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석방된 한국인 피랍자 19명의 귀국을 앞두고 피랍자와 피랍자 가족,개신교에 대한 네티즌들의 여론이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피랍자들은 사건 발생 당시부터 “정부의 만류를 무시하고 위험지역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석방 이후에도 정부의 거액 몸값제공설과 일부 기독교계의 위험지역 선교 강행방침 등이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지고 있다.
▲ ‘몸값제공설’에 “테러지원국된 한국”네티즌 발끈
정부는 ‘몸값제공설’을 공식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테러범들에게 돈을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일 탈레반 고위인사가 “우리는 한국정부로부터 200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며 “이 돈으로 우리는 무기를 더 구입하고,통신망을 재정비하고,더 많은 자살테러공격을 수행하기 위한 차량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한국인 인질 19명의 석방대가가 200만달러(약19억원)라고 했고,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달 29일 “카불에선 한국협상단이 탈레반에 2000만파운드(약378억원)을 건넸다는 소문이 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 협상단이 총 7000만달러(약660억원)을 갖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출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디어다음 아고라의 네티즌 청원 코너에 제기된 “아프칸 피랍자 구출비용 청구하라”는 내용의 청원에는 1일 오후 7시 현재 2만5000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청원을 제기한 ‘금빛여우’란 네티즌은 “정부는 탈레반에 건넨 몸값에 대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구출비용 전액을 피랍자와 교회단체에 구상권을 행사해 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랍자와 피랍에 관련된 교회단체가 응분의 책임을 져야할 때”라며 “정부가 피랍자와 단체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이 또 다시 재발될 수도 있을 것이며 우리정부와 국민은 서로를 바보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인질들 때문에 한국이 테러지원국이 된 것 아니냐” “이젠 한국인들은 납치 1순위가 될 것”는 댓글이 빗발치고 있으며, “▶◀세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댓글놀이도 확산되고 있다.
또한 “선교가 아닌 봉사활동이라고 하더니 결국 탈레반에 봉사활동한 것이냐” “1인당 100만달러가 넘으니 인질들은 ‘밀리언달러 베이비’”라는 조롱성 댓글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몸값제공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만큼 일방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 “위험지역 선교 강행론” 논란확산
한국정부가 인질석방의 조건으로 아프간 선교금지를 합의한 것에 대해 일부 개신교 단체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위험지역 선교방침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탈레반이 이번 한국인 인질 납치사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며 ‘앞으로 납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같은 방침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주요 기독교계 선교책임자들 20여명이 모여 아프칸 피랍사태 사후대책에 대해 대처방안을 논의한 뒤 “정부가 탈레반과의 공식합의에서 아프간 내에서의 기독교 선교금지라는 조항에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이웃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교계로서는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교계는 향후 세계봉사연합기구를 설립하고 위기관리팀을 운영하여 모든 단기해외봉사팀의 위기적 상황에 대처할 것”이라며 “봉사자 피랍 경우, 우리는 정부가 협상창구로 나서지 않고 세계봉사연합기구 내 위기관리기구가 전면에 나서 위기관리를 함으로써 기독교봉사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제는 한국도 세계 구호, 봉사에 더욱 적극 나서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며 “이번 의료 학교 봉사팀의 순수한 정신을 기리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행하는 정부방침을 적극 존중하며 사랑의 봉사정신을 가지고 더욱 더 적극적으로 활동 할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세계선교협의회는 31일 “한국선교사 위기관리기구와 위기관리지침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들은 (해외)선교사 준비사항으로 “영문유언장 3부를 작성해,본인,선교단체,선교지의 팀장이 각각 보관한다”“선교사는 본인의 사망,부상,납치 기타 어떠한 경우에도 선교단체를 상대로 어떠한 손해배상청구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선교단체에 제출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4년 작성된 ‘선교사위기관리지침서’를 최근 개정한 가안이다.
이에 세계선교협의회 홈페이지에는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쇄도하고 있다
‘자중’이란 대화명의 네티즌은 “다음 테러에는 직접대처를 하겠다니 이번 일만해도 국제적으로 나라망신을 톡톡히 시켰는데 또 무슨 망신을 시켜려고 하냐”고 비난했다.
‘홍길동’이란 네티즌은 “협상 중일때는 한마디도 없다가 막상 협상하고 인질들이 풀려 나니까 뒷통수를 치다니”라며 “대한민국 개신교 진짜 개과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에도 싸늘한 여론
아프간 단기선교 도중 납치된 피랍자들이 소속된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여러 발언들이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의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최근 정부의 구상권 청구 방침에 대해서 찬반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일보가 일부 피랍자 가족들이 “공무원 출장비용 등까지 거론되는 것 같은데, 소방대원이 불을 끈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지 않냐” “놀러 간 사람들도 아닌데 구상권 청구가 웬 말이냐”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네티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불지르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가서 불질러 놓고 이제 와서 피해자라고 하냐”고 비판했다.
피랍자의 한 어머니가 피랍 기간 도중 딸에게 보낸 자필편지형식의 글도 인터넷에서 확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편지에는 “배형규 목사님과 심성민 형제가 흘린 피도 아프간 땅에 생명싹이 돋는 밀알로서 많은 열매가 맺어질 것이라는 벅찬 감격으로 다가왔다”라는 내용이 나와 피살된 배 목사와 심씨를 순교라고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편지에는 걱정하는 한 피랍자 가족에게 “‘이 젊은이들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데요.가문의 영광이요.아무나 할수 없는 위대한 선택을 한거예요’라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가 지난 12일 설교에서 “우리 성도들이 납치된 건 어쩌면 하나님의 계시일 수 있다” “아프간에 뿌려진 성도들의 피가 헛되지 않고, 언젠가는 복음의 열매를 맺을 것”“앞으로 3000여명의 배형규가 나와야 한다. 선교가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한 인터넷 기독교 매체의 보도도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기독교 내부 논리와 피랍자 및 가족들의 심적 고통 등을 이해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벤트성 단기선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행태에 대한 자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많다.
일부 네티즌들은 ‘피랍자스럽다’는 신조어를 만들어 “곤경에서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하거나 기타 민폐를 끼치고도 감사할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 이라는 뜻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피랍자 가족들 "귀국해 더 충격받을까" 걱정
피랍자 가족들은 석방된 피랍자들의 귀국을 앞두고 악화된 여론에 대해 상당한 심적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일이 넘는 피랍기간 동안 고초를 겪었지만 귀국과 동시에 혹독한 비난여론을 받게 될 경우 또 다른 충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글이나 도가 넘는 일부 악성댓글(악플)들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유경식씨 등 석방된 한국인 인질 19명은 1일 오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국제공항을 출발, 2일 오전 6시 40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항 입국장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받은 뒤 곧바로 경기도 안양시 샘안양병원에 입원, 정밀 건강진단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프간에서 희생된 제주 출신 고(故) 배형규 목사 장례식이 오는 6일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교회장으로 치러진다. 배 목사의 시신은 8일 오전 발인 뒤 서울대 의대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될 예정이다.
[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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