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것”

2008. 3. 24. 21:4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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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것”
[한겨레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기획전 여는 사진가 김아타
한겨레 임종업 기자 김진수 기자
» 사진가 김아타
김아타(52). 위아래 검은 옷, 박박 깎은 머리, 동그란 먹테 안경. 무척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국제적 사진가라는 명성이 겹쳐 더욱 그렇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코를 흠흠거리는 그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온다며 봄이면 늘 그렇다고 말했다.

김아타는 2000년대 해외를 오가며 유명해졌다. 지난해 뉴욕 아시안 컨템퍼러리 아트페어에서 작품 <뉴욕 타임스 스퀘어>가 역대 한국 사진 가운데 최고 가격인 21만달러(약 1억90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그 뒤 작가 스스로 “미술시장 과열로 갑자기 많이 팔리는 것도 좋지 않다”며 3일 만에 판매를 중단시켜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작 국내에는 이름이 뒤늦게 알려진 그가 지난 21일 로댕갤러리에서 국내 첫 기획전을 시작했다.

장노출·수백수천장 이미지 중첩으로
있는 것 지우고 없는 것 채워넣어
끝없이 종교와 고정관념 틀 깨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내 일의 전부

-알몸을 흙바닥에 뿌린 <해체>, 유리상자에 알몸을 가둔 <박물관> 시리즈는 웬만한 카리스마가 아니면 불가능해 보인다.

“무슨 카리스마냐? 없다. 내 작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에 대화가 있다. 대화가 내 작업의 전부라고 해도 좋다. <전쟁박물관>을 찍기 위해 상이군인들을 만나 짧게는 한달, 길게는 석달을 설득했다. 예술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정성은 통했다고 본다. 1998년 스님들이 벌거벗고 등장하는 <열반> 시리즈 역시 대화였다. 스님들한테 카리스마가 통하겠는가. 큰스님과 문답을 통해 ‘순수함’을 보여주려는 뜻이 통했다.”

» 왼쪽부터 <리듬 & 블루스>, <더 차이나 시리즈>, <박물관 프로젝트> 김아타 제공
-<최후의 만찬>, <사천왕상>, <열반> 등 작품들이 무척 종교적이다.
“그 반대다. 종교의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열두 제자의 역할을 13명이 번갈아 가며 촬영한 65컷을 포갠 것이다. 이미지가 겹치면서 예수 속에 유다가, 유다 속에 예수가 있게 된다. 2006년 미국에서 전시될 때 다 괜찮았는데 한국계 종교인들이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어떨지 주목된다.”

-종교뿐 아니라 고정관념 깨기는 소재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렇다. 법당에 부처 대신 알몸스님을 앉힌 것(열반), 진열장에 유물 대신 인간을 집어넣은 것(박물관)을 비롯해 얼음으로 만든 마오쩌둥이나 부처를 녹여버리는 것, 8시간 장노출을 통해 타임스퀘어나 천안문 광장에서 인간을 싹 비워버린 것 등이 그렇다. 내 작업은 절대적인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든 다음 이를 해체하고 새 것을 채워넣는 것이다. 세계인의 얼굴을 겹쳐놓은 <세계인> 시리즈에는 국적, 종교, 사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이 다 비벼져 있다. 다름을 보지 못하는데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갈등을 넘자는 것이다.”

-보여주는 방식이 무척 생경하고 선택된 소재가 선정적으로 보인다.

“나의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유리상자 속의 상이군인들(전쟁박물관)을 보고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은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마오쩌둥, 마릴린 몬로, 천안문 광장, 비무장지대 등 소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어야 내 의도가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만일 선정성이 목적이라면 작품이나 작가의 생명이 길지 않다.”

-강렬한 인상인데다 작품 메시지가 종교보다 강해 사교의 교주처럼 보인다.

“오해다. 나는 무척 부드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 또 나는 내 나름대로 개발한 영성수련인 이미지트레이닝에서나 작품활동에서나 제자를 두지 않는다. 나는 물줄기를 만들 뿐이다. 그것이 강이 되어 흐르고 말고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당신의 의도를 사진이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사진의 어떤 특성 때문인가.

