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6. 11:2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이것만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절대적으로 고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신념이나 생각, 심지어 종교적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을 제한하며 구속시키고 만다.
강하게 옳다고 집착하는 생각들은,
그것이 아무리 ‘정말’ 옳을지라도,
당신의 삶을 그 틀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할 뿐이다.
특정한 신념과 틀에 박힌 생각들로 인해
당신의 삶은 그 생각들에 가두어진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제한하고 구속하며 가두는 것이다.
‘모름’
‘불확실함’
‘열어 놓음’
‘집착 없음’
‘안정적이지 않음’
‘정해진 것 없음’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임’
이라는 덕목들이 자칫
불완전해 보이고 위태로와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큰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상황들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과
놀라운 삶의 신비로운 경험들을
스스로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이 고착되어 있거나,
특정한 신념 속에 갇혀 있게 되면
그것이 삶의 경험을 제한하고 축소하며
늘 그렇고 그런, 똑같은 삶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들 속에
스스로 갇히게 되고 만다.
안다는 생각 대신에
겸손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
그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삶의 경험과 지혜가
끊임없이 나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다가온다.
‘안다’고 고정지어 놓고,
그 아는 생각들, 신념들의 틀 속에서만 살아가게 되는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나약해 지고 말 것인가.
자신의 무한한 잠재적 힘과 지혜와 사랑을
스스로 가두지 말라.
앞으로의 당신 삶에 등장하게 될
모든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아 보라.
삶이 확정적이고 안정적으로
계획 가능한, 설계 가능한 영역 속에 머물기를 바라지 말라.
삶의 불확실성이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보라.
삶이 명료하고 분명하며 상상 가능할 필요는 없다.
삶을 계획하고 설계해 나가고 있는 그 순간에 조차
사실 그것은 분명한 것들일 수 없다.
모든 삶의 계획과 설계는 임의적인 것이지
실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히 꿈꾸지도 못한
그 모든 놀라운 삶의 신비들이
당신 삶을 환하게 비추며 들어오는 것들을
다만 막지만 않으면 된다.
그저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열고,
닫아 두지 않은 채,
모든 가능성들이 파도쳐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생각도 절대적으로 사수하려 하지 말고,
‘안다’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놓여나며,
특정한 삶의 계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
바로 그 때,
불확실함을 받아들일 때
근원적 삶의 방향은 가장 확실해지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깊은 내면에서는 ‘아는’ 지혜의 빛이 환하게 비추어지며,
‘무집착’과 ‘생각 없음’의 공간으로 저어갈 때,
사실 당신은 가장 강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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