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 사람|…… 혜천스님설교

2019. 8. 16. 12: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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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 2556년 6 월 17일

내 옆

 

지난 주에 야외 법회를 하느라고 한 주 쉬었을 뿐인데, 아주 오랫만에 오늘 법회를 하는 거 같습니다.

 

사리푸트라 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죠.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후배와 함께하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전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어떠하신지요?" 사리푸트라 존자는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후배와 함께하는 것은 성스러운 도를 수행하는데 있어 전부가 된다, 그렇게 주장을 하죠. 부처님께서 사리푸트라 존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을 하시죠. "좋은 가르침과 좋은 법과 좋은 후배가 함께 한다면, 도의 수행의 전부다." 

 

사리푸트라 존자는 좋은 스승을 이야기했고, 부처님은 좋은 가르침을 이야기 하죠. 사리푸트라 존자 입장에서는 좋은 스승을 거론하는 것이 합당하고, 부처님 입장에서는 좋은 가르침을 거론하는 것이 합당하겠죠. 이 두 말씀을 듣고 빠사나디왕이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죠. 사리푸트라 존자는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후배를 이야기하셨고, 부처님께서는 좋은 가르침, 좋은 법, 좋은 후배를 이야기하셨다. 그렇다면 좋은 법과 좋은 동지를 갖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나쁜 법과 나쁜 동지를 사귀지 않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빠사나디 왕은 좋은 법과 좋은 동지를 갖는 것,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나쁜 법과 나쁜 동지를 사귀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하죠. 빠사나디왕은 아주 간명하게 이해를 하죠. 좋은 법과 좋은 동지를 사귀는 것, 그리고 나쁜 법과 나쁜 동지를 사귀지 않는 것.

 

우리가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재적 입장에서라고 했을 때. 빠사나디왕은 우리에 좋은 모범이 되죠. 빠사나디왕이 좋은 모범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빠사나디 입장에서 재해석한다는 거예요.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좋은 벗과 함께하는 것은 이 도의 전부라고 하셨죠. 그리고 게으르지 말고 좋은 벗을 사귈 것을 권하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나야말로 너희들의 가장 좋은 벗이라고도 하셨죠.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단순히 이해하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게 뭘까? 그것은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는 거예요. 내 옆에 누가 있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우리는 결코 혼자 살지 못하죠. 어느 누구도 혼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랑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되죠. 그런데 그 누가 내 옆에 있느냐에 따라서 삶이 아름다운 봄 날 꽃길이 되기도 하고, 가시밭길로 변하기도 하죠. 내 옆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없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죠. 근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이 중요하죠.     

 

어쩌면 부처님께서 45년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그것일지도 몰라요. 네 옆에 누가 있는가를 한 번 살펴보라! 네 옆에 있는 사람이 네 삶의 전부일 정도로 소중한 사람인가를 한 번 살펴라! 나아가서 너는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전부인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부처님은 45년 동안 많은 말씀을 하셨어요.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였을거라고 나는 봐요. '네 삶을 행복하게 살아라! 삶은 한 번의 삶이지 두 번의 삶은 없다.' 

 

우리에게는 한 번의 삶만 존재하지, 두 번의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불교에서 윤회를 이야기하고, 내생(來生)을 이야기하지만, 설사 우리가 다음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번의 생일 뿐이예요. 왜 그것이 한 번의 생이냐면, 우리는 전생의 어떤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전생의 어떤 기억도 짊어지고 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전생의 어떤 기억도 영속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단 한 번의 삶을 살죠. 단 한번의 삶을 살기 때문에 그 삶을 행복하게 살으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행복하게 살아야할 권리가 있고, 동시에 행복하게 살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행복은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죠. 아마 문득 이런 의문이 드실지도 모르겠어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권리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아이 거기 무슨 의무까지 붙는가?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우리는 한 번의 기회 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천상 세계에서 바늘을 떨어뜨려서 겨자씨에 꽂는 것과 같다고 그랬어요. 겨자씨는 씨중에 가장 작습니다. 그 작은 씨를 저 천상세계에서 바늘을 던져서 그 겨자씨를 꼽는 것보다 어렵다는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로또 인생보다도 더 로또 인생이죠. 로또는 몇 백만분의 1이라도 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더 낮습니다. 저 우주에서 바늘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겨자씨를 꿰뚫는다는 것은 요행 중에도 그런 요행이 없어요. 우리는 그렇게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행복은 권리이지만 동시에 의무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방일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하는 것도 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부처님은 우리에게 본래부터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처음부터, 그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행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처음부터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없죠. 행복이라는 것도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부처님께서 좋은 벗과 좋은 후배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내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장밋빛 인생이 되기도 하고, 그저 벌레 먹은 장미가 되기도 하니까.

