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간광우병에 특히 취약한 한국인

2008. 4. 30. 21:3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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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간광우병에 취약한 한국인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국장〉


그리스 신화에는 스킬라, 히드라, 메두사 따위의 갖가지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한다. 스킬라는 다리가 열둘에다 이빨이 세 줄로 났으며 머리가 여섯 개인 바다에 사는 괴물이다. 히드라는 머리 하나를 자르면 다시 자라나는 머리가 9개 달린 괴물이다. 메두사는 머리카락은 뱀이고, 몸통은 멧돼지이며, 손은 청동으로 된 괴물이다.


그런데 광우병을 전염시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이들 괴물들을 다 모아 놓은 것 보다 더 끔찍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600도의 높은 열을 가하거나 시체를 담그는 포르말린에 넣어도 죽지 않으며, 방사선이나 자외선에도 끄떡없다. 더군다나 후추 한 알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0.001g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양으로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은 전 세계에서 인간광우병이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정상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는다. 프리온 유전자는 메치오닌(M)과 발린(V)이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으며, 프리온 유전자형은 MM형, MV형, VV형 3가지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인간광우병 환자는 모두 MM 유전자형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인의 경우에는 MM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이 38%로 알려졌으나, 한국인의 경우 MM 유전자형이 무려 95%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머리고기, 설렁탕, 곱창 등 광우병 위험부위를 즐겨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현재 전체 도축소의 0.1%만을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99.9%의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에 걸려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 아울러 걸핏하면 뼛조각과 갈비통뼈가 검출되거나 아예 수출검역증을 위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미국 내수용이 착오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즐겨먹고 있는 삼계탕이 위생검역 문제로 몇 년째 미국으로 전혀 수출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러한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사료정책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소의 시체를 갈아서 만든 육골분 사료를 돼지와 닭에게 먹이며, 돼지와 닭의 시체를 갈아서 만든 육골분 사료를 다시 곡물사료와 섞어서 소에게 먹이는 것을 법으로 허용함으로써 광우병 교차오염의 우려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예방을 위한 국내의 안전망도 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롯데마트에 이어 다음 달 9일부터는 이마트, 홈플러스 등 전국에 있는 20여개의 주요 할인점과 백화점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동시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행히 광우병 프리온도 약점은 있어, 양잿물이라고 불리는 수산화나트륨에 담그면 맥을 못 춘다. 아마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광우병 대책은 기껏해야 양잿물을 가정상비약으로 마련할 것을 권장하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미 FTA로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되어 소비자 후생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홍보 문구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 여러분, 미국산 쇠고기는 반드시 양잿물에 담가 드세요. 다만 양잿물을 마시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정부가 그것까지 책임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