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여자도 아니다(소승과 대승의 대화)

2008. 7. 14. 23:37일반/가족·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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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신앙 - 유마경을 중심으로(2)

 

 

종범 스님(중앙승가대학교 총장)

 

불교에서는
불성은 하나인데,
인연에 따라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는 것이지,
남성, 여성이 정해진 게 아닙니다.


유마경을 주욱 읽어 내려가다보면, 부사의품이 있습니다. 아니 불(不), 생각 사(思), 의논할 의, 불사의인데 읽을 때 부사의라고 읽습니다. '생각할 수 없다.'는 부사의품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면, 문수 보살이 요즘 식으로 도우미가 되어 유마 거사 방에 갔습니다.

가서 보니 대중은 상당히 많은데 유마 거사 방에는 의자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때 사리불이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의자가 하나밖에 없으니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 앉을꼬?'라는 생각을 했는데 유마 거사가 이를 알아 차리고 "사리불이여, 여기에 온 것이 도를 구하러 왔는가? 의자를 구하러 왔는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유가경전 ≪대학≫에서도 물유본말(物有本末)이라 하여, 사물에는 근본과 지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유종시(事有終始)라,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혜란 시종을 아는 것, 선후를 아는 것, 지소선후(知所先後) 그것을 지혜라 했습니다. 본말과 선후, 시종이 있는데 사람들은 정신이 어지러우면 뒤에 할 일을 먼저 하며, 무엇이 선(先)인지 모릅니다. 유마경에서 문수 보살과 여러 대중이 유마 거사 방에 간 것은 '문수와 유마가 만나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는가?'하는 도를 구하러 간 것이지, 의자를 구하고자 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봄철에 절에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보살님 중에는 기도는 별생각이 없고, 절 앞에 산이 있고, 산나물이 좋은 게 많아 나물 뜯는 데만 정신을 파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 비가 올 때 기도하러 온다고 절에 왔는데 많은 우산이 밖에 있으니 '내 우산이 바뀌지나 않을까?', '어디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걱정만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엔 본말이 있고 선후가 있는데, 본말선후를 혼돈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 중생세계입니다.

그래서 유마가 사리불의 이와 같은 생각을 알아 차리고 "법을 위해서 왔느냐? 의자를 위해서 왔느냐?" 하고 물은 것입니다. "법을 위해서 왔다."는 사리불의 답을 듣고 유마 거사는 잠시만 기다려라 이르고 다른 불국토 세계에 가서 의자를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유마 거사의 방이 몇 평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방인데도 3만 2천 사자좌가 유마의 방 안에 다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유마 거사 십홀방장이라고도 하는데, 십홀이라는 게 아주 짧은 거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3만 2천 사자좌에 대중이 다 앉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사의입니다.

화엄경 법성계에 보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조그마한 유마 거사 방에 3만 2천 개의 사자좌가 다 들어왔는데, 그래도 방이 남는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제한된 평수로만 보지 말고 지혜의 평수, 마음의 평수, 공덕의 평수로 보면, 작은 공간도 넓어집니다. 아무리 작은 공간도 공덕을 짓는 힘으로 보면 넓어집니다. 이것이 부사의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돈 벌었다 하면 집부터 짓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돈을 벌면 지혜롭게 써야지, 집 짓는 데 다 쓰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 차 바꾸고, 그 다음엔 골프치고…. 이것은 철학이 부족하고 신념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여기서 그 다음 단계는 타락입니다. 차라리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돈 안 버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못 벌었으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타락은 하지 않습니다. 약간 불편하게 사는 것이 타락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잘못 타락하게 되면 영영 불편한 저기 큰집에 갑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이 주어지면 큰집에 가고, 돈 벌면 큰집에 가고, 밖에 나가서 불편한 게 큰집 불편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방도 지혜롭게 보면 훨씬 넓고, 더럽게 보이는 국토도 지혜롭게 보면 훨씬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마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생활 속의 신앙입니다. 조그마한 방도 넉넉한 마음, 복된 마음, 지혜로운 마음, 공덕을 짓는 신앙으로 보면 넓어집니다. 유마 방장, 유마 거사 방 안에 3만 2천 사자좌가 다 들어가고도 남았다는 이 법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칩니

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써야지, 너무 자기 복과 지혜보다 과하게 쓰면 안 됩니다.

며칠 전에 점심을 먹는다고 큰방에서 나오면서 문을 열어놓고 점심 공양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오니 방이 선선하여 유리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와다닥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디서 이러는가 했더니 조그마한 새끼고양이가 화다닥 하고 문가로 나옵니다. 그런데 유리문은 닫혀 있고, 고양이는 그 문이 유리문인지 빈 공간인지 잘 모르니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문을 열어 주니 고양이는 쏜살같이 뛰쳐나갑니다. 이 녀석이 분수에 지나치게 들어온 것입니다.

