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 평형(動的 平衡) |…… 혜천스님설교

2019. 11. 30. 21: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2556년 8월 26일

동적 평형(動的 平衡)  

 

 

부처님께서 쉬라바스티(Shravasti:사위성舍衛城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스님은 수레바시티라고 발음하지만, 일반적으로 쉬라바스티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렇게 표기하기로 함) 아나타핀디카 사원(Anāthapindika :아나타삔디카로  표기하기도 함, 한문으로 給孤獨) 사원에 계실 때, 그 쉬라바스티를 공포에 몰아넣는 한 사람이 있었죠. 그 사람은 앙굴리마라(Angulimara)라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희대의 살인범이라서,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서 자기 목에 걸었죠.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이 앙굴리마라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밤이 되면 외출을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죠. 도적의 수괴인 앙굴리마라는 국가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부처님께서는 그 흉악한 앙굴리마라를 제도하기 위해서, 어는 날 앙굴리마라가 머무르고 있는 밀림 속으로 들어갔죠. 들어가서 그 앙굴리마라를 제도합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공포를 지나서, 거의 전율할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죠. 그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쉬라바스티 아나타핀디카 사원에 있다고 하는 소문이, 삽시간에 쉬라바스티를 휩쓸고 지나갔죠. 그 소문은 왕인 빠사나디에게도 전해지고, 빠사나디는 놀래서 군사를 이끌고 아나타핀디카 사원을 향해서 질풍처럼 달려갔죠. 삽시간에 아나타핀디카 사원은 군사들에 의해 둘러싸이고, 빠사나디는 날쌘 군사들을 이끌고 아나타핀티카 사원으로 들어가서, 부처님을 뵙죠. 

 

그러고 빠사나디는 이렇게 말하죠. "부처님, 제가 듣건대, 앙굴리마라가 이 사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 흉흉한 소문이 쉬라바스티를 덥치고 있습니다.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두려움에 길거리를 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문을 잠그고도 두려워서 떨고 있습니다. 앙굴리마라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아니면 그저 헛소문인가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죠. "라자여, 앙굴리마라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잇는 것은 맞네. 앙굴리마라는 얼마 전에 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해서, 나의 제자가 되었다네. 앙굴리마라는 나의 아들이 된 것이지. 그를 한 번 보겠는가?"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앙굴리마라를 데려오라고 하시죠. 앙굴리마라가 빠사나디 앞에 나타나자, 빠사나디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는 곤두서고, 그 두려움에 몸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털이 곤두섰다고 하죠.  

 

빠사나디는 말을 더듬으면서, "이 수행자가 그 동안 쉬라바스티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살인마, 앙굴리마라입니까?" "그렇다네, 라자여!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이 수행자가 그 동안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했던, 전율케 했던, 우는 아이도 저기 앙굴리마라가 온다 하면, 울음을 뚝 그쳤던 바로 그 사람이라네. 그대가 생각하는 앙굴리마라는 존재하지 않네. 여기에 있는 앙굴리마라는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아닌 성자 앙굴리마라이네." 빠사나디는 한참을 고민을 하죠. 국가 지도자로서 그 동안 수없는 사람을 죽여서, 그의 손가락을 잘라서 기념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었던, 이 희대의 살인마를 잡아서 처형할 것인가? 아니면 부처님 말씀대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아니라 성자인 앙굴리마라이기 때문에, 국가의 이름으로 이 자를 사면해야 하는가? 이윽고 빠사나디왕은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죠. "여기 있는 앙굴리마라가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아닌 성자 앙굴리마라라고 하는 것을 저도 믿습니다.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지었던 그 수없는 악과 죄는 사면하도록 하겠습니다." 앙굴리마라라고 하는 그의 이름의 뜻은, 아마 그것은 그 사람의 본명은 아니었습니다. 본명이 무엇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죠. 앙굴리마라라고 하는 뜻은 손가락 목걸이라고 하는 뜻이죠.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서 목걸이로 만들어 걸었다고 해서, 그의 별명이 손가락 목걸이를 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악마적인 속성과 성자적인 속성이 동시에 있죠. 앙굴리마라가 부처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 악마적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라면, 부처님을 만나고, 그 가르침을 듣고, 그의 또 다른 하나의 속성인 성자의 속성을 또한 숨김없이 드러내죠. 우리 모두는 앙굴리마라입니다. 악마적이기도 하고, 성자적이기도 하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죠.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역사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죠. 왜 역사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냐면, 우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 교훈을 얻지 못하고, 현재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반복하고, 미래의 역사 속에서 또한 같은 행동을 똑같이 하기 때문이예요.      

