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한 분들

2007. 6. 9. 22: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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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왕생록]

'왕생록' 소개

연종 8 대 조사이신 연지(주굉)대사께서
170 여명의 스님과 일반불자 등의 극락왕생 사실을
모아 명나라 만력(萬曆)12년 서기1584년에 집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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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大行)스님

당나라 대행스님은 태산(泰山)에 살면서 3년 동안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아 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감응하였다

늙어서 대장각(大藏閣)에 들어가 발원하고 아미타경을 얻어
밤낮으로 독송하였다

21일이 되는 날 극락정토의 보배유리의 땅 위에
부처님과 두 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보았다

희종황제(僖宗皇帝)가 그 사실을 듣고 궐내로 불러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년 후 보배유리의 땅이 다시 나타나더니 그날 운명하였다
기이한 향기가 보름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육신도 썩지 않았다

찬(贊)

보배유리의 땅은 위와 아래가 내비치는 곳으로
청정한 덕으로 감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혜영스님과 승연스님은 기이한 향기가
7일 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혜통스님은 3일이며
대행스님은 무려 보름동안 기이한 향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범행(梵行)이 더욱 청정했던 소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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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可久)스님

송나라의 가구스님은 명주땅에 살았다

법화경을 읽으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했으므로
당시에 흔히 구법화라고 불렀다

원우(元祐)8년 [1093],나이 81세에 앉아서 운명했다
3일 후에 다시 깨어나 사람들에게 말하길

"내가 극락정토의 경계(境界)를 보니 불경에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연화대 위에마다
왕생할 자의 이름을 표기해 두었는데

어느 금연화대에는 광교원의 훈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곳에는 손십이랑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한 곳에는
가구의 이름이 있었다

또한 어느 은연화대에는 명주땅의 서도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라고 말하고는 다시 운명했다

그로부터 5년 후에 서도구가 숨을 거두었는데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했으며

12년 후에 손십이랑이 운명할 때는 하늘음악이 허공에서
쟁쟁하여, 모두 가구스님이 말한 것과 일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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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귀(于貴)의 어머니

명나라 때의 우 할머니는 북경(北京)평창부(平昌府)
소촌(邵村)의 우귀(于貴)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염불로 공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깨끗히 빨아 입고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 극락정토에 왕생해야 겠다"고 말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때가 되자 책상을 들어내 마당 가운데 놓고는
책상 위에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와 하늘음악을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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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朱綱)

명나라 때의 주강은 경도(京都)에 살던 사람이다

유업(儒業)을 익혀 향거(鄕擧)에 뽑혔고
세번이나 춘관(春官)에 올랐으나 뽐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부(二府;中書省;樞密院)의 벼슬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나와서는 정토를 전수하여 하루에
염불 3만번을 15년 동안 조금도 게으름 없이 실행하였다

임종에는 걸상에 앉아 두 손에 염주를 들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끊이지 않더니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으며
"부처님이 오셨다"라고 말하며 연신 염불하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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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顧源)거사

명나라 때의 고원은 금능(金陵)사람으로
자호는 보당거사(寶幢居士)이다

어려서부터 시를 지을 줄 알았고 초서를 잘 썻다
중년에는 한결같이 염불 극락정토에 뜻을 두었다

나중에 경미한 병이 들어 승속간의 도우(道友)를 모으고
열 번의 아미타불을 염불하고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드시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누가"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고 세계는 금색인데,
부처님이 가사로 나를 덮어 주시니 나의 몸이 이미
연화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 때 온 대중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슬피 울기를 마지 않으니 거사가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느 곳이나 곧 이곳이다. 이곳에 만약 분명하면
어느 곳인들 확실하지 않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물리치며
"여러말 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
공중에서 부처님이 나를 맞이 하신다
삼고(三鼓)에는 가련다"하였다

그 시각이 되자 편안히 웃음을 머금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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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杜)거사

명나라 때의 두거사는 순천부 완평현 사람으로
서산의 서광사 곁에 있는 낡은 사당에서 지내며
30년 동안 염불에만 전념하였다

내가(연지대사)고향 사람인 동광책에게 그를 찾아보게
한 적이 있었는데 두거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항주라고 대답했더니

