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탕카녀의 열정|…… 혜천스님설교

2020. 2. 1. 18:0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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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아난다 존자와 마탕카녀의 사랑 이야기는 스님이 2년전인 2010년 12월에 일요강론으로 소개한 것이 있어 그대로 올립니다.

 


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2554년 12월 26일)

마탕카녀의 열정  

 

 

저번 강론에서 붓다와 함께 하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젊은 수행자 얘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어떤 젊은 수행자가 붓다라고 하는 스승께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만나보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여러 날 길을 가다가, 우리 식으로 하면 어느 주막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날 그 젊은 수행자는 낯 선 수행자와 함께 잠들게 됩니다. 그 낯선 수행자는 다름 아닌 붓다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행자가 붓다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오늘 여기 자리 하신 분들께만 특별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싶은 붓다를 만나죠. 우리는 느끼고 싶은 붓다를 느낍니다.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싶은 붓다를 만나고, 느끼고 싶은 붓다를 느낍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수행자에게 왜 자신이 붓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이 문제는 불자님들 스스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까지 다 말하면 재미없어 집니다. 만나고 싶은 붓다는 내 기준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부처님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마탕카녀의 행복'입니다.

 

마탕카녀라고 말하지만, 마탕카는 그녀의 이름이 아닙니다. 마탕카는 그녀가 속한 부족의 이름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 존자가 어느 날 탁발을 나섭니다. 그러던 중 갈증이 나서 물을 먹고 싶어 졌는데, 마침 우물가에서 물 긷는 처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물을 좀 주십시요'라고 부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외면하고 거절합니다. "저는 존자께 물을 줄 수 없습니다." 황당해진 아난다존자는 "어째서 물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나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얘기가 이어지려니 아난 존자가 물을 주지 않는 이유를 그 처녀에 묻습니다. (이 때 추위 때문에 바닥을 너무 데웠는지, 누전차단기 떨어져 버리다. 결국 온도를 낮게, 약하게 한 후 다시 강론 시작)

 

아까 내가 어디까지 했죠? 아아! 처녀 에게 물 얻어 먹으려다 면박 당한 얘기요? 그랬더니 그녀가 대답하죠. "저는 마탕카녀입니다." 마탕카 부족은 불가촉(不可觸) 천민 집단입니다. 말 그대로 접촉해서는 안될 정도로 천민 캐스트란 뜻입니다.  흔히 인도의 4성계급으로 지배자인 브라만, 무인계급의 크샤트리아, 평민의 바이샤, 노예계급의 수드라들 듭니다. 불가촉천민은  수드라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으로 인도 국민의 70%가 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불가촉천민이 차를 주게 되면, 상위 캐스트는 손으로 그 차를 받지 않습니다. 바닥에 내려 놓든가 쟁반에 놓습니다. 심지어 불가촉천민과는 같은 우물을 공유할 수도 없습니다. 

 

불가촉천민들의 해방의 지도자 암베드카가 그들의 해방을 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 불가촉천민들을 상류의 수원지에 데리고 가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암베드카가 말합니다. "이 물을 소나 말같은 짐승들조차도 자유롭게 마시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현재도 실정이 이러할 정도라면, 2,500년전 부처님 시대에는 어떠했을지 아실 수 있죠. 우리 고려시대에도 그런 집단들이 있었죠. 소위 말해 부곡(部曲)민들은 양민과 함께 살 수 없었죠. 요새 식으로 말하면 정치범 후예나 만주족들이 주로 여기서 삽니다. 그들은 부곡이라는 그 마을 안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마탕카녀는상위 캐스트 크샤트리아 출신인 아난다 존자, 즉 고귀한 존재에게 물을 줄 수 없었겠죠.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말합니다. "나는 붓다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을 주십시요."  그랫더니 그 처녀가 물을 줍니다. 그러고 나서 물을 달게 먹고, 아나타빈디카 사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처녀가 그의 뒤를 밟습니다. 그런 후 내가 아까 물을 준 그 멋진 남자가 아난다 존자임을 알고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 길로 달려와 어머니게 그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는 붓다의 사랑하는 제자이다. 그는 고귀한 신분이어서 너와는 결혼할 수 없다"라면서 거절합니다. 그랬더니 이 마탕카녀는 그 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 눕게 됩니다. 요새도 이런 처녀 총각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제 저녁부터 굶고 있는 사람이 이 대한민국에도 1,000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엄마의 설득도 통하지 않게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배움이 적어 보이죠. 사자성어로 품위있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로 고치겠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경전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주술사였습니다.

