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육도윤회

2008. 7. 11. 18: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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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육도윤회

마음의 윤회는 일상의 삶 속에서 매순간 일어난다

1. 지옥은 피해망상증으로 인한 분노와 불안의 세계다.
2. 축생은 애욕에 굶주림의 세계다.
3. 탐욕과 이기심은 아귀다툼의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4. 경쟁심과 질투심이 아수라의 세계를 만든다.
5. 자아도취와 자기중심적 사고는 인간계를 대표한다.
6. 자아실현과 자아초월의 의지는 천상의 문을 연다.

마음의 윤회는 매순간 일어난다

불교의 교리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개신교나 천주교의 교리들과는 그 깊이와 폭을

달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대한 가르침은 빼놓을 수 없는 중

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육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종류의 세

계를 말합니다. 육도윤회는 바로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죽으면 살아서 행한 업보에

따라서 이 육도 가운데 어느 세계에 태어나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업을 짓고 그 업

에 따라서 다음 생의 몸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생사윤회 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몸이 불구덩이에 던져지고 칼날에 잘리는 지옥의 세계나 굶주

림에 시달리는 아귀, 짐승, 아수라, 천상의 세계를 받드시 죽어서만 겪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살아서도 날마다 육도의 세계를 경험하고 순간순간 극락과 지옥을

오가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현생에서 인간의 몸을 받았다는 것은 가장 많은 부분이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준하는 종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지, 반드시 100퍼센트 인간의 속성만 가졌다

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내재된 다양한 종자들 가운데는 동물이나 아귀, 천상의 신들

에 해당하는 품성들도 함께 지니고 있지만, 인간의 품성과 관계된 종자들이 가장 많

아서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모습을 한 우리들이 때로는 짐승보다 못한 행동도 학 때로는 거룩

하고 고귀한 행동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하루에도 수십번 수천

번 좋았다가 싫었다가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을 오가며 자비와 분노의 화신이 됩

니다.

그런데 중생의 몸은 일단 태어날 때 한번 받고 나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그 몸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으로 아무리 짐승 같은 생각과 말과 행

동을 해도 현생에서 만큼은 인간의 지위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또 불보살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행한다 해도 살아서는 역시 인간의 몸을 벗어나

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드러난 육신이 인간의 모양이면 몸은 어쩔 수 없이 인간

의 한계와 틀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음은 생각과 행동과 말에 따라서 그 즉시 모양

또한 따라서 변화합니다. 마음은 몸이 죽어서 새 몸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

다. 짐승의 업을 행하면 그 즉시 짐승의 마음이 되어 버리고 아귀의 업을 행하면 그

즉시 아귀의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몸으로 받는 업보는 그 즉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받는 업보는

그야말로 찰라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중생의 업을 행하

면 마음은 곧장 지옥을 경험하게 되고 축생의 업을 행하면 마음은 축생이 되어 지칠

줄 모르는 탐욕과 애욕에 시달리게 됩니다.

미국 뉴욕의 맨하탄 지역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마크 엡스타인이라는

사람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생사윤회를 심리학적 측면에서 마음의 육도윤회로 다음

과 같이 그려보았습니다.


1 마음의 지옥도

지옥도의 심리적 특징은 피해망상증입니다. 즉, 마음의 지옥은 상대방으로부터 인

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고통과 좌절의 상태입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상대가 나를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미움이 생기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부부지간에 자신이 가정을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뭔가 그만한 인

정과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마음이 생기고 심하면 결혼생활을 통

해 자기인생을 손해봤다는 느낌이 일어나게 됩니다. 억울하고 손해를 봤다는 생각

은 다시 분노와 미움을 낳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공격성은 다시 불안과 공포심을 초래합니다. 이와 같이 부부관계 뿐만 아니

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이 준 만큼또는 기대한 만큼 받지 못했다는, 즉

피해를 봤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미움, 분노, 공격성, 두려움,

불안의 감정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한 마음상태가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관

세음보살님이 거울을 들고 계시거나 청정한 불꽃을 들고 계시는 모습이 발견되는데

이는 지옥중생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그 고통의 원인이

바로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만이 지옥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축생도

축생도의 심리적 특징은 애욕과 사랑의 굶주림,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본

능적 움직임과 성충동입니다. 이유인즉 우리 인간만큼 태어나서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오랜세월 동안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생물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 없

을 것입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가 사랑을 받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사랑해 주는 형태는 성인 남녀 간의 사라의 모습과 아

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이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어루만져 주고···. 그래서 아

주 어린 시기에 아이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삶과 생존에

위협을 받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성인이 되면 삶을 불안해하고 쉽게 좌절하고 조그만 일에도

분노하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향성을 갖게 됩니다. 마음은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애정의 대상을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지옥도가 분노와 공포심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라면 축생도는 성욕과

무지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축생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

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책을 들고 계십니다. 책을 통한 사색과 명상으로 애욕의 본질

을 이해하고 자비로 승화시키는 것이 축생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입

니다.