운서 주굉(연지대사)공을 아시오? 하였다 한다
"저의 스님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더니
두거사는 합장하고 염불하며 다시 다른 말이 없었다 한다

임종할 때가 되어 9일 동안 예참하여,예참문이 간절한 곳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음식을 끊고 몇 모금의
물만을 마실 뿐이었다

그렇게 예참을 마치고서는 앉아서 갔다

보름동안 안색이 생시와 같았고 오색구름이 지붕 위에
서리고 있는 것을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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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우 거사

명나라 때의 손숙자는 법명이 대우이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인 경오거사를 따라 사십팔원
아미타상을 모시고 운서에 와서 오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서는 오신채와 육식을 끊고
교류를 자제했으며 염불에 전념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비구가 연화를 들고,일심으로 정토를
발원한다고 인가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화인(化人)이
금강경을 밤낮으로 읽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손대우 거사는 운명할 시 일어나 앉아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등 모두 오셔서 나를 맞이하신다"하고는
금강권인을 맺고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고는 고요히 갔다

그때가 만력 신해년[1611년]11원11일이었다
'정토십이시가'가 세상에 전한다 상세한 것은 오태사의
서생전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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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은 거사

명나라 때의 오 거사는 인화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대은,
별호는 앙죽이다

평소에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음덕 배풀기를 좋아하여 죽어가는 생명을 방생하고
고난을 겪는 자를 구원했으며 이웃을 돕고 미납한
세금을 대신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리는 중에 광명을
만나기도 했고 배가 뒤집힐 지경에서 반풍(反風)을 만나기도
하는등 갖가지 상서로운 과보를 감응하였다

그리고 불법에 마음을 기울여 조석으로 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진에 게으름이 없었다

만력 40년[1612]5월3일 대중에게 고별하고 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서 갔다 방안에 향기가 감돌고 기색이
생시와 같았다

자세한 것은 인지엄(印持嚴)이 지은 전(傳)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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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스님

당나라 정진 비구니 스님은 장안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며 금강경 10만 번을 독송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제자에게 말하기를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 번 보련화(寶蓮花)속에서 동자가 뛰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 하고는 가부좌하고 갔다

상서로운 광명이 암자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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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봉스님

송나라 능봉 비구니 스님은 전당사람으로 염불 정업만을
전수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이 몸에 비치고 공중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소리를 꿈 꾸고 제자들에게

"나의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하더니
잠시 후 능봉스님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가보니,합장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음악소리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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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宗利)스님

송나라 종리스님은 신성땅 벽소에 살면서
10년 동안 염불삼매를 닦았다

나중에 도미산(道味山)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일상(一相)이라 불렀다

15년이 지나 어느날 제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푸른 연꽃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하더니

3일 후에 다시 말하길
"부처님이 오셨도다" 하고는 아래와 같이 게(偈)를
쓰고 조용히 운명했다


내 나이 구십, 머리는 눈이 내린 듯

세상에는 으례 백년객(百年客) 없네

일상도인(一相道人)이 돌아감이여

금대(金臺)에 앉으니 건곤(乾坤)이 비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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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가(瑩珂)거사

송나라의 형가거사는 잡천의 요산에서 불법을 배웠던
자였으나 술,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파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에게 부탁하여 계주(戒珠)선사가 펴낸 '왕생전'을
구해 읽었다

한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 후에 방안에 서쪽을 향해 선상(禪牀)을 놓고 음식을
끊어가면서 염불에 전념하였다

3 일째 되는 날 꿈에 부처님이

"너는 10 년을 더 살 수 있다
우선 정업(염불)에 힘써야 한다"하시었다

그러자 형가거사는 부처님께

"설사 백년을 산다고해도 이 세계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여러 성인들을 모시고 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너의 뜻이 그러하다면 3일 후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하시었다

그날이 되어(3 일후) 여러 사람에게 아미타경을 독송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서 조용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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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앙(道昻)스님

