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애삼존불
2007. 6. 9. 22:2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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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은 사적 316호인 보원사지 입구 좌측 가야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내어 태안마애삼존불과 함께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삼존불의 가운데 석가여래입상응 중심으로 왼쪽에는 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배치된 특이한 삼존형식으로, 이는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삼존불의 높이는 본존상인 여래입상이 높이 2.8m, 보살상 1.7m, 반가사유보살상 1.6m이다.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고란각 전체적으로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으로 신체의 굴곡을 부드럽게 처리한 솜씨도 일품이다. 부처의 옷이 무겁게 보이지만 활달하면서 유려한 주름이 새겨진 것도 독특하다. 반가사유보살상과 보살입상에도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을 턱에 대고 오른다리를 왼다리 무릎위에 걸친 반가보살상은 청순한 웃음을 띄고 있어 인상적이다. 보살입상은 상반신을 벌거벗은채 목걸이만 걸치고 있는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 말기(6세기말~7세기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삼존불의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입술을 드러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뺨을 한껏 부풀린 모습의 여래입상은 백제인의 전형적인 미소를 보여준다. 그것은 신라의 속깊은 미소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 미소속에는 침묵이 있고 침묵속에 사랑과 자비가 깃들어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또한 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짓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불자들 사이에선 자신과 똑같은 심정으로 얘기해주는 불상으로 통한다고 한다. 마애삼존불이 위치한 산 중턱에 있는 용현리 비로자나불상 삼존불이 자리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골은 백제시대에 태안반도를 통해서 유입된 중국의 불교 문화가 그 당시의 수도인 부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했던 길목이었다. 중국의 선진 문화를 다른 곳보다 앞서 접했던 이곳 사람들은 서산마애삼존불이라는 찬란한 불교 미술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백화산의 돌출한 바위에 돋을 새김으로 새겨진 이 삼존불은 중국 문화와의 해상교류의 흔적 내지 중국 석굴의 영향을 보이는 최초의 예로서 주목되며 돌에 새긴 불상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팽이모양의 육계, 강건한 얼굴, 당당한 신체와 묵중한 법의 등이 백제불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걸작품이며 중앙에 보살입상이 있고 좌우로 장대한 불상이 서있는 특이한 삼존형식은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예로 불상의 진가를 더 높여주고 있다. 보원사지 전경 서산마애삼존불로 올라가는 용현 정류장에서 약1㎞쯤 계곡으로 더 들어가면, 고려 초 태조부터 광종까지 4대 임금을 섬기면서 고려불교를 크게 발전시킨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역임한 탄문 대사의 사리탑과 비석이 남아있는 보원사지가 있다. 보원사지내에 보물 제102호 적조, 보울 103호 당간지주, 보물 104호 5층석탑, 보물 105호 법인국사보승탑 보물 106호 법인국사보승탑비 등 6점으 의 적조 유물들은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상당히 성세했던 사찰로 추정되고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관광지로 훌륭한 곳이며 현존하는 유물로는 보물 5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