 

지난 주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그 숨겨진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한 주일이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죠. 여의도에서는 과거의 직장의 동료들에게 불만을 가졌다는 사람이 칼을 휘둘렀고, 의정부에서는 침을 뱉어서 침이 튀니까 왜 침을 뱉느냐고 했다고 해서, 이유없이 아무 사람에게나 칼을 휘둘르기도 했죠.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을 절망 범죄라고 이야기 하죠. 어떤 사람은 다중 살인의 징후가 이 사회에도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뭔가 하나의 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그 두 사건 뿐만 아니라 근래에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마 우리 사회가 총을 허용하는 사회였더라면, 그렇게 칼을 들고 설치지는 않았겠죠. 그저 미국처럼 총을 들고 다 갈겼겠죠.

 

왜 부처님께서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거두어 제자로 삼았을까요? 왜 빠사나디는 왕으로서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그 죄를 묻지 않고 사면을 했을까요?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야기하죠. 정의로운 사회를 누구나가 이야기하고, 누구나가 그 사회를 꿈꾸죠. 그 정의라고 하는 이름으로 앙굴리마라는 처단되는 것이 합당한 것이었을까요? 아니, 합당한 것이 아니라, 앙굴리마라는 정의의 이름으로 단두대에서 그의 목이 잘리는 것이 그 자체가 정의였겠죠.

 

근데 부처님은 쉬라바스티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 희대의 살인마를, 바로 그 자리 쉬라바스티에 있는 아나타핀디카 사원에 데려와서 제자로 삼았어요. 그리고 그를 탁발에 내 보냈죠. 쉬라바스티 사람들이 그에 대한 증오, 그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앙굴리마라는 결국은 그가 살해했던 수없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의 유족으로부터, 아니 누군가의 유족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겠죠. 쉬라바스티 사람들의 집단 폭행 속에서, 그는 웃으면서 숨졌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죠. 앙굴리마라는 결국은 쉬라바스티 시민들 손에 의해서, 그는 생명이 거두어지죠. 국가는 사면을 했지만, 시민들은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마라를 제자로 거뒀고, 왜 라자인빠사니디는 그를 사면했을까요?' 하는 것이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마는 우리는 악마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물론 성자적인 속성도 동시에 있죠. 앙굴리마라가 악마적 속성이 초기에 강렬하게 드러난 것은 반드시 그 한 사람의 책임이다라고,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앙굴리마라가 그렇게 쉽게 희대의 살인마가 된 데에는 그가 속한 그 사회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부처님은 그 시대에 앙굴리마라를 통해서 그 시대의 한계성을 이야기하고자 하신 것인지도 모르죠. 그 시대는 오직 힘 센 자만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였어요. 끊임없이 영토확장 전쟁이 되풀이되는 시대였고, 오직 힘쎄고, 권력을 가진 자만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회였어요. 경전에는 그의 일화를 윤색해서, 그가 바라문 출신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곳도 있어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앙굴리마라는 찬다라 출신일 가능성이 가장 많죠. 가장 밑바닥 출신이었을 겁니다. 신분사회에서 밑바닥 출신이 신분 상승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도적이 되든지, 하나는 반란을 일으켜서 왕이 되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죠. 도적이 되기는 쉽습니다. 힘이 있으면 할 수 있죠. 그러나 반란을 일으켜서 왕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힘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마라는 아마 국가라고 하는 이름 속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앙굴리마라처럼 살인을 행하면 살인마라 부르죠. 그리고 악마라고 부릅니다. 근데 국가의 이름으로 살육을 하면 영웅이라고 하죠.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수없는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목을 가장 많이 자른 사람들이예요. 개인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국가의 폭력이죠. 국가의 폭력이 앙굴리마라 같은 사람을 만듭니다. 국가의 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요? 꼴등이 일등과 같이 누릴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꼴등도 일등과 같이 누릴 수 있다면, 일등과 꼴등의 의미는 없죠. 일등은 모든 것을 누리는데, 꼴등은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한다면, 꼴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포자기 하든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세상 탓으로 돌리든지, 둘 중에 하나겠죠. 이번에 여의도 그 친구는 4000만원의 빚에 주머니는 200원밖에 없었다든가요. 신용불량자에.

 

꼴등이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는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죠. 지금은 그 한 사람이 그와 같은 짓을 했지만, 그 사람이 열 사람이 되고, 백 사람이 되고, 천 사람이 된다면, 이 사회는 붕괴하겠죠. 부처님은 피로 피를 씻지 못한다 그랬어요. 피로는 피를 씻지 못한다는 거예요. 대통령이 묻지마 범죄를 엄단해야 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 국가와 사회가 되었는가에 대한 자기 반성과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죠. 우리 사회는 지금 개인의 성찰과 사회의 성찰을 필요로 하는 사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평형이 깨진 사회죠.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지 않죠.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책임의식이 없다는 이야기예요. 책임의식이 없는 것은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죠. 개인도 성찰하지 않고, 사회도 성찰하지 않지요. 단지 루저가 난동을 부렸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죠. 그 루저를 쳐 넣어서 가두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 루저를 격리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죠. 