 

인간은 참 멀리 봅니다. 우주를 보고. 인간은 스케일이 원대해서 우주를 향해서 가죠. 중국에서 우주 정거장에 유인 우주선을 쏘아서 도킹 실험을 한다고 우주를 향해서 우주선을 쐈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인간이 가장 취약한 거는 멀리 보고, 멀리 가는데, 가장 가까운 내 옆을 살피지 못한다는 거예요. 세상 일은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정작 나의 일과 내 옆의 일은 잘 모르죠.

 

좋은 벗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벗은 내가 찾는 거죠. 좋은 후배는 누군가가 내 삶에 택배로 보내주지 않습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죠.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고 싶거든 그 친구를 보라!' 그랬어요. 사람은 유유상종입니다. 같은 류는 같은 류끼리 어울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을 잘 모르겠거든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 그랬어요. 내 앞에 누가 있느냐고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45년간 누구보다도 중생의 좋은 벗이었어요. 끊임없이 행복을 일깨워 주셨으니까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가 행복할 수 없다면, 그 무엇을 소유하고, 그 무엇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권력을 얻으려고 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명예을 얻으려고 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부자가 될려고 하고...  그런데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겁니다.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거예요.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거예요.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것들이 조건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을 이루어주진 않는다는 거예요.

 

인간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인간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인간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물질중에 아마 가장 비싼 물질이 다이아몬드죠. 다이아몬드는 인도 사람들이 최초로 보석으로 가공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이었어요. 부처님 말씀에 금강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한 자리를 금강좌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은 인도 사람들이 발견해서, 인도 사람들이 가장 귀한 물건으로 만들었죠.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도 인도에서 발견된 거예요. 그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서 인도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기도 했죠. 최종적으로 그 다이아몬드를 차지한 것은 영국의 왕실이었어요. 인도를 지배하면서, 영국 왕실에서 당연히 지배자의 권리로서 획득해서 가져갔죠.  

 

제가 오늘 이야기할려고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은 그 가치는 희소성 때문에 오죠. 다이아몬드가 자갈처럼 많다면 아무 가치도 없겠죠. 도리어 쓸모가 없겠죠. 단단해서 가공해서 쓰기가 마땅치 않으니까요. 아무리 다이아몬드가 귀하다 할지라도 사람보다 귀할 순 없다는 거예요. 가장 귀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근데 참 사람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냐면, 가장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할 사람을 가장 홀대하죠.  내가 홀대라고 표현을 쓰는 것은, 대 놓고 홀대하고 구박한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저 으례껏 있는 물건인지라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면, 병문안을 갑니다. 아내가 감기 몸살로 누워 있으면, 병문안은 고사하고 밥 안준다고 짜증을 내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 분도 있다는 거죠. 저는 하나의 예를 일반화시켜서 적용시키진 않습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 경향이 있다는 거죠.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좋는 벗과 좋은 후배와 좋은 스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 하죠. 가장 현명한 자가 소크라테스라고요.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했죠. 가장 현명한 자가 누구냐고 신에게 물었다는 거죠. 그랬더니 신탁을 했더니 이렇게 나왔다는 거예요. 너! 소크라테스가 그 신탁을 받고, 경악을 했다 그러죠. 아! 아니 왜 내가 가장 현명한 자입니까?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했다 그러죠. 가장 현명한 자인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가장 악처였다고 후대에 일컬어지죠. 그것을 100% 우리가 믿는다면,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자일 수가 있었던 것은 아마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소크라테스를 가장 현명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의 아내는 가장 악독한 악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얘기예요. 소크라테스의 영광은 그녀가 만들어 준 거죠. 어쩌면 그녀가 신탁을 했더라면, 이렇게 나왔을른지도 모르죠. 이 세상에 가장 현명한 여자는 누구입니까? 아마 이렇게 신탁을 했더라면, 아마 신탁이 이렇게 나왔을지도 모르죠. 너잖아! 가장 현명한 자와 짝을 이루는 여자가 가장 현명하기 때문이예요. 세상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어요. 소크라테스와 그녀가 짝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죠. 그녀가 가장 현명한 여자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드러나 있는 현상만 가지고 이야길 하죠. 그 현상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모릅니다. 마치 우리는 그저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죠. 그렇지만 드라마 제작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르죠. 그저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으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은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하죠. 그가 좋은 친구인지, 그가 좋은 동지인지, 그가 나쁜 친구인지, 그가 나쁜 동지인지는 함께 해보지 우리는 사실 잘 모릅니다. 이 세상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요? 부모님입니다. 나를 가장 잘아는 사람은 부모님이예요. 동시에 나를 가장 잘 모른 사람 역시 부모님이죠. 부모님은 나를 가장 잘 압니다. 나를 낳고, 나를 낳아 키우셨기 때문이죠. 동시에 나를 가장 모릅니다. 자식에 대한 신뢰와 믿듬 때문에 자식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알죠. 얼마 전에 결혼을 한다고 청춘남녀가 인사를 왔어요. 그래서 제가 덕담을 해드렸습니다. 한 십년 쯤 살면 단점이 보일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벗어날 수 없다. 그 단점이 보일 때 잊지 말고 이 생각을 하라 그랬죠. 저 사람이 저 단점이 있어서 나랑 결혼해 줬구나! 저 단점이 없었으면 절대 나랑 결혼해 주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라고 그랬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 장점을 가장 많이 본 사람입니다. 동시에 내 단점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기도 하죠.