당나라 도앙스님은 위군(魏郡)사람이다

영유법사를 따라 늘 한능산사에서 화엄지론(華嚴地論)을
강의하여 고찰(考察:생각하여 살핌)이 신중하고 넓었다

마음에 극락정토를 결심하고 안양(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더니 나중에 스스로 목숨이 다한 것을 미리 알고
8월로 기한을 잡았으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8월 초하룻날이 되었으나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재(齋)때가 되었는가를 묻고는 법상에 올라가 앉았다

몸에서는 위엄이 감돌고 향로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솟았다
사부대중을 이끌어 보살계(普薩戒)를 설하니 말씀이 간절하여
듣는 자들은 마음이 섬뜩한 지경이었다

도앙스님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천상(天上)의 대중들이 어지럽고
음악이 요란한 것을 보고,대중들에게 말하길

"도솔천이 나를 맞이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생사의 근본일 뿐
본래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늘 마음에 극락정토를 기원하였으나 어찌하여
나의 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며 말을 마치자 하늘의 음악이 사라지고 극락정토의
향기로운 꽃과 음악이 구름처럼 울려 퍼지더니, 날아 내려와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것은 온 대중이 모두 목격한 사실이었다
그러자 도앙스님이"지금 서방의 영상(靈相)이 와서
나를 맞이한다 원하는 바는 극락정토 왕생뿐이다"라고 말하더니

향로를 잡은 손이 미끄러 지면서 법상에 앉은 채 운명하였다
온 천하가 경탄해 마지 않았다

찬(贊)

천궁(天宮)을 물리치고 극락정토를 찾은 이는
(광공,홍공.앙공등)여럿, 계시다
그러나 때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능히 사부대중을
계율로 인도하다 법상에 기댄 채 운명할 수 있엇고

영상(靈相)이 찬란하여 사람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일은
아!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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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황후(獨孤皇后)

독고황후는 수(隋)나라 문제(文帝)황제의 황후(皇后)로서
성은 독고(獨孤)이다.

황후는 궁중에 있으면서 대승(大乘)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며 염불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수향(沈水香)을 씹어서
입을 깨끗이 하였다.

인수(仁壽)2년 8월 갑자일에 영안궁(永安宮)에서 운명
했는데 이상야롯하게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고
천악(天樂)이 하늘에서 떨쳐 울렸다.

문제황제가 사제사나 스님에게 무슨 길한 조짐이냐고
물었더니 스님 사제사나는 정토에 아미타불이 계시는데

황후가 정토에 왕생하셨으므로 이런 길조가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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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국왕(오장 國王)

오장국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여가에는 평소 불법을
숭상하여 일찍이 신하들에게 말하길

"짐은 국왕이 되어 비록 복락은 누리고 있으나 무상은
면할 길이 없다.

듣건대 서방정토는 마음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하니
짐은 마땅히 발원하여 저 국토에 왕생하고자 한다".

하고는 종일 행도(行道) 염불하였으며 부처님이나
스님들께 공양할 때마다 왕과 부인이 몸소 음식을 드려,
이렇게 30년 동안을 거르지 않았다.

붕어할 때,얼굴에 웃음빛을 띠고 부처님(化佛)이 오셔서
맞이하는 등, 상서가 한 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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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란(曇鸞)스님

후위(後魏)때의 담란스님은 젊어서 중국 오대산을 여행하다가
염험한 일을 경험하고는 출가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장생(長生)을 좋아하여 도은군(陶隱君:남북조
시대의 본초가인 도홍경의 호)에게 선경(仙經)10권을 받았다

나중에 보리유지(菩提流支)삼장을 만나 묻기를
"불교에도 장생불사의 술(術)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보리유지 삼장께서는 웃으며
"장생불사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도입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십육관경(관무량수경)을 주면서
"이것을 배우면 삼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육도에는 다시는
가지 않게 됩니다 그 수명은 무한하여 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처님의 장생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담란스님은 매우 기뻐하며 정업(염불)을 닦았다
추위와 더위,질병이나 고통속에서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으므로
위나라 왕이 담란스님에게 신란(神鸞)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어느날 저녁,방 안에서 어떤 범승(梵僧)이 홀연히 나타나 말하길
"나는 용수(龍樹)보살이다 오랫동안 극락정토에 살고 있었으나
너와는 동지이므로 일부러 와서 만나게 된 것이다"하는 것을 보았다