3 아귀도

아귀도의 심리적 특징은 탐욕과 이기심입니다. 특히 아귀세계의 심리적 특징은 인

간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과 만족이 없는 헐떡임이 대표적입니다. 즉 아귀의 세계는

항상 현재의 자기 조건에 만족할 줄 모르고 과거나 미래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끝없

이 욕망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귀도에 그려진 관세음보살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득 담은 사발을 들고

계십니다. 아귀들처럼 모조건 원하기만 할 뿐 채월질 줄 모르는 욕망을 잠재우는 감

로의 가르침으로 아귀다툼을 멈추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 아수라

아수라의 심리적 특징은 경쟁심과 질투심입니다. 아수라의 세계는 열매가 가득 달

린 소원의 나무 위에서 질투하는 신들이 싸우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아수라의 세계는 끝없는 욕망에 의해서 냉혹하게 경쟁하고 싸우고 질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수라에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은 불을 내뿜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으로

나투십니다. 그런데 아수라와 천상의 세계는 인간도를 중심으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즉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사고로 말미암아

‘아상(我相)’을 드러내고 만족시키는 것이 좌절되거나 자기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을

때 분노하고 타인을 질투해서 공격하는 행위가 바로 아수라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

니다.

반대로 자기만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 의존하고 도

우면서 살아가는 절대 평등한 상대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는 상을 버리고

화합과 조화의 마음상태로 변화되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

실은 마음의 육도윤회를 설명하는 마크 엡스타인이 극락을 영어로 God의 영역, 아

수라는 질투하는 신들(the jealous gods)의 영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일

신과 잡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잘못된 자기 이미지, 즉 아집(我執)에 사

로잡히면 질투하고 분노하는 잡신이 되는 것이고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버림

으로서 아공(我空)을 성취하면 유일신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5 인간도

인간도의 심리적 특징은 자아도취와 자기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자아의 참모습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즉, 지금까지 알

고 있었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자기를 찾아서 끊임없는

정신적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인간영역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도에는 인간

의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자아의 참모습을 찾아 나선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

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간의 자아도취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자기가 절

대적이고 유일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그러한 자기에게 집착해서 좋

아하고 우월감과 프라이드를 가짐으로서 결과적으로 만물과 상대 의존적으로 존재

하고 절대평등한 자기의 본질을 망각하는 무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기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깨

달음의 길과 본래 모습을 망각하고 고통에 허덕이는 무지의 길 두가지가 가능합니

다.


6 극락도

극락도의 심리적 특징은 자아실현과 자아초월입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 극락은 감

각적인 기쁨과 만족, 그리고 심미적인 즐거움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

로는 생로병사가 끊어진 곳이며 정신적으로는 아상이 사라진 황홀감으로 가득한 세

계입니다. 극락도에서 나투시는 관세음보살님은 비파를 들고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

을 들려줌으로써 일체의 고통을 쉬고 존재의 극치감을 맛보는 세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극락과 아수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두 극

단의 세계를 잇는 다리는 인간의 아상입니다. 내가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영원하다

는 생각에 집착해서 자기도취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면 질투와 경쟁의 아수

라장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라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의 만물과 상호 연결되어 서로 돕고 의

지하면서 살아가는 연기적 존재라는 사실에 입각해서 행동하면 자아를 초월해서 우

주의 질서와 함께하는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몸은 똑같은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화하

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탈속에 축생의 행위나 아귀의 탐욕들을 담고 때로

는 지옥 같은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하고 질투와 경쟁심으로 온갖 에너지를 낭비하

고 그러면서도 더러는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서 따뜻한 천상의 자비심을 발휘하기

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은 순간순간 지옥과 극락을 오가면서 하루에도 끝없는 생멸을 거듭하고

육도를 윤회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전생과 내생의 모습을 궁금해 하

는데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생을 통해서 육도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 마음을

가장 많이 겪었는가가 바로 다음 생의 모습을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관상이나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내용들, 즉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관상이고 그것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정신에너지의 흐름이 바로 팔자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

다.

날마다 매순간 무지에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육도를 들락거리며 선업도

짓고 불선업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중생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

는 대로는 탐욕으로 아귀다툼을 하고 질투와 경쟁심으로 헐떡거리고 애욕으로 방황

하고 자기생각에 집착하여 손해 본 인생이라고 억울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마음을 돌려 자기를 비추어보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기도 하면서

육도의 체험들이 모두 성장을 향한 거름이고 깨달음을 위한 지혜의 화신임을 확신

한다면 문득 극락에서 그 마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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