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와 포대화상

2019. 1. 13. 14: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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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개의 포대가 있다 - 포대화상 / 릴라님

나에게 한 개의 포대가 있으니
텅 비어 걸림이 없어라.
펼치면 온 우주를 두루 덮고
오므릴 때에도 자유 자재함을 보도다.
我有一布袋
虛空無罣碍.
展開遍時方
入時觀自在.

-포대화상(미상~917년 추정)

포대화상은 후량(後梁)시대의 선승으로 절강성 봉화현 사람입니다.

법명은 계차(契此)이며 호는 정웅(定應)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包袋和尙)이라 불렀습니다. 뚱뚱한 몸집에 배가 나왔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지팡이 끝에 커다란 포대를 매고 다녔기에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포대 속에는 마을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이며 과자, 엿 등 보시 받은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포대화상의 주머니에 있는 선물들을 받고 싶어 모여들기도 하고,

그의 해괴한 행색을 놀리며 막대기로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포대화상은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넘기거나 실랑이를 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그는 승려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못한 차림새였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그는 개의 뼈다귀를 담고 다녔는데, 그가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하면, 마을 사람들은 이를 조롱했습니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줘도 가져가지 않을 것을 팔고 다녔으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분별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이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그 진의를 알아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었으며, 땅바닥을 요 삼고, 구름을 이불 삼아

어디서든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습니다. 천재지변을 앞두고 뭇 짐승들이

먼저 그것을 알아 대피하는 것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포대화상이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또 장마철에 비가 내릴 때 그가 짚신을 신고 다니면 날이 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하나였기에 스스로 자연이 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의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신통함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하는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
그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포대화상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후딱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에게 한 개의 포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 포대로 인해

내가 있는 것이고, 나의 모든 경험과 삶, 나를 포함한 이 세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한 개의 포대에는 담을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

아는 것 등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이 안의 일입니다.

내어주더라도 여기에서 내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고 싶은 것, 남이 달라고 하는 것, 인연이 내어주기를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나와 드러난 것입니다.

포대화상은 주는 대로 모두 여기에 담았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닌다는 것은

우리네 인생 곳곳에서 맞이하는 인연들입니다. 이것을 오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또, 이 받아들인 것을 인연대로 내어줍니다. 아이들이 요구하든, 어른들이 요구하든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오는 인연 거절하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습니다.

펼치면 온 세계가 모두 이것이지만, 이 세계 낱낱의 인연이 때에 따라 일어나고

모이고 헤어짐에 걸림이 없습니다. 모두가 한 개 포대 안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펼치면 끝이 없고, 들여다보면 낱낱의 인연 따라 장애가 없습니다. 남겨둘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고, 회피할 것도 없습니다.

물이 인연 따라 흐르듯, 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가듯 장애가 없습니다.

선의 진수를 물으니, 포대를 쿵 내려놓고,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포대를 후딱 걸머지고 발을 내딛습니다. 깨달음은 모든 짐을 내려놓아 텅 비워지는

것이요, 텅 비워진 마음으로 인연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텅 비워진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온갖 짐을 지고 가더라도 본래 무게가 없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전과 다름없이 한 포대기의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지만 그 포대는

텅 빈 것입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사람의 도리를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자기를 돌보고 남을 돌보지만 거기에는 도리도 없고 생계도 없으며 일도 없습니다.

돌아볼 자기도 허울뿐이고 돌볼 남도 자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세상 모든 것이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고, 합일된 삶입니다.

이 한 개의 포대는 누구나 갖추고 있습니다. 나와 단 1mm의 거리도 없이 하나로

완전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이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다 다른 일이지만,

그것의 본성은 똑같은 한 포대입니다. 여기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헤아림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양에 속지 않는다면 눈앞의 모든 것이 진면목입니다.

미륵, 참 미륵이여!
천백억의 몸으로 나투어
때때로 저잣거리 사람들에게 보이나,
저잣거리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
彌勒眞彌勒, 分身千百億
時時示市人, 市人自不識.

포대화상은 이 게송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게송을 듣고 그가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미륵은 지금 눈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눈을 들어 앞을 보십시오.

지금 눈앞에 컵으로, 손으로, 책으로, 꽃으로, 하늘과 땅, 셀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있습니다.

  

- 몽지릴라 밴드에서


 
들고양이들 - 십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