“시각 매체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니 당연하다. 비디오, 영화가 긴 시간에 걸쳐 있는 데 비해 사진은 한장으로써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행위예술도 효과적이지만 그 순간에 끝나버린다. 나도 한때 행위예술을 했었다. 지금로서는 사진이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현재 사진이 가진 잠재력의 10%도 쓰지 못하고 있다. 다른 미디어를 겸하는 것은 사진의 진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100% 다 활용하고 나면, 더 나은 미디어를 찾아 사진을 버릴 것이다.”

-당신 작품은 연출사진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가.

“연출 비연출 구분은 무의미하다. 포스트포스트모던에서 이미 사라진 것을 한국에서는 아직도 구분하려 한다. 만일 내가 세팅한 현장에서 제3자가 와서 찍은 사진은 연출사진인가, 비연출 스냅사진인가? 얼음이 녹아 기화하는 것을 찍는데 그것이 냉동창고면 어떻고 세트장이면 어떤가. 아직도 내가 찍고자 하는 것은 특정 상황이 아니라 현상이다. 또 인생 자체가 커다란 연출이 아닌가.”

-참여자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닌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실험대상이다. 내 사유가 어떻게 변해갈지 스스로 실험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에게 요구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한다. 위험한 것은 특히 그렇다. 겨울바다 작은 바위에서 유리상자 작업을 할 때 파도가 쳐서 상자가 뒹굴면서 익사할 뻔한 적도 있다. <홀로코스트> 작업 때 한 참여자가 알몸으로 엮여서 매달리는데 항의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인류의 고난에 비하면 게임거리도 안 된다고 말해줬다. 추체험을 하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이 오히려 고마워한다.”

-<온 에어> 시리즈는 장노출과 이미지 중첩이 주요 방식이다. 작품의 변화와 디지털 사진기술의 발전이 일치해 보인다.

“그런 면이 있다.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명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절하다.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 중첩인데, 수백, 수천장의 사진을 겹치는 작업이 전에는 불가능했다. 100여장의 인물사진을 겹친 <자화상>, 1만여장의 사진을 겹친 <인디아>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그런데 하나는 보이고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여야 있다고 생각한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당신은 뉴욕에서 유명해져 한국으로 역수입된 꼴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나.

“정과 인연으로 움직이는 한국에 신경을 썼으면 현재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국내의 상황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다르지만 자기 세계를 가진 작가를 과감히 받아들이더라. 역수입이 예쁜 모습은 아니지만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나의 작품세계가 아니라 미국의 힘을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순리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독학·여행통해 작품세계 구축
미국서 얻은 명성 국내 역수입

■ 김아타는= 중학교 여름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가 빌린 카메라로 찍은 게 첫 작품. 어린 조카가 바지를 벗은 채 감나무 위에서 노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는데 현상소 주인이 잘못 찍은 사진인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학 사진동아리에서 사진을 독학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구도여행을 했다. <정신병자>(1985~86) <인간문화재>(1989~90), <세계-내-존재>(90~92) 연작이 그 결과물. 그 가운데 <정신병자> 시리즈는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친다. 의식상태를 잡고자 했지만 그가 잡은 것은 광기였기 때문. 그 뒤 폐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4년 동안 지켜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됐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역사와 이념 등 눈에 안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일관된다. 습지, 공사장, 도로 등에 벌거벗긴 인간을 흩뿌린 <해체> 시리즈(1992~95), 유리상자 안에 인간을 박제한 <박물관> 프로젝트(1995~2002)를 거쳐 현재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명제를 시각화하는 <온-에어> 시리즈를 작업 중이다.

박물관 프로젝트 가운데 베트남전쟁 상이군인들을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넣어 전쟁의 잔혹성을 드러낸 <전쟁기념관> 시리즈가 미국 사진잡지 <애퍼처>와 국제사진센터(ICP)의 눈에 띄었다. 2004년 <애퍼처>에서 사진집 <더 뮤지엄 프로젝트>가 발간되고, 2006년 국제사진센터에서 아시아 작가 최초의 개인전 ‘아타김-온 에어’가 열렸다.

그의 국제적인 명성은 곧 역수입됐지만 <박물관>, <해체> 시리즈는 아직 국내 개인 콜렉터한테 한 점도 팔지 못했다. 로댕갤러리에서 5월21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온-에어> 시리즈 31점과 그 동안의 작업들, 그리고 그 과정을 담은 영상자료를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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