 

아마 마탕카 부족의 사제라고 봐야겠죠. 이 천민부족들은 원래 인도의 선주민으로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하층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선주민들의 고유한 문화전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유의 종교도 있었겠죠. 마와자키 유소라는 일본학자는 그의 책 <불교의 기원>에서 불교는 원래 샤카족의 전통 종교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불교는 사카족의 전통적인 신앙에 기초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전의 여섯 붓다(과가 6불)는 그래서 나온 것이거라는 주장이죠. 이 주장을 미와자키 유소가 처음 하죠. 어쨌든 마탕카녀의 어머니는 사제였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마탕카녀 역시 그녀의 어머니 신분을 계승해야 했을런지도 모르죠. 우리의 민속에도 소위 세습무와 강신무가 있습니다. 강신무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며, 세습무는 대대로 내려가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도의 씻김굿입니다. 이 집단의 굿은 음악이 곁들어 지죠. 산조음악이 거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경전에 따르면, 마탕카녀의 어머니가 주술을 걸어서 아난다존자를 유인했다고 하죠. 어쨌든 아난다존자가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있었다는 거죠. 물론 이것이 주술에 의한 것인지 어머니가 아난다존자에게 가서 불러 모셔온 것인지는 내가 그때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겠죠.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몸져 누워 있는 그 방에 아난다존자를 밀어 넣고, 밖에서 문을 잠궈 버립니다. 그 때야 아난다존자가 정신을 차리고 내보내 달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가 답하죠. "걱정하지 말라. 그러나 내 딸과 동침해야만 풀어줄 것이다."

 

이 장면을 떠올리자니 문득 진준투할(陳遵投轄)이라는 중국고사가 생각납니다.  한나라 진준이라는 사람이 친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친구들을 초대해서는 그들이 타고온 수레의 비녀장을 뽑아 우물에 버리고, 대문을 닫아 잠궈버리고 밤새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투할이 던질 투(投), 비녀장 할(轄)입니다. 비녀장이란  머리카락을 고정시키는 비녀라는 말이 있듯이, 수레 바퀴를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의 우물에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비녀장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진준이 술을 마시듯, 문을 잠구고 내 딸과 동침해라, 그러면 꺼내 준다. 이것이 마탕카녀 어머니 얘기죠.  부모를 둘려면 이런 부모를 둬야 합니다. 얼마나 멋져 부러!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아난다존자는 방에 갇히고, 마탕카는 매달리고 하는,이걸 봣어야 하는데. 그림되지 않나요? 이렇게 되자, 아난다존자는 아니타빈디카 사원에 있는 부처님을 향해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지붕이 열리고 아난다존자가 사원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참 멋진 장면이야. 여기서 믿음이 나와야 되는데... 교회 같으면 이 장면에서 '아멘!'이 108번은 나왔을 것인데... 여기까지 1부가 끝나고 광고 시간입니다. (스님이 차를 마시기 위해 하신 말) 우리나라 TV도 앞으로는 일본 드라마처럼 드라마 중간에 광고를 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그 광고시간입니다. (광고 핑계로 차를 마시는게 미안했던지) TV드라마는 광고시간이지만, 흥천사는 Tea Time입니다. 그러나 딱 한사람만 좋지. 지만 마시니! 