 

우리가 빠사나디가 왜 앙굴리마라를 사면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돼요. 국가가 저지르는 해악과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비한다면, 그들의 범죄는 너무나도 불쌍하죠. 남을 해한 것이 그나마 한 올의 자기의 인생조차도 파멸시켰으니까요. 그들은 그 동안 그나마 사회에서 용납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겉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꼴등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는 나라입니다. 꼴등은 무시하고, 멸시하고. 우리 사회처럼 잔인한 사회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도, 우리 사회는 이미 평형이 무너진 사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개인에 대한 성찰과 이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한, 우리 사회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이유는 한 가지 징후만 봐도 알 수 있죠. 우리 젊은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사회라는 걸 뜻하는 거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의 양육비가 많이 들어서, 아이의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우리 공익 광고 중에 '나도 하세요'라는 공익광고가 있습니다. 아마 들어 보셨을 거예요. '나도 하세요'라는 공익광고는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현실에 유리되어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광고죠.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얼마만큼 이 사회에 대해서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일본의 소설, 랴소몽에서 이런 말이 나오죠. 우리는 칼로 사람을 죽이지만, 너희들은 권력과 말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피라미죠. 그래서 다 그물에 걸립니다. 그렇지마는 권력자와 재벌은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도 사회에 공헌했다고 하는 이유로 사면이 되죠. 그런 사회가 그들에게 잘못을 물을 수가 있는가요? 

 

내 오늘 이 강론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참회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들을 그렇게 되게끔 몰아넣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부처님께서 앙굴리마라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 뜻을 우리가 새겨야 됩니다. 빠사나디가 그를 사면한 거를 우리가 새겨야 돼요.

 

율장에서는 이런 규정을 읽을 수가 있죠. 범죄자를 출가시켜서는 안 된다. 앙굴리마라 이후에 생긴 규정입니다. 범죄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출가시켜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나중에 그 규정이 만들어 졌는데, 부처님은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셨어요. 그는 쉬라바스티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사람이고, 국가 권력도 그를 어쩌지 못했던 사람이예요. 어쩌면 앙굴리마라는 그 시대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민중들은 그를 보호했었는지도 모르죠. 그를 국가의 권력도 어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를 보호하는 세력이 있었을 수 있다는 걸 뜻할 수도 있죠. 신창원이가 탈출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신창원이가 잡히지 않길 바라는 거와 같죠.

 

자기 성찰과 사회의 성찰이 없는 사회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거. 그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진리입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동적 평형입니다. 동적 평형은 기계적인 평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평형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함께 합장하시죠.

우러러 온 법계에 충만하사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만유에 평등하사 자비의 구름으로 피어나신 진리이신 부처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서 그 분노를 키우고 있사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고, 그 분노를 사그러지게 하시고, 저희들에게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

 

잠시 좌선하겠습니다.

 


       
       
      그 바닷가에 가고싶습니다.
      젊음이 숨쉬는 그 곳에서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오래도록 창가에 앉아
      도미노처럼 쓸어졌다 일어나는 파도에
      사랑노래 불렀던 해 지는 저녁
      자라처럼 목을 길게 늘여
      블랙커피의 향에 당신을 담고 
      나즈막히 불러보았던 당신의 이름
      라일락향기 불어오는 바람춤에 
      심장도 같이 춤을 추며
      당신 곁으로, 곁으로 끌려만 갔던 바닷가..
      그 바닷가 ... 우련祐練신경희
      
      01. Don't Know Why - Norah Jones
      02. 7 Days - Craig David
      03. More Than Words - Extreme
      04. It Must Have Been Love - Roxette
      05. Just Another Day - Jon Secada
      06. There You'll Be - Faith Hill
      07. Cherish - Kool & The Gang
      08. Goodbye To You - Michelle Branch
      09. If You Leave Me Now - Chicago
      10. Tonight I Celebrate My Love - Peabo Bryson & Roberta Flack
      11. Nothing Compares To U - Sinead O Connor
      12. Ocean Deep - Cliff Richard
      13. Don't Dream Its Over - Crowded House
      14. The Day You Went Away - M2M
      15. Sailing - Christopher Cross
      16. If You Don't Know Me By Now - Simply 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