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결과를 낳는다|…… 혜천스님설교

2019. 11. 23. 21: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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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嵇瀳)스님의 일요강론: 2556년 8월 19일 

과정이 결과를 낳는다





 

 

부처님께서 업도 있고, 과보도 있지만, 그러나 업을 짓는 자는 없다고 그랬어요.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업도 있고, 과보도 있고, 다 있는데, 그런데 업을 짓는 사람은 없다? 업을 지어야, 업도 성립되고, 과보도 성립되는데... 부처님께서는 업도 있고 과보도 있지만, 그렇지만 업을 짓는 사람은 없다고 그랬어요.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이해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을 제어하나니..." 내가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을 제어하면, 업을 짓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돼요. 내가 업을 지으니가 업이 존재하지, 내가 업을 짓지 않으면 업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 무슨 말인가 하면, 과정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얘기예요. 

 

과정이 결과를 낳죠. 달걀이 닭을 낳듯이. 내가 몸과 입과 마음에서 악업을 제어하면, 더 이상 업은 존재하지 않게 돼요. 업이라는 건 내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예요. 업은 오직 내가 만들죠. 그 업의 과보도 내가 받고.  부처님께서 업도 있고, 과보도 있고, 그러나 업을 짓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우리는 업을 수없이 이야기 하죠. 그러면서 정작 업을 짓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은 부족하죠. 업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왜 정작 업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은 그렇게 부족할까요? 

 

부처님은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이야기하시죠.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노력하는 겁니다. 그저 노력하고 노력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시잖아요. 그 단단한 비위를 또~옥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 바위를 뚫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바위가 단단해서, 뚫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위를 뚫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능히 바위를 뚫듯이,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 오죠. 

 

많은 분들이 변화된 삶을 이야기해요. 변화된 삶을 살고 싶다고 하구요. 나는 변화되고 싶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말뿐이죠.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실제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없죠. 생각만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없으니까요. 내가 변화된 삶을 원하면, 내 삶이 변화된 삶이 되도록, 내 변화된 노력이 필요하죠. 나쁜 습관을 스스로 고쳐야될 것이고, 맨날 술을 먹는다면, 술을 줄이려고 하는 노력부터 있어야할 것이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변화된 삶만을 얘기한다면, 과정이 없는데 어떤 결과가 있겠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노력도 없어요. 마치 입만 뻥끗대죠. 마치 금붕어처럼요. 실제적인 행동과 노력이 없이는, 변화된 삶은 불가능해요.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이 바뀔 것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아요. 내 인생이 바뀌려면 내 인생을 바꿀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죠. 그 노력이 내 삶을 바꿔주는 거죠. 평온한 삶을 살고 싶으면, 평온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되고,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되고, 권력을 얻고 싶으면 권력을 얻을려는 노력이 있어야 돼요. 명예를 얻고 싶으면 명예을 얻을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사랑을 얻으려면 사랑을 얻으려는 노력이 있어야죠. 아무 노력도 없이 주어지는 댓가는 없습니다.  

 

이 땅에 수없는 분들이 불국토를 입으로다 부르짖었지만, 이 세상이 불국토가 안 된거는 그들의 입 때문이예요. 그들이 입으로만 불국토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 땅이 불국토가 안된 거예요. 정말 이 땅이 불국토가 되기를 원했다면, 불국토가 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됐겠죠.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 주지였던 나청오 스님처럼 말이예요. 나청오 스님은 경기 지방에 대홍수가 일어나서, 한강이 범람해서, 한강 유역을 다 쓸을 때, 봉은사의 전 재산을 기울여서, 무려 750여명을 한강에서 건졌어요. 한 사람을 건지는데, 쌀 열가마닌가를 주었다든가요. 한강에 떠내려 가는 사람을 건지는데, 사람들이 쌀을 받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건졌죠. 조선총독부도 포기하고, 모든 사람이 포기했는데, 나청오 스님은 봉은사의 전 재산을 기울렸어요. 그래서 무려 750여명을 한강 급류에 휩쓸려서 떠내려 가는 사람들을 건졌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껏 한다는 것이 한강면에서 '저걸 어째, 저걸 어째...' 밖에 하지 않았어요. 뭘 어쩌긴 뭘 어째? 조금 있으면 다 한강물에 빠져서 죽겠지. 그러나 나청오 스님은 실제적으로 행동했어요. 그 행동만이 한강 급류 속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건지지, 말로써는 건질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말은 그럴듯 하죠. 뭐,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인데, 뭐 어쩌라구? 계속 아프라고? 원래 청춘은 아프니까. 우리가 더 이상 이런 것을 용납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돼.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그 아픈 청춘을 어떻게 아프지 않게 해줄 것인가를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해야죠. 그것을 행동으로 해야 돼요. 매일 공허한 이야기만 우리는 하죠. 권력자는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이 된거를 확신했다고 얘기하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요? 달라진 거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서 고통받고 있고요. 세상이 말로서 달라지진 않죠.