 

그렇다고 포기할 마탕카가 아니죠. 그 이후로는 마탕카녀가 아니타빈디카 사원 앞에 나가 턱을 괴고 앉아 있게 됩니다. 아난다존자가 탁발이라도 나가게 되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문제는 여기서 마탕카녀가 박색이어야 하는데, 굉장한 미녀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난다존자가 탁발하려고 하는데, 밥을 두 그릇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왜 두 그릇을 주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당신 부인 것이라고 말했다죠. 아난다 존자 뒤에 그녀가 서 있었던 거죠. 그러니 아난다존자는 창피해서 탁발도 못 나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연전히 마탕카녀는 아난다존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요새 같으면 스토커니 뭐니 할지 모르지만, 부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그녀를 부르셨죠.

"진정 아난다존자와 결혼하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그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단 하루, 아니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와 살다 죽을 수 있다면, 죽으라해도 죽을 수 있습니다."

"네가 아난다존자와 살고 싶으면, 입교(入敎)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

 

이걸 보면 부처님은 참 자비로은 분이십니다. 아나다와 겨론할 수 있다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입교가 뭐 대수이겠습니까? 마치 이런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내고 답을 고르라는 것과 같죠. 어느 군대에 가고 싶은가? 1)해병대 2)공수대 3)육군수색대 4)상근 예비역. 당연히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예비역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상근 예비역을 무시할 수는 없죠. 김정일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이 상근예비역이라죠. 그 숫자를 알수도 없거니와, 무언가 들고 사복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그 도시락이 폭탄일거라는 얘깁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처녀가 NO!라고 했겠어요? 삼 세번 YES를 외친 후, 앗싸라비아 했겠죠.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그러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안된다고 했지만, 이미 말릴 수 없었습니다. 이 마탕카녀는 비구니가 되었죠. 부처님의 집중지도를  받고 머지 않아, 진리를 성취하고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난다존자와 마탕카녀의 이야기입니다. 마탕카녀는 그래서 진리로서 아난다존자를 만났죠. 마탕카녀가 그렇게 빨리 진리를 얻은 것이 과연 무엇때문일까요? 이 순간에도 진리를 얻고자 오래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녀는 입문해 얼마 되지 않아 진리를 성취했습니다. 그녀가 진리를 성취한 데에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열정이 온전한 행복을 얻는 동기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없다면, 다리를 꼬고 앉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식은 재와 같고, 굿상에 올려져 있는 차디찬 돼지머리와 같아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열정이 있어야 온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탕카녀는 그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열정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문 안에 들어가는 이끌림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부처님의 문안에 들어가는 이끌림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열정이라고 하는 것이 무언가요?  지난 주에 물성(物性), 진리성(眞理性)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물성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리성은 배워야 안다고 했습니다. 마탕카녀는 어떻게 진리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마탕카녀의 열정때문입니다. 권력, 사랑, 명예 등은 인간의 물성입니다. 수 십년 수행을 해도 왜 도를 성취하지 못합니까?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물성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나는 물질을 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명예를 얻으려 노심초사 하면서도, 명예를 초개와 같이 여긴다고 말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권력을 얻으려고 배회하면서도, 겉으로는 권력을 봉황이 죽은 쥐새끼 보듯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사랑을 얻으려 밤잠을 설치면서도, 겉으로 말하길 자기는 그걸 초월했다고 말하죠. 어느 인간이 물질과, 권력과, 명에와, 사랑에 자유로울 자 있겠어요? 이 4가지에 자유롭고 초월한 자가 있다면, 그는 붓다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돈, 명예, 권력,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죠. 겉으로는 아닌 척 하죠. 그것을 긍정해야 돼요. 이 4가지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그 물성에 눈 뜨고, 물성을 아는 것이 진리를 성취하는데 바탕이 됩니다. 왜냐면 그것은 열정이걸랑요. 차디차게 식어 있는 그 마음으로는 절대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얘기는 그래서는 부처님으로부터 문 안의 이끌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탕카녀처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열정은 다른 열정을 낳습니다. 우리가 마탕카녀처럼 그저 문밖에 앉아만 있어도, 문 안에 들어가는 이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 안에 앉는 것, 문 안에 앉는 그 열정적 마음이 부처님으로부터 문 안에 이끌리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 밖에 이르는 열정은 물성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물성을 부정합니다. 속으로는 돈, 명예, 권력, 사랑 이 4가지를 얻지 못해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문 안의 이끌림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탕카녀의 행복은 그녀의 열정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버스를 타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버스는 떠나버렸습니다. 다음에 또 버스가 올텐데라면서 쉬어가려 합니다. 마탕카녀 역시 여러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신분이나 출세 간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녀에게는 열정만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 열정을 보아 문안으로 이끈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행복에 이르려면, 마탕카녀 같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이런 열정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왜냐구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열정이 있으면 누구나 부처님으로부터 문 안의 이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금치와 같이 앉아 있고, 굿판의 식은 돼지머리 같이 되어서는 20년, 30년을, 아니 200년, 300년을 앉아 있은들, 어느 세월에 엉덩이가 따뜻할 날이 있겠는가? (아까 차단기가 내려가 온도를 줄여 법당 바닥이 차가워 진데 따른 비유인듯) 보세요. 전기가 안들어오니 엉덩이가 차갑잖아요? 동요에도 엉덩이가 차가워 어쩌구 하잖아요? 아! 엉덩이가 시려워서가 아니라 엉덩이가 뜨거워서라구요? 잘못 인용되었군요.(이 때 그 동요 2절에 '엉덩이가 차갑다'는 내용도 있다며,  누군가 작은 소리로 제보했으나 스님이 듣지 못함.

