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의 실천/법상스님

2018. 6. 24. 16: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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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의 실천


연기법의 세계에서 일체 모든 존재는

우연이나 운명론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며 존재가 만들어 내는 현상들은
모두가 그럴만한 인과 연에 의해
인연 따라 연기되어진 것이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원인에 따른 분명한 과보를 받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재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어떠할까.
나에게 주어진 현실 또한
엄연한 인과응보의 결과일 뿐이다.
현실이라는 결과 또한
과거의 내 인연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에 받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억울한 것 같고, 불평등한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인과의 법칙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이야말로
완전한 평등의 진리가 꽃피어나는 곳이다.
다만 우리의 눈에는 일부분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불공평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전생과 이번 생, 그리고 다음 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뛰어넘어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며,
공간적으로도 볼 수 있는 시야는 한정되어 있다.
인과라는 엄연한 진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정견의 시야가 없으며,
연기적이고 상호 연관되어 일어나는 현상들을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불평등하고 조화롭지 못하게 보인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세상,
인연과보, 연기의 세상은
완전한 대평등의 세계다.
 
이러한 연기와 인과의 법칙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앞에 펼쳐진 그 모든 것들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다.
그 어떤 현실도
원인 없이, 이유 없이 나타날 수는 없다.
바로 지금이라는 현실이
내가 그 결과를 받아야 할 순간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현실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그것은 바로 나다.
내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지을 때는 복도 짓고 죄도 짓지 않았는가.
그동안 우리는 살면서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안에는
선업과 악업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
언제든 현실에서 발현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인연에 맞는 때가 오면
바로 그 순간에 선업이든 악업이든
현실로써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을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지을 때는 선행과 악행을 함께 지어 놓고
받을 때는 선행의 결과만 받고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 앞에 펼쳐진 그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라.
거부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는 것, 섭수한다는 것이야말로
연기를 이해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즐거운 일은
과거에 지어 놓은 선의 결과를 받는 것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괴로운 현실은
과거에 지어 놓은 악업의 결과를 받는 것이니
이 또한 받아들임으로써
악업을 녹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 것이다. 

업이 올라오는 순간에
완전한 긍정으로써 크게 받아들이고 섭수하면
올라오는 대로 녹아내린다.
 
내 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상황을
전체적으로 수용하라.
좋은 현실이든 나쁜 현실이든
분별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섭수하라. 

순간순간의 모든 삶과
삶 속에서 피어나는 모든 경계들을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에는 평화가 깃든다.
모든 선악과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이라는
극단적인 분별이 소멸되고
중도의 지혜와 텅 빈 고요함이 드러난다. 

섭수는 삶을 인정하는 것이고,
진리를 고스란히 내 품에 끌어안는 것이다


-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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