 

실제적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쌀을 풀어야 할 것이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도를 해야 하겠죠. 할머니 손이 약손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집도할 수 없어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의 방식일 뿐이죠. 할머니의 손이 약손일 수는 없어요. 그것은 심리적인 위로는 될 수 있지만, 맹장염에 걸려서, 맹장이 터져서 굴르는 아이의 맹장을 고칠 수는 없어요. 그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도 없고. 

 

왜 부처님께서 업을 짓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을 해야 돼요. 결국은 내가 업도 짓고, 결국은 내가 그 업도 받는 거예요. 누가 업을 짓는 것도 아니고, 누가 업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행동할 거를 요구하는 거예요. 무슨 행동할 거를 요구하는냐? 업을 짓지 않을 행동을 요구하는 거예요. 업을 짓지 말으라는 거예요. 어떻게? 행동으로. 항상 생각과 말로만 하지 말고.

 

내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라는 얘기예요. 우리가 물이라고 떠든다고 해서 내 갈증이 풀리지 않고, 내가 불이라고 떠든다고 해서 어둠이 밝아지진 않습니다. 어두우면 등불을 켜고... 최소한 등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등불을 밝히라고 이야기를 해야죠. 그래야 어둠이 밝아지지, 생각만 가지고, 아! 등불켜야 밝아지는데... 한다고 그래서 등불이 켜지는 건가요. 안 켜집니다. 등불에 불이 붙으라고 한다고 그래서 등불에 불이 붙는 거 아니예요. 내가 성냥을 켜서 호롱불에 불을 붙여야만이 불은 붙고, 전깃불도 스위치를 눌러야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무슨 변화가 있겠어요. 과정이 없는데 무슨 결과가 있겠는가요. 천하없는 사람도 과정이 없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과보라고 하는 그 결과도 내가 만든거죠.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변화도 내가 만든 거죠.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요. 누군가가 만든 변화에 편승하는 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변화지 나의 변화는 아니예요. 나는 그의 변화에 편승한다면, 나는 그의 노예라는 걸 뜻하죠. 나는 그의 노예일 뿐이예요. 그를 추종하는 노예죠. 

 

부처님께서는 변화하고 싶으면, 그 변화할 수 있는 그 과정을 만들라는 얘기예요. 과정을 만들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우리는 말로써 사람을 죽이고, 말로써 사람을 살리죠. 말로써 죽였다고 그 사람이 죽지도 않고, 말로써 살린다고 그래서 그 사람이 살지도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처음도, 끝도 하나도 없죠. 그저 말만 있었을 뿐이죠.   

 

부처님께서 "업도 있고, 과보도 있지만, 그러나 업을 짓는 작자는 없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돼요.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을 제어하나니'. 우리가 부단이 내 몸과 입과 마음에서 악업을 제어를 하면, 더 이상 업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돼요. 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업은 나하고 무관하게 된다는 얘기예요. 내가 물 속에 있으면, 그 물 속에 휩쓸려가지만, 내가 물 밖에 있으면 그 물에 휩쓸려 가지 않습니다. 그거하고 똑 같죠. 과정이 결과를 만듭니다. 결과가 과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과정을 만드느냐? 그것이 내 결과죠.

 

오늘은, 주제가 '과정이 결과를 낳는다' 입니다. 과정이 결과를 낳는 것이지, 결과가 과정을 낳지는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노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노력은 과정입니다. 동시에 결과입니다. 노력은 과정을 만들고, 동시에 결과를 만들죠.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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