 

사실 확인을 위해 '어린 송아지'의 가사 올립니다.어린송아지'의 1절과 2절의 정확한 가사입니다. 1절:어린 송아지가 /끈 숯 위에 앉아 울고 있어요/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2절: 어린 송아지가/얼음 위에 앉아 울고 있어요/아빠 아빠 엉덩이가 차가워)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문 안에 이르게 합니다. 그 이끌림을 만드는 동력은 열정입니다. 화두를 붙잡고 명상을 2, 30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여!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다면 오랜 세월 수행한 사람은 더 잘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문제는 열정입니다. 마탕카녀 열정으로.  부처님으로부터 문 안으로 이끌리는 열정이 있듯이, 우리는 문 밖에 앉아 있는 마탕카녀처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두꺼비가 파리를 잡을 때와 같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파리를 잡으려는 두꺼비가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맨날 앉아 있어도 파리 한 마리 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꺼비도 파리를 순간적으로 낚아채기 위해서는 열정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문 안에 이르는 이끌림을 받고, 온전한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탕카녀는 특정 개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마탕카녀입니다. 우리 모두 열정이 있으므로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열정이 있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추워서 오늘 강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얀 겨울에 듣는 연주곡 모음 



      01. To Treno Fevgi Stis Okto - 김지연 Violin
      02. Last Carnival - Acoustic Cafe
      03. Bells of San Sebastian - Giovanni Marradi
      04. Just For You - Giovanni Marradi
      05. Reflections of Love - Hilary Stagg


      06. Fantasia - Rondo Veneziano
      07. Amsterdam Sur Eau - Claude Ciari
      08. Nabucco's Guitar - Claude Ciari
      09. La Playa - Claude Ciari
      10. Handel's Sarabande - Maksim


      11. In My Dream Infancy - Praha
      12. Blue Autumn - Claude Choe
      13. 꿈의 요정 - T. S. Nam
      14. Love Player - T. S. Nam
      15. Who Are We - T. S. Nam


      16. The Scents of Joy - Frederic Delarue
      17. A Rainbow of Flowers - Frederic Delarue
      18. Romance - Yuhki Kuramoto
      19. In a Beautiful Season - Yuhki Kuramoto
      20. Pole - Sergei Trofanov & Dje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