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목적과 본질은 자애심|…… 혜천스님설교

2019. 8. 25. 10: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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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2556년 6 월 24일

수행의 목적과 본질은 자애심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라고 이야기하셨죠. 그 한 길은 자애심의 길을 말하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자애심은 깨달음의 토대가 되고, 자애심은 깨달음의 근본이 되고, 자애심은 깨달음의 수레가 된다고 그랬어요. 자애심이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근본이라는 거예요. 자애심이 없이는 진리의 세계에 나아갈 수 없다고 하는 뜻이예요.

 

자애심은 세가지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 여섯 가지의 마음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존중하는 마음이 자애심입니다.

두 번째, 감사하는 마음이 자애심입니다.

세 번째, 사랑하는 마음이 자애심입니다.

 

자애심이란 존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죠. 그 마음을 확장시켜서 그 마음을 일으키고. 그 마음을 확장시켜서 무량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무량심에 이르면 자타(自他)의 경계가 무너지죠.

 

자애심은 여섯 가지 마음을 소멸시키는 거죠.

 

첫 번째, 멸시하는 마음과 무시하는 마음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보다 조건이 모자라는 사람을 보면, 멸시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죠.

 

두 번째는 질투하는 마음과 시기하는 마음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 있죠. 그리고

 

세 번째는 미워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을 소멸시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애심입니다.  

 

자애심이란 세가지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자애심이란 여섯 가지 마음르 소멸시키는 거죠.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죠.  멸시하는 마음과 무시하는 마음을 소멸시키고,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소멸시키고,  미워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를 소멸시키죠. 세 가지 마음을 일으켜야 깨달음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고, 여섯 가지 마음을 소멸시켜야 진리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존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멸시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이죠.

 

부처님은 시시때때로 배우고 익히라고 말씀하셨죠. 하나는 배우지 않아도, 익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고, 하나는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것은 배고푸면 밥먹는 거, 그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압니다. 졸리면 자는 것, 급하면 뛰는 것, 화가 나면 성질 내는 것, 물에 빠지면 살라고 헤엄치는 것, 더우면 그늘을 찾아 가는 것,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아 가는 것, 이거는 누가 가르치고, 설명해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죠. 

 

그러나 자애심을 일으키고, 세 가지의 마음을 일으키고, 여섯 가지의 마음을 소멸시키는 것은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이거는 배우고 익혀서 학습되는 것이지,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키고, 여섯 가지의 마음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하죠.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는 것도 세 가지의 마음을 일으키고, 여섯 가지의 마음을 소멸시키는 거예요. 그것 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마음(자애심)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인간의 역사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는 마음의 역사입니다. 어떤 마음의 역사를 이야기 할까요?  인간은 마음을 발견한 이래 끊임없이 자애심을 확장시킬려고 노력해온 역사입니다. 우리는 과거 시대에는 좀더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런 시대였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다퉜고, 살육했고, 여전히 약탈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카프카스 지방에 정착했을 때도, 인간은 살육과 약탈을 멈춘 적이 없어요. 인간의 역사는 살육과 약탈의 역사입니다. 그 살육과 약탈의 역사를 끊기 위해서 부처님은 자애심이라고 하는 칼을 우리에게 준 겁니다.  그 칼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여섯 가지 부정적인 마음을 끊으라는 거예요.

 

멸시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증오하는 미워하는 마음은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날까요? 생각으로 머물러 있을 때는 내 마음을 격동시키겠죠. 내 호흡을 거칠게 할 것이고, 내 체온을 상승시키죠. 그렇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살인과 약탈과 방화로 나타나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은 그 부정적인 마음을 끊고, 소멸시키고, 긍정적인 자애심을 일으키고 확장시키라는 거예요. 왜 부처님이 그 이야기를 하실까요?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 존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왜 행복할 수가 없을까요?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멸시하고, 스스로를 무시하지 않으면, 타인을 무시하고, 멸시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부처님은 말씀하시말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고서야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나를 존중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나에게 감사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감사할 수 있죠. 시기와 질투심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은 스스로에 대한 멸시가 있기 때문이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질투할 이유가 없죠.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명예와 권력과 돈과 사랑을 추구하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타인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내 본성에 충족되지 않았을 때,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죠. 명예와 권력과 돈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 하나가 부족하면 세 개를 얻었다 할지라도,  하나가 부족하면  네 개를 가진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죠.

 

모든 것을 가져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만 가져도 행복할 수 있죠. 명예만 가져도 행복하고, 권력만 가져도 행복할 수 있고, 돈만 가져도 행복할 수 있고, 사랑만 가져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적어도 인간 세계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네 가지를 다 가진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혹시 그런 사람 본적 있습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와 사랑을 다 가진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없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존중과 사랑과 감사를 받았지만, 부처님은 불행하게도 아주 가난했습니다. 돈이 없었어요. 그가 가진 것이라곤 한 벌의 옷과 밥 그릇 하나, 물걸림망 하나, 그리고 바닥 깔개 하나. 그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근데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싶어하고. 권력만 가지면 욕을 먹습니다. 그래서 명예도 얻고 싶어 하죠. 그 세 개를 가져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사랑받고 싶어하죠. 우리는 그 네 가지 중에 하나만 부족해도 강한 결핍을 느끼죠.

 

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그걸 물은 적이 있어요.  스님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그러는데, 스님은 네개 중에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얻고 싶습니까? 제가 그 분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얻고 싶어하고, 누구나 추구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선택이다. "  그것을 얻고, 그것을 얻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죠. 부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요? 추구해서 얻어질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얻지 못했을 때, 자기를 질시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무엇이 가장 큰 행복입니까? 아마 각자가 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이 자리에서 살아서 숨쉬는 거죠. 내가 이 자리에서 살아 숨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왜 내가 이 자리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 행복이냐고요? 내가 이 자리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얻을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걸 뜻하죠. 내가 이 자리에서 숨쉬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박탈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죠.