담란스님은 때가 이른 줄을 알고 대중을 모으고 말하길
"괴로운 인생은 끝내 끝날 날이 없다 지옥의 고통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극락의 구품(九品)의 정업은 닦지 않아서는 안된다"

라고 가르치시고는 제자들에게 큰 소리로 염불하게 하고
서쪽을 향하여 예배하고 운명했다

대중이 들으니 하늘음악이 서쪽으로부터 들려오더니
얼마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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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정문(溫靜文)의 처

당나라 온정문의 처는 병주에 살던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누워지내자 온정문이 권하여
염불하게 하였다

1년 만에 홀연히 극락정토를 보고 남편인 온정문에게 말하길

"저는 이미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다음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 후에 부모님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나이다 부디 일심으로 염불하여
후일 극락정토에서 만나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하고는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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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걸(楊傑)

송나라 양걸은 무위주(無爲州)에 살던 사람이다
소년에 급제하여 관직이 상서주객랑(尙書主客郞)이 되어
형옥(刑獄)을 다스렷다

불법을 존숭하고 선종에도 깨달음이 있었다
일찡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중생의 근기는 날카롭고 둔한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법문은
오직 서방정토일 뿐이다 일심으로 관념(觀念)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거두기만 하면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반드시 극락왕생할 수 있다"

또한 양걸은 천태십의론,미타보각기.안양삽십찬,정토결의집서
등을 저술하여 널리 극락정토를 알리고 미래 중생을 깨우쳤다

노년에는 미타장육존상(彌陀丈六尊像)을 그려놓고 늘
그를 대해 관념(觀念)하더니 목숨이 다하는 날,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감응하고 단정히 앉아 운명했다

그의 사세송(辭世頌)에 이런 글이 있다

삶도 연연할 것 없고

죽음도 버릴 것 없네

허공 속의 한점 구름인 듯

기왕 착오한 일

서방극락에 나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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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회(王仲回) 거사


송나라의 왕중회는 관직이 사사참군(司士參軍)을 지냈다

무위자(無爲子) 양(楊)공에게 질문하기를

"불경에서는 사람들에게 정토에 왕생하게 하였으나
조사(祖師)는 마음이 바로 정토다.
굳이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무위자(無爲子) 양(楊)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스스로 생각해 보시오
만약 부처님의 경계에 있다면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을 것이니 무엇하러 왕생을 찾겠소

만약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지심으로
염불하여 더러운 국토를 버리고 정토에 왕생하려 하지 않겠소."

이 말을 듣고 왕중회는 깊이 깨닫고 뛸 듯이 기뻐하며 물러갔다

2년이 지난 후 무위자(無爲子) 양(楊)공이 단양(丹陽)지방의
태수가 되었을 때 홀연히 꿈에 왕중회가 나타나 말하길

"전에 가르침을 받고 지금 이미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와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하였다

며칠 후에 부음(訃音)이 도착하였는데 왕중회는 7일 전에
미리 때가 이른 것을 알고 가족들에게 고별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바로 꿈 꾼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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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省庵)거사

송나라 때의 육원(陸沅)은 도호(道號)를 성암거사라 하고
명의 개울가에 살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향을 피우고 가부좌하고 앉아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먼저 게(偈)를 읊기를


새벽에 일어나 손을 씻고 패엽(貝葉)을 펼치니

복을 구하지도 않고 재앙도 바라지 않네

세상 인연 끊어진 곳,그곳을 따라 끊어지나니

겁화(劫火)의 광명 속에서 한 바탕 춤추네.


