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다/작은 임제록

2008. 7. 4. 17: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다



   “무엇이 순간순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경계입니까?”
“그대들이 물으려 하는 순간 벌써 달라져 버린 것이니 성품과
형상이 각각으로 나누어졌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으며, 또한 생멸의 성품도 없다.
그저 허망한 이름뿐이며 그 이름을 쓴 글자도 또한 텅 빈 것이다.
그대들은 이처럼 그 부질없는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매우 잘못 된 것이다.

설사 그러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의지해서 변화한 경계들이다.
이른바 보리의 의지와 열반의 의지와 해탈의 의지와 세 가지 불신의 의지와
경계와 지혜의 의지와 보살의 의지와 부처의 의지 등이다.”

【강설】

앞의 단락에서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아니한 것을 살아있는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묻고자 할 때 이미 달라져 버렸다.

성품과 형상도 이미 나누어졌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 소식이다.

한 생각 일어나면 벌써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고 삼라만상이 벌어진 것이다.
잘 살펴야 한다.
착각하기 쉬운 대목이다.

세간이나 출세간의 법이 다 허망하다.
실로 제행(諸行)이 무상하다.

모든 것이 생기고 없어지고 없어지고는 다시 생기는 인연에 의한 연기의 작용이다.
연기(緣起)는 공(空)이다. 공이기 때문에 또한 연기한다.

모든 존재는 이 원리대로 존재한다.
우주만유가 이 원칙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헛된 이름뿐이다.

이름이라는 글자조차 텅 비어 없다.
부질없는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아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부처나 중생이나, 성인이나 범부나, 생로병사나 상락아정(常樂我淨)이나,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모두 공이요 연기다.
독립된 자성으로서의 실체가 없다.

그래서 이 존재의 원리인
‘오온이 모두 공한 줄 알면 일체 문제가 다 해결이다’
라고
밤낮 외우고 있다.

고통으로 인하여 숨이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다시 끊어지고 하는 이와 같은 아픔도 모두가 공이다.
공이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설사 경전에서 말한 이런 저런 것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다
이 한 생각에 의지하여 변화된 가상의 경계들이다.

보리. 열반. 해탈. 법신. 보신. 화신. 경계. 지혜. 보살, 부처라는 이름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답고 성스럽고 위대한가.

그 훌륭하고 성스럽고 위대한 이름들은 모두 이 한 생각에 의지하여 변화된
헛된 가상의 경계요 이름일 뿐이다.

  보리. 열반. 해탈. 법신. 보신. 화신. 경계. 지혜. 보살, 부처 등등의
주옥같은 이름들, 다이야몬드처럼 빛나는 이름들, 이런 것들을 가상이요, 허상이요,
이름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중하다.

그동안 믿고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실은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다.
믿고 싶지가 않다.
그 동안 공을 들인 것이 너무도 아깝다[前功可惜].

그렇다고 삼을 짊어지고 금을 버릴 수[擔麻棄金]도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가르침이 진짜불교며 우리 한국불교의 전통인 것을.
이 가르침이 정통 불교인 것을.

역대 조사들이 이런 가르침에 매혹되어 임제 스님을 꿈에도 못 잊는다.
모두가 임제 스님의 법을 계승했노라고 자랑하지 않는가.



고운나비>님이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