 

부처님께서 좋은 벗이라고 하는 주제로 많은 설법을 하셨는데, 나는 이 주제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벗은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죠. 그 벗이라고 하는 것을 누구를 특정지어서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그 벗이 좋는 스승일 수도 있고, 좋은 친구일 수도 있고, 좋는 후배일 수도 있고, 좋은 선배일 수도 있고, 또 좋은 가르침일 수도 있죠. 또 한 권의 좋은 책일 수도 있죠. 아니요, 때에 따라서는 한 편의 영화와 드라마도 좋은 벗일 수 있죠. 이 세상에는 나를 일깨워주는 것은 다 좋은 친구와 좋은 벗입니다.     

 

얼마 전에 강대 뒷산을 갔는데, 그 숲속 나무 사이로 비치는 태양이 너무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그저 한참을 서 있었죠. 영국의 스콧 대령은 티벳이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고원에 국가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티벳을 정복하기 위해서 티벳 스님의 복장을 하고 히말라야 산을 넘어서 가죠. 티벳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티벳은 단순히 서장(西藏)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탄이나 시킨, 이런 히말라야산도, 인도 쪽도 포함해서 내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는 히말라야 산을 넘어가면서, 스님들이 돌리는게 있죠. 그걸 만돌린이라 그러나, 뭐나? 그걸 돌리면서 갔죠. [마니차(불경이 들어 있는 원통)를 말하는 듯] 표면적으로다가는 순례자의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거리 측정기였어요. 돌릴 때마다 거리가 자동으로 측정이 되는 그 기계가 그 안에는 있었던 거죠. 그는 히말라야 산을 넘어서 티벳에 도착하죠. 티벳에 도착하는 그 순간 떠오르는 일출을  보죠. 스콧은 떠오르는 일출에 매료되어 다섯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그러죠. 그는 티벳에서 돌아와서 군복을 벗습니다. 그리고는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라고 하는 유명한 명상단체를 만들죠. 그는 티벳에서 떠오르는 태양,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자기 삶을 완전히 전환시켜 버리죠. 스콧에게는 티벳 고원에서 바라본 그 강렬한 태양이 가장 좋은 스승이었어요. 가장 좋은 벗이었고. 좋은 벗을 특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좋은 벗을 만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된다는 거예요. 좋은 벗이 찾아와 준다면 좋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 보다는 움직이면서 찾는 것이 효울적이기 때문이죠. 빠사나디는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분명하게 이해합니다. 나쁜 법과 나쁜 동지를 사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법과 좋은 동지를 갖는 거라는 거죠.    

 

요새는 밥을 한다고 그래서 조리로 쌀을 일지는 않죠. 다 돌을 골라서 나오니까요. 나쁜 벗을 사귀지 않는 것은 조리로 쌀을 이는 거와 같습니다. 조리로다가 쌀을 일면, 자연히 돌은 가라앉게 되어 있죠. 어떤 분들은, 아니 대다수의 분들이 그러시죠. 대한민국의 위대한 과학자로서 장영실을 꼽죠. 나는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조리를 개발한 사람이라고 생각 해요. 해시계, 물시계는 없어도 인간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조리가 없었으면, 먹고 사는데 상당한 애로가 있었을 거예요. 조리는? 조리가 참 대한민국에만 있는가요? 거 참 안 알아봤네. 그저 중요한 것은 빠사나디처럼 조리루다가 나쁜 친구와 나쁜 동지를 일러 내야 된다는 거. 그러면 당연히 좋은 친구만 남게 되겠죠.  아! 물론 눈 밝으신 분들은 바로 좋은 벗과 좋은 동지를 사귀시면 됩니다. 굳이 조리로다가 나쁜 친구와 나쁜 동지를 골라내려고 애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리가 성능이 좋지 않으면 일단 나쁜 것부터 고르십시요.  

 

오늘 주제는 '내 옆'입니다.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여기에 있는 분들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분들입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서서 내 옆에 누가 있어 줄 것인가? 도대체 누가 있어 줄 것인가? 그 있어주는 사람이 좋은 벗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벗인가? 각자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주면, 그 또한 나를 소중히 여길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그를 데면데면하게 생각하면, 그 또한 나를 데면데면하게 생각하죠.

 

인생의 반환점에서 좋은 벗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 가지 일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자기 관리입니다. 자기 관리가 되야 돼요. 자기가 관리가 안되면, 그 무엇을 가져다 놓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상입니다. 좋은 벗과 좋지 않은 벗을 가리는 기준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관리가 되는 벗은 좋은 벗입니다. 그러나 자기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은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벗이라는 것이죠.

 

오늘 강론은 여기까지입니다. 잠시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명상을 통해서 그 옆의 사람의 한 번 마음을 들여다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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