한 그 하나를 얻지 못한다면
특별한 경험과 선(禪)을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의 수행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禪)수행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를 뿐'을 실천하는 것이다.

옛날 조주(趙州)선사가 남전선사에게 물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니라."

"그러면 그것을 계속 간직하려고 애써야 합니까?"
"애쓰면 그르친다."

"애쓰지 않고 어떻게 도(道)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것과 상관이 없다.
안다고 하는 것[知]은 망상이고,
모른다고 하는 것은 무기(無記)이다.
의심 없이 도달하는 도(道)는 허공과 같이 맑고 넓은데
어찌 옳다 그르다 시비를 가릴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조주선사는 크게 깨달았다.
조주선사는 무엇을 깨달아 얻었나?
선(禪)수행자들은 자주 '무엇을 지니려'한다.
하지만 그것이 큰 잘못이다. 

앞서 말한 대로 안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다.
아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수행은 그 아는 것을 잘 소화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참다운 평상심(平常心)이다.

그러면 왜 공안 365개를 만들었을까?
세상 사람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 치료제를 써야 한다.
조주(趙州)는 무엇을 얻었나?
입을 열어 말하면 벌써 실수한 것이다.[開口卽錯]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면,
순수(純粹)하고 깨끗한 답은 항상 앞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참 '나'가 진리를
올바르게 수용하고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

도(道)는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비었어도 끊임없이
온 세상에 생명(生命)을 준다.
도(道)는 항상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한다.
도(道)는 어떻게 끝없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가?

이것도 같은 관점(觀點) 이며 같은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불교적인 공안, 기독교적인 공안,
도교적인 공안, 선禪적인 공안이 실려 있다.
오래된 공안도 있고 새로운 공안도 있지만,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그 흥미로운 공안 이야기에 집착(執着)하거나
여러분의 견해에 매달린다면 그 공안(公案)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견해나 조건, 상황을 모두 놓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하늘같이 맑아져서,
어떤 공안에 대해서도 저절로 정답이 나온다.
그것이 지혜[叡智]이다.

여러분이 공안을 받았을 때
설사 그 공안의 뜻을 알 수 없다해도 걱정하지 말라.
그 공안에 집착하지도 말고,
또 그 공안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라.
오직 '모를 뿐'인 마음을 지키며
천 년, 만 년이 지나도록 쉬지 말고 정진(精進) 하여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도(道)와 진리,
인생을 깨달아 매 찰나 찰나마다 올바른 상황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진리를 올바르게 수용하게 된다.
이것이 위대한 사랑,
위대한 자비(慈悲) ,
위대한 보살의 길이다.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不立文字 불립문자)
교敎밖의 것을 따로 전하니,         (敎外別傳 교외별전)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직지인심)
본성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된다.     (見性成佛 견성성불)


만일 이 문에 들어서거든, 일체 생각을 내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은
모든 마음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만일 모든 마음이 없다면 모든 법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 것도 만들지 않고 찰나 찰나 '오직 행할 뿐' 으로
날마다 오직 한마음으로 정진해서
365공안(公案)을 성취하고 크게 깨달아,
고통받는 중생을 구(求)하기 바란다.

출처 : 화계사





커피 한잔에 / 매향 임숙현 
계절의 길목에서
가을이 손짓하는 
9월의 향기 다가와


 
 
고운 하늘빛
맑은 그리움이 
바람을 타고 손짓하네
뜨거운 여름 
소리 없이 떠나가고
오늘이란 아름다운 공간에서

세월 흐름에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가슴 속 이야기 풀어헤치면
침묵으로 전해지는 
마음 읽을 수 있어
그윽한 커피 한잔에 미소 피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