 

사업이 부도가 나서 잠을 못 주무시는 그런 분한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연세가 올 해 오십이니까 적어도 앞으로 30년의 기회는 있지 않습니까? 비록 50년의 자취가 소멸되었다 할지라도, 앞으로 30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날 기간은, 30년은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나서 뛸 수 있습니다. 단지 선생님께서 5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돌아보고, 3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라 그랬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소멸시키라 그랬죠. 남을 미워하고, 남을 증오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조금 전에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과 배워서 아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배워서 아는 거죠. 무슨 말씀이냐 하면 사랑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는 얘기예요. 사랑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왜일까요? 사랑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은 감성이죠. 그러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죠. 사랑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고, 사랑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죠. 사랑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다섯 가지 감관을 통해서 알 수 있죠. 사랑한단 말을 하루에 천 번을 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죠. 왜 감동시키지 못하냐면,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서 대상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서 만납니다. 다섯 가지 감각은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랑은 학습되는 겁니다. 사랑은 배우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자애심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자애심은 깨달음의 근본이며, 자애심은 깨달음의 토대이며, 자애심은 깨달음의 수레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죠.

 

앉아서 마음을 들숨, 날숨에 집중하십시요. 들숨에서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십시요. 그리고 그 마음을 확장시키십시요. 날숨에서 멸시하는 마음과 무시하는 마음을 소멸시키십시요. 들숨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 마음을 확장시키십시요. 날숨에서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소멸시키십시요. 들숨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 마음을 확장하십시요. 날숨에서 미워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을 내려 놓으십시요. 깨달음의 길은 험난하고, 깨달음의 길은 멉니다. 그 먼길과 험난한 길을 가면서, 뭣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갑니까? 멸시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은 무거운 짐입니다.  

 

철옹성이라 할지라도 철옹성을 여는 열쇠가 있죠. 천궁의 성도 길이 없지만, 천궁에, 하늘에 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인간이 그 성을 만들었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그 곳에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요. 천궁에 이르는 길, 철옹성을 여는 길 모두가, 그 열쇠는 자애심입니다. 그 자애심을 확장시켜서 무량심에 이르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무량심은 자타의 경계가 무너진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분별이 없는 마음이죠. 그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다르마의 마음이죠. 부처님께서 마음을 보라고 하는 것은 자애심을 확장시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무량심이 되게 하라는 얘기예요. 그럴 때 비로소 다르마의 문턱에 이르고  그 문턱을 넘어 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인간은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죠. 인간이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그 한계성을 넘어서 가능성을 열려면 자기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돼요.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무한성에 이를 수 있죠. 무한성은 진리의 세계입니다. 다르마의 세계죠. 가능성을 열고 무한성에 이르는 것은 오직 자애심을 확장시켜서 무량심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성취되죠. 

 

부처님께서는 배우고 익히라 그랬어요. 부처님은 노력하고, 노력하라 그러셨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마지막 말씀이 그거 아닙니까? 노력하고, 노력해라! 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잘 아는 아이가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그림을 배워 보라고 권했죠. 그랬더니, 그림을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뭐 재미있어서 죽겠다고 그래요.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이 재미없어졌다는 거예요. 제가 왜 그 아이에게 그림을 배워보라고 그랬을까요?  제가 그 아이의 예술의 천재성을 발견해서일까요? 사실 제 속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도 어렵지만, 그림도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를 원했던 거예요.

 

무슨 이야기냐면, 이것이 어려우면, 저것도 어렵죠. 이 세상에 어렵지 않은 것이 어디 있던가요? 자연적으로 쉬어지는 이 들 숨, 날 숨도 임종 시기에 이르러 보십시요. 인공호흡기를 끼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천식으로 고생하시는 연로하신 분들을 보십시요. 얼마나 숨쉬기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시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쉬운 게 뭐 있어요? 먹으면 싼다고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르마죠. 때에 따라서는 먹는 것 보다 어려운게 없고, 때에 따라서는 배변보다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배우고 익히면 어려운 것도 없죠. 공부가 어려운 것은 왜 어렵겠습니까? 사실 몰라서 어렵습니다. 알면 어려울 게 없죠. 모르는 것은 다 어렵습니다. 아는 것은 다 쉽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 쌀 씻어서, 그저 물 부어서, 전기 코드 꽂고, 그저 눌러만 줘도 되는 , 그 전기 밥솥에 밥하는 것도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저 노력하고, 노력하십시요. 자애심을 일으키고, 그 자애심의 세 가지 긍정적인 마음, 존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확장시키고, 그 자애심의 부정적인 마음, 멸시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소멸시키십시요.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길입니다.

 

깨달음은 , 즉 내 삶의 변화는 어느 날 우연하게 벼락이 내리쳐서 벽조목(霹棗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때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악한 기운을 쫓고, 좋은 기운을 불러 들인다고, 그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뭬라고, 그거로 판 도장이 수 십만원에 팔릴 정도로 유행한 적이 있죠. 벽조목은 우연히 벼락을 만들어서 생길 수 있지만, 우리 삶의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배우고 익히고 하는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오늘은 선우님 한 분이 수행에 대해서 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셔서, 수행의 근본과 본질이 뭔가에 대해서 오늘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우님들께서 법회가 끝나고 차를 마시지 않으니까, 아니 뭐 법회를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차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법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잠시 좌선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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