하고는,그런 다음에 염불을 하고 경을 읽되,더디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아 마치 구슬을 꿰 듯하였다

이렇게 매일 법화경을 한번 읽고 '나무아미타불' 만 번을
부르면서 한결같이 극락정토를 염원하였다
나이 85세 4월6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갔다

염습할 때, 어디서 풍겨오는지 연꽃향기가 진동하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입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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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薛氏)부인

명나라 설씨는 세족(武塘世族)의 딸이었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장경성(長庚星:金星)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나중에 주(周)씨에게 출가(결혼)하여 아들 다섯을 두고
남편을 여의었다

염불정업에 전심하고 보시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했으며
15년 동안 하루 같이 염불하였다

만력(萬歷)정해(丁亥)[1587년]5월 병이 들어 의사가
우유죽을 바쳤으나 한사코 거절하며,결국 밥알마저 끊고
약도 물리쳤다

9월6일 스님을 모시다 예참하게 하니
"나흘이면 족하다 나의 일은 끝났다" 하고는 서쪽으로
아미타부처님 불상을 향하여 밤낮으로 염불하였다

그리고는 아들 익찬(翊贊)에게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9월9일, 깨끗한 옷을 골라
깨끗한지를 확인하고 향수를 선상에 뿌렸다

다음날 아침 물을 떠서 손을 씻고 감로진언을 외우고
깨끗한 옷을 갈아 입고 지공(誌公)모자를 썼다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 끊어 앉아 찬불게를 염하고
삼귀의를 부르고 염주를 돌리며 염불108번을 하였다

정오가 되어 가부좌하고 앉아 결인(結印)하고 갔다
표정이 평화스러워 생존시에 비해 더욱 밝아보였다

연꽃향기가 온 방에 가득한 것을 곁에 있던 자들이
모두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감실에 모실때,

구경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환희정례(歡喜頂禮)하였다
그 밖에 자세한 것은 본전(本傳)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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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화상(善導和尙) [연종 2조 조사]

당나라의 선도스님은 정관(貞觀)중에 서하의 도작선사의
구품도장(九品道場)을 보고 기뻐하며

"이것은 참으로 부처의 경계에 들어갈 수 있는 나루터다
다른 행업을 닦는 것은 굽고 치우친 길이어서 성취하기
어렵다 오직 정토법문만이 재빨리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밤낮없이 예송정진하며 사부대중을
염불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와서는 호궤한 채 염불하며
힘이 다하지 않으면 쉬지 아니하고,밖에 나가서는

다른사람을 위하여 정토법문을 연설하여 30여 년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부엌으로
돌려보내고 거친 음식은 자신이 먹었다

시주가 있으면 아미타경을 10만 권을 유포하는데
사용했으며 정토변상(淨土變相)삼백벽(三百壁)을 그렸고
떨어지고 파손된 것은 그 때마다 보수하였다

부처님 전에 끊이지 않고 등불을 밝혔으며 삼의(三依)와
물병과 발우를 소지하지 못하게 했고 길을 갈때는
여러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게 했다 부질없이 세상의
일을 담론할까 걱정하신 것이다

그의 교화를 따르는 자가 매우 많았다 아미타경을
10만에서 50만 번까지 독송한 자도 있었고 염불을
하루에 만번에서 10만 번끼지 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염불삼매에 들어 정토에 왕생한 자들이 무수하였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정토를 권한 게(偈)에 이런 것이 있다

점점 닭 같은 피부 학 같은 머리칼

갈수록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비록 금옥이 방에 가득한들

어찌 늙고 병듦 면하랴

그대 갖가지 쾌락 마음대로 누리게만

무상은 끝내 찾아오고 말리

여기 손쉬운 수행법이 있네

단지'나무아미타불'


선도스님께서 어느날 문득 사람들에게 말하시길
"이 몸이 싫구나 나는 서방극락정토로 돌아가야겠어"
하고는 버드나무에 올라가 서쪽을 향하여 축원하기를

"부처님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보살님께서 저를 도와
주시사 저로 정념을 잃지 않고 극락정토에 왕생케 하소서"
하고는 말을 마치자 운명하셨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천악이 온 누리에 울려퍼지고
몸에서는 밝은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며 향취가 온 도량에
가득히 풍기었다

당나라 고종(高宗)황제가 그 사실을 알고는 절에 광명(光明)
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나무아미타불 카페의 극락왕생 사례 게시판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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