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8. 18:2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혜천(嵇瀳)스님의 일요강론 : 2556년 9월 23일 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오늘 주제는 '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이이첨의 유언
'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이 말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참형을 당했던 이이첨(李爾瞻: 1560~- 1623년(인조1년))이가 참형장에서 인조반정의 공신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이첨이가 이 말을 했던 이유는 그의 가난했던 시절의 그의 모습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이첨은 이극돈(李克墩)의 5세손이죠. 이극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 때 무오사화[스님께서는 갑자사화를 말씀하셨지만, 착각한 듯하여, 무오사화로 바로 잡습니다. 갑자사화는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일으켰던 동기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연산군한테 보고해서 무오사화[무오사화(戊午士禍)는 조선의 역사에서 ‘사화’라는 이름이 붙은 첫 사건으로1498년(연산군 4)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에게 화를 입은 사건]를 일어나게 했던 사람이 이극돈이죠. 그의 5세손이 이이첨입니다.
이이첨의 배고픈 시절
사림이 힘을 얻고서부터는 그의 후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으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이 가능하죠. 젊은 날 이이첨이는 가난했어요. 아주 여러 날을 굶었던 모양이예요. 굶다가 안방에 있던 부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서 안방으로 들어가요. 이이첨은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죠. 여러 날을 굶은 부인이 그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서, 아마 한 순간 정신이 나갔겠죠. 방벽을 손으로다가 긁어서 먹고 있더라는 거예요. 안방에 들어가 보니까 이이첨의 부인은 그 방 벽을 맨 손톱으로 긁어서 그걸 먹고 있었어요.
참형당하는 이이첨
그 모습을 보고 이이첨이 눈물을 흘리면서, 맹세를 했죠. 반드시 내가 권력을 잡으면, 권력을 잡아서 오늘의 이 한을 씻으리라. 이이첨은 그의 맹세와 그의 오기처럼 과거에 급제했고, 이조 정랑이 되었죠. 이이첨은 이조 정랑이 되었을 때,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을 탄핵했습니다. 이이첨이 영의정 유영경을 탄핵하지 않았으면, 광해군은 왕이 되기 어려웠죠. 덕분에 광해군은 왕이 될 수 있었죠. 유영경을 탄핵했기 때문에 이이첨은 선조의 진노를 사서, 귀양을 따나게 되었지만, 도성을 벗어나기 직전에 선조는 갑자기 죽었죠. 광해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이첨을 사면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이첨은 권력을 잡았죠. 그는 그 날 안방에서의 아내 모습을 보고, 맹세했던 것처럼 그는 15년간 한을 씻었어요. 15년 후에 왕위는 찬탈되었죠. 광해군 15년 동안에 실세 중의 실세, 이이첨은 쿠테타 세력에 의해서 참형 당하죠. '공들은 배개 고파도 참으시오' 한 말은 그 처형장에서 한 말입니다.
이이첨의 유언이 의미하는 바
내가 왜 이 고사를 먼저 거론하느냐면, 이이첨의 이런 모습은 우리의 현실 삶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죠. 이이첨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만약에 이이첨이 멈출 줄 알았더라면, 실성해서 방벽을 손톱으로 긁어서 허우적거리면서 먹던 모습을 봤던 그 부인이 15년 후에 노비로 전락해서 비참한 삶으로 그의 생이 마감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이이첨은 굳이 허물을 따진다면, 멈추지 못한게 허물이죠.
우리는 이이첨을 간신이라고 이야기하죠. 이이첨이 간신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요. 왕위를 놓고,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그것이 권력에서는 노상 있는 일이니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이첨이 멈추지 못했다는 거예요.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가버린거죠. 끝까지 가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가 한을 씻어 주고자 했던 그의 부인도 파멸시키고 말았죠.
부처님의 거울 이야기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시죠. "거울에 비춰지고 있는 네 모습을 봐라" 거울에 비춰지고 있는 모습을 보려면, 멈추어야 됩니다. 멈추지 않으면, 거울에 비춰지고 있는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뛰면서, 걸으면서 보는 내 모습은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비춰지고 있는 거울 속의 나, 그 나의 눈동자에, 그 나의 눈동자에 눈을 맞추고 봐야, 나를 볼 수가 있죠. 그러기 때문에 거울 속의 나를 볼려면, 반드시 멈추어야 됩니다. 멈추지 않으면 나를 보지 못하죠. 나는 이이첨이 형장에서 했다는 말을 생각하면, 이이첨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삶이 얾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좀 더 여유로웠더라면, 아마 그렇게 멈추지 못하고, 넘쳐서 자신을 파멸시키는 일은 없었겠죠.
부처님은 소욕지족(所欲之足)하라고 그러죠. 소욕지족이라는 말은 멈추어서 자신을 살펴보라는 얘기예요. 멈추어서 네 자리를 한번 점검해보라는 얘기예요. 네가 앉은 자리, 네가 선 자리, 네가 누운 자리, 네가 지금 가고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너의 자리인가 한 번 점검해보라는 말이예요. 이이첨이 스스로가 앉은 자리, 선 자리, 누운 자리, 그리고 간 자리를 살펴보았더라면, 고진감내의 아름다운 고사가 되었겠죠. 어쩌면 아내의 한을 씻어 줬겠죠. 좋은 남편으로 세상에 칭송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이첨은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지 못했어요.
