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2007. 6. 9. 22:2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불국사(佛國寺)
사적 및 명승 제 1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신라시대의 여러 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바로 경주 불국사다. 불국사의 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역대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에는 왕의 모친 지소부인을 위하여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했고, 문무왕 10년(670)에는 무설전을 세워 [화엄경] 을 강설하였으며, 그 후 고구려가 패망한 지 83년이 되는 경덕왕 10년(751)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재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삼국유사] 권5 『대성효2세부모(大成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대성은 이 공사가 착공된 지 24년 만인 혜공왕 10년(774)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사망했으며, 그 뒤 불국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이어져 착공 30년 만에 완성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건대, 처음에 소규모로 창건되었던 불국사를 통일 뒤 재력이 풍족해진 경덕왕때 김대성이 대찰로 확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람으로 완성되어 신라 호국 불교의 도량으로서 법등을 이어온 불국사는 조선 선조 26년(1593) 왜병의 침입 방화로 650여년간 내려오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 후 대웅전 등 일부의 건물이 다시 세워져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불국사가 문화유산으로 보존 전승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국정신을 기리는 도량으로서 옛모습을 되찾게 하고자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상적 피안의 세계로 불국사를 그렸는데 그러한 불국을 향한 염원은 3가지 유형으로 잘 나타났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가염불의 사바세계를, 그리고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경]에 근거한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요,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 에 근거한 비로전을 중심으로 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자세계의 불국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 놓았다. 불국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해탈교(解脫橋)를 건너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天王門)이 나온다. 다시 천왕문을 통과하여 반야교(般若橋)를 지나면 큰 석축이 나타나는데, 이 석축 위에 펼쳐진 세계가 바로 불국토인 것이다.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넘어 자하문(紫霞門)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곳이 석가여래의 사바세계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현세불(現世佛)인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석가탑(釋迦塔)과 과거불(過去佛)인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多寶塔)이 있다. 다시 연화교(蓮花橋)와 칠보교(七寶橋)를 올라 안양문(安陽門)을 들어서면 극락전(極樂殿)이 나오는데 그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금동 아미타여래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바라는 아미타 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즈음 만들어진 불국사에서 극락전이 있는 공간은 대웅전이 있는 공간보다 좁고, 석축의 높이도 전체적으로 한 층 낮게 되어 있다. 이는 아미타정토가 가장 낮은 근기(根機)를 가진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화엄사상에 입각하여 설계한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무설전 뒤쪽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毘盧殿)이 있는데 비로자나불이 하고 있는 손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둘이 아님을 상징한다. 화엄사상에 따르면 근기가 가장 높은 중생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가 연화장(蓮華藏) 세계로, 이는 법신불(法身佛)로서 절대적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머무는 세계이다.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불국사는 다보탑,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석탑과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 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교 칠보교가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이용한 예술품의 훌륭한 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상,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려좌상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경내에 있는 문화재로는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 20호), 불국사 3층석탑(국보 제 21호),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 22호),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 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 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 27호), 불국사 사리탑(보불 제 61호) 등이 있다.
사적 및 명승 제 1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신라시대의 여러 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바로 경주 불국사다. 불국사의 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역대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에는 왕의 모친 지소부인을 위하여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했고, 문무왕 10년(670)에는 무설전을 세워 [화엄경] 을 강설하였으며, 그 후 고구려가 패망한 지 83년이 되는 경덕왕 10년(751)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재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삼국유사] 권5 『대성효2세부모(大成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대성은 이 공사가 착공된 지 24년 만인 혜공왕 10년(774)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사망했으며, 그 뒤 불국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이어져 착공 30년 만에 완성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건대, 처음에 소규모로 창건되었던 불국사를 통일 뒤 재력이 풍족해진 경덕왕때 김대성이 대찰로 확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람으로 완성되어 신라 호국 불교의 도량으로서 법등을 이어온 불국사는 조선 선조 26년(1593) 왜병의 침입 방화로 650여년간 내려오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 후 대웅전 등 일부의 건물이 다시 세워져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불국사가 문화유산으로 보존 전승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국정신을 기리는 도량으로서 옛모습을 되찾게 하고자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상적 피안의 세계로 불국사를 그렸는데 그러한 불국을 향한 염원은 3가지 유형으로 잘 나타났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가염불의 사바세계를, 그리고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경]에 근거한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요,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 에 근거한 비로전을 중심으로 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자세계의 불국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 놓았다. 불국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해탈교(解脫橋)를 건너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天王門)이 나온다. 다시 천왕문을 통과하여 반야교(般若橋)를 지나면 큰 석축이 나타나는데, 이 석축 위에 펼쳐진 세계가 바로 불국토인 것이다.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넘어 자하문(紫霞門)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곳이 석가여래의 사바세계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현세불(現世佛)인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석가탑(釋迦塔)과 과거불(過去佛)인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多寶塔)이 있다. 다시 연화교(蓮花橋)와 칠보교(七寶橋)를 올라 안양문(安陽門)을 들어서면 극락전(極樂殿)이 나오는데 그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금동 아미타여래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바라는 아미타 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즈음 만들어진 불국사에서 극락전이 있는 공간은 대웅전이 있는 공간보다 좁고, 석축의 높이도 전체적으로 한 층 낮게 되어 있다. 이는 아미타정토가 가장 낮은 근기(根機)를 가진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화엄사상에 입각하여 설계한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무설전 뒤쪽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毘盧殿)이 있는데 비로자나불이 하고 있는 손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둘이 아님을 상징한다. 화엄사상에 따르면 근기가 가장 높은 중생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가 연화장(蓮華藏) 세계로, 이는 법신불(法身佛)로서 절대적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머무는 세계이다.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불국사는 다보탑,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석탑과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 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교 칠보교가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이용한 예술품의 훌륭한 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상,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려좌상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경내에 있는 문화재로는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 20호), 불국사 3층석탑(국보 제 21호),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 22호),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 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 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 27호), 불국사 사리탑(보불 제 61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