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해탈, 부처에 대한 생각, 견해

2019. 4. 28. 09: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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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해탈, 부처에 대한 생각, 견해 / 법상스님




'깨달음', '해탈', '부처'라는 방편(方便)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견해는

깨달음, 해탈, 부처라는 방편(方便)이 가리키는 '이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들이 깨달은 자, 부처, 깨달음, 해탈은 '이럴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깨달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 상(相), 허상(虛想)일 뿐이다. 


깨달은 자, 부처, 깨달음, 해탈은 '이럴거야' 라는 생각, 견해 그것은

내가 그림 그려놓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일 뿐 깨달은 자, 부처, 깨달음, 해탈

그것 자체는 아니다. 바로 그와같은 깨달음, 해탈, 부처에 대한 나의 허황되고

과장된 해석들이 사람들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다! 


지금 불교게에서나, 불자들, 혹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깨달음, 부처, 해탈을

과장되고 환상적인 어떤 것이라는 그림, 이미지, 환상, 허상을 그리고 있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하듯, 깨달음, 부처, 해탈이라는 방편이 가리키는

것은 그렇게 대단하거나 과장되고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깨달음, 부처, 해탈이라는 방편이 가리키는 것은 가장 평범한 것이고,

세상 모든 것들이 항상 누리고 쓰고 있는 것이며, 귀하고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 흔해빠져서 없는 곳이 없는 것이다. 


깨달음, 부처, 해탈에 대한 환상을 버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깨달음,

부처, 해탈에 대한 환상 속에서 깨달음, 부처, 해탈이라는 환상만을 찾아 나서고,

그 환상을 끊임없이 추구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환상을 찾아 나서고 그 환상을 끊임없이 추구함은 무엇을 위한 추구일까?

그러한 환상 추구는 깨달음, 부처, 해탈을 찾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내가 그려놓은 깨달음, 부처, 해탈에 대한  이미지, 즉 허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정확한 환상(幻想, 허깨비)이다. 


깨달음, 부처, 해탈에 대한 환상을 '저 위'에 있는 곳에서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평범한 이 곳'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그랬을 때, 이 평범하고, 이 당연한,

아무 것도 아닌 그것이 드러날 수 있는 토대가 준비된 것이다.


-법상스님




[국제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