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자의 삶 ▣
참 수행자는
"수행자"라는 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또한 참된 종교인은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다.
어떤 틀에 갇히지 않은 사람이다.
진리는 일정한 틀을 정해 놓지 않는다.
어떤 틀을 정해 놓고 이대로만 행한다면
진리인데 이 틀을 한 치라도 벗어나면
진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억압이지
진리의 자유성이 아니다.
수행하면서도
"내가 수행한다"는 그 생각조차 놓고
비우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집착을 버리는
방하착의 수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스스로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한 생각에 걸려 있으면
그 사람은 놓음을 되려 잡고 가는 사람이고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큰 집착을 가져온다.
놓고 가면서 그 놓는다는 한 생각도
다 놓고 가야하고
수행하면서 수행한다는
그 생각도 다 놓고 가야 한다.
수행을 하는 사람이
수행 안 하는 사람을 볼 때
우쭐한 마음이 생긴다거나
나 잘난 마음이 올라온다면
나는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제 스스로 수행자라는
틀에 얽매여 있는
어리석고도 위험한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학벌이나 직장 좋은 사람이
혹은 더 많이 배운 지식인이
스스로 우월감을 가진다거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향해
비웃거나 얕잡아 본다면
그건 전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상을 내는 것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한다.
수행자라는 것도 하나의 분별심일 뿐
수행자라는 분별이 있으니
수행자 아닌 사람을 얕보는 마음도 생기고
나는 수행 안 하는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차별의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수행자다운
성직자다운, 종교인다운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
그저 평범한 내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행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이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수행자답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한다면
그 때 우린 참 수행자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구도자답게 사는 것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구처럼도 아니고
깨달은 사람처럼도 아니며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어떤 관념의 틀에 사로잡힐 것도 없이
그저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수행자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나 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행자다운 삶일 것이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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