계영배의 전설
중국에는 계영배(戒盈杯)의 전설이 있죠. 술이 가득차면 술이 없어진다고 하는 계영배의 전설 말이예요. 중국의 이 계영배의 전설을 소설가 최인호는 그의 소설 <상도>에서 갖다 쓰고 있죠. 임상옥의 이야기라면서, 이 계영배의 철학을 이야기 하죠. 본래 계영배는 중국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는 계영배로써 사람을 경계했죠. 계영배라고 하는 술잔은 술을 가득 채우면, 술이 사라진다는 거죠. 술을 술잔에 약 70~80%만 따라야만, 술이 온전히 남아 있는다는 거예요. 계영배라고 하는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술이 없어지는 그런 4차원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겠죠. 계영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득 채우면 넘치게 되고, 넘치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거죠.
절벽 끝을 보려다 죽다
가득 채우지 말아라! 네 욕심이 그 끝까지 가고 싶더라도 그 끝까지 달려가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벼랑 끝에 무엇이 있는가가 궁금하죠. 혹시 절벽 위에서 그 밑에 무엇이 있는가 내려다 본적이 있으세요?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높은 절벽 위에 서면, 그 절벽 밑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죠. 그래서 조심 조심 절벽 밑을 내려다 보죠. 그 절벽 밑을 내려다 보아도 절벽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완전히 보이지 않는가요? 우리는 절벽 위에서 완전히 보일 정도로 각도를 잡지 못하죠. 우리 몸의 각도 말이예요. 절벽 위에서 절벽 아래를 완전히 보려면, 절벽 끝을 벗어나야 됩니다. 절벽 밑을 완전히 볼려면, 절벽 끝에서 한 발자국 더 내려가서 봐야죠. 그런데 절벽 끝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순간, 절벽에서 떨어지고, 우리의 몸은 부서지고, 우리는 그 날 고인이 되죠. 우리가 절벽 끝에 완전히 나서지 않는 것은 그걸 알기 때문이죠.
멈추시오!
내 욕심껏 무언가를 가득 채우고 싶다고 해서, 가득 채울 순 없어요. 가득 채우는 순간 우리는 그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죠.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이 충족되지는 않아요. 모든 것을 충족할려고 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벼랑 끝에서 멈추는 거와 같죠. 멈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인간은 잘 멈추지 못하죠. 특히 내가 상승세를 탈 때는 더욱 멈추지 못합니다. 내가 상승세를 탈 때는 세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달려가죠. 달려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이 있게 마련이죠.
끝까지 간 이이첨
마치 이이첨처럼 말이예요. 이이첨은 광해군 15년 동안 최고의 권력자였어요. 그는 이조판서라고 하는 직위에 있었지만, 정승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렸죠. 그는 광해군 주위에 첫 손가락에 꼽히는 그야말로 일등공신이었어요. 이이첨이 유영경을 탄핵하지 않았으면, 광해는 왕이 되지 못했어요. 적자인 세 살 먹은 영창군이 왕이 될 것이고, 서자이자 둘째 아들인 광해가 어찌 왕이 되었겠어요. 명나라에서도 그의 세자 책봉을 윤허하지 않았는데. 명나라 250년 동안 큰 아들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황제가 될 수 없었어요. 황제가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도 황제 자리에 앉히지 못했어요. 바보라도, 황제가 쳐죽일 정도로 미워했던 큰 아들도 황제조차도 밀어내지 못했죠. 그거는 명나라 법이 큰아들만이 계승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죠.
제후국인 둘째 아들, 그것도 서자인 광해를 명나라에서 윤허해 줬을 리가 없죠. 이이첨에 의해서 광해는 왕이 되었죠. 그랬기 때문에 이이첨은 모든 걸 누렸죠. 광해군조차도, 왕인 광해조차도 이이첨이는 노 터치였어요. 단순히 왕의 즉위를 도와줬기 때문만은 아니죠. 광해가 왕이 되지 못했다면, 그는 죽임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이이첨은 광해의 생명의 은인이죠. 왕위경쟁에서 패한 자식은, 왕자는 어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어요, 왕조사회에서는.
잘해보겠다고 한짓이 아내에게는...
내가 오늘 강론의 주제를 '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이걸 정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겁니다. 나는 이이첨에 대해서는 동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15년간 권력을 누렸으니까.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집안의 하나의 정략에 의해서 이이첨이라고 하는 남자가 선택된 것이지, 이이첨의 아내가 그를 선택한 건 아니죠. 이이첨의 아내는 아무 것도 선택한 것이 없어요. 그의 부모가 그와 살라니까, 어린 나이에 그 가난한 집에 가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서, 실성해서, 손톱으로다가 면벽을 긁어서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그 보상을 받기에는 15년의 세월이 그의 아내에게는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나는 들어요. 이이첨에게는 그것이 긴 세월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아내에게는 그 15년의 영화가 너무 부족했다는 거예요. 역사의 기록은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죠. 내가 15년의 영화라고 하는 것도 내 말이죠. 그녀는 이이첨의 권력 아래 수없는 집안 사람들이 도륙을 당하고, 멸문을 당하고, 목을 졸라가는 걸 보면서, 그녀가 행복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지난 날처럼 실성해서 면벽을 손톱으로 긁어서 먹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녀가 결코 행복했을지는 사실 우리는 알 수가 없죠.
귀공께서는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내가 오늘 이이첨의 이야기를 강론하는 것은 그렇습니다. 멈출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멈추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 벼랑에 떨어지는 것처럼 급전 직하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절대 권력자라 할지리도, 중국의 전설적인 부자 석숭(石崇)이라고 할지라도 멈추지 못하면, 그 끝은 비참하다는 거예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석숭입니다. 그러나 석숭의 말로는 비참했죠. 석숭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참형되었습니다. 참형은 허리를 잘라 죽이는 거죠. 그저 교수형 정도만 해도, 그래도 낫죠. 오늘의 주제가 '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오' 내가 여기 한 마디를 덧붙여서 말씀드리죠.
귀공들은 배가 고파도 참으시요, 내 것이 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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