아마 그 고양이는 호기심이 워낙 많아 제 방의 문이 열려 있으니 들어왔나 봅니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오니 가만히 숨어 있다 조용할 때 도망가려고 나온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저 녀석이 여길 안 저렇게 놀랠 일도 없는데 저렇게 들어와서, 분수를 모르고 들어와서 애를 먹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대단히 많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학자가 되려면 강아지 마음이 되어서는 도저히 안 되고, 고양이 마음이 되어야 됩니다. 강아지는 의존심이 많고 인간에게 잘 길들여지지만, 고양이는 절대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제 고집대로 합니다. 아주 독립심이 강하며 고독을 즐깁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려면 고양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묘심(描心)이 학심(學心)이다.'라는 말을 누가 했었습니다.

그 다음 유마경에 관중생품(觀衆生品). 중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마 거사 방에 하늘에서 천녀가 내려옵니다. 천녀는 하늘 아가씨입니다. 설법을 잘 하고 깨달음이 깊은 천녀인데, 사리불이 천녀를 보고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이때 천녀는 "내 몸을 12년 동안 살펴보았는데, 내 몸에서 여자라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불성(佛性)만 있지 남자 성품, 여자 성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비남비녀(非男非女)라 했습니다. 불성은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닙니다. 천녀는 12년 동안 자기 몸을 살펴보았는데도 여자라는 것은 내 몸에 없다, 손가락도 여자가 아니고 발가락도 여자가 아니고 모두 여자랄 것이 없다고 답을 합니다. 참 멋진 말입니다. 능가경에 보면 태(胎)에서 난 태생아가 이 세상에 나올 때 산문(産門)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산문은 아기가 나오는 문입니다. 아기는 문이 있어야 나올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수술해서 아기 낳는 것을 볼 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뱃 속에서 아기가 성장하면서 어디로 나가야 하나 생각을 하며 나갈 문을 미리 봐 놓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데가 확 열리며 끌려나오면 얼마나 놀라고 황당하겠습니까? 아기가 볼 때 산문은 자기가 세상에 나올 문입니다. 아무튼, 남자라 하여도 따로 남자라 할 것도 없고, 여자라 할 때도 따로 여자라 할 것도 없는

비남비녀라는 것이 부처님 지혜로 보는 남녀관입니다. 우리말 속에 남성, 여성 이렇게 남녀에다 성을 붙인 것은 불교식이 아니라 유교식입니다. 유교 경전인 중용(中庸)에 보면 하늘의 명을 일컬어 성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성이라 하며, 천명이라는 뜻에서 천성이라 합니다.[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그렇지만 우리 불교에서는 불성은 하나인데, 인연에 따라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는 것이지 남성, 여성이 정해진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선남선녀(善男善女)라고 표현합니다. 선남자, 선여인, 남성 여성 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나 여자나 다같은 불성(佛性)이라고 봅니다. 만약 남자를 따로 보고 여자를 따로 본다는 것은 망상으로 보는 겁니다.

이번에는 천녀가 신통으로 본래 남자인 사리불을 천녀 로, 천녀 자신은 남자인 사리불로 변했습니다. 이제 반대로 질문합니다. 남자로 된 천녀가 여자로 된 사리불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왜 여자의 몸을 안 바꾸느냐?" 이 질문에 여자로 변한 사리불이 "내가 어느 사이에 여자가 되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또한 인연 따라 되었을뿐 언제 여자가 되었는지 모르고 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확한 남녀관입니다. 언제 여자가 되었는지 모르고, 언제 남자가 되었는지 모르며, 본래는 남녀가 아니고 불성뿐이라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마술사가 만들어놓는 상을 환상이라 합니다, 이 환상은 마술사 생각에 의해서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집니다. 환무정상(幻無定相), 환상에는 정해진 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남자가 환상과 같이 인연 따라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며, 그래서 본성은 비남비녀라고 합니다. 이것이 불성신앙(佛性信仰)입니다. 신앙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요즘 성희롱이라는 게 있습니다. 성폭력이라는 것이 있고 성추행이란 게 있습니다. 옛날 남자 중심사회에서 하던 관습이 요즘은 법적으로 제한을 받습니다. 지방의 어느 교수는 제자와 만나서 음식 먹다가 문제되어 얼마 전에 구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성희롱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이 수두룩하고, 감옥간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남녀관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남녀관이 제대로 서려면,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불성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 터득해야 됩니다. 인연 따라 남성이 되었으면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고, 인연 따라 여성이 되었으면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그것이 선남선녀입니다. 남성이 별다르고 여성이 별다르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유마경에서는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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