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진의 과학불교] 진리에 세우는 이정표

2008. 7. 19. 23:26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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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 과학 만나면 엄청난 문화적 잠재력 표출 -

- 서구문명 한계 불교를 인류구원의 등불 삼아야 -

 

오늘날 우리는 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혁명에서 시작하여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는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고, 기초 과학은 소립자의 극미의 세계에서 우주 저쪽의 극대의 세계에 이르기 까지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혀놓았다.

 

러셀이 이야기했듯이 철학이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종교적 윤리적 견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의 세계관 혹은 철학은 자연 과학이 이해하는 세계상과 자연 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기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된다. 철학이 자연과학을 포함하던 시기가 있었듯이, 철학이나 세계관과 자연 과학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역동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과학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 삶은 물론이고 그 정신적 기반까지도 과학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마젤란의 항해, 다아윈의 진화론 등에 나타난 자연관의 변화가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상에 젖어있던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뉴턴은 과학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 혹은 신의 섭리를 증명하려고 하였고, 엥겔스는 ‘자연 변증론’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제법칙이 자연 과학과 같은 견고한 기반을 갖게 하려고 하였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이해가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자연의 이해에 기반하여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뉴턴과 엥겔스 시대의 미숙한 자연상이 아닌 현대의 성숙한 자연 과학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자원이 서구 문명에 대해 반성적 기초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과학의 세계에 사는 우리들에게 불교적 세계상이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불교의 세계관은 과거의 철학이나 다른 모든 종교와는 달리 현대 과학의 제성과와 놀라운 정합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는 서구 문명이 제공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비판을 과학 문명에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문화가 만나 융합되면 엄청난 문화적 잠재력이 표출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것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동양의 위대한 정신적 문화 유산인 불교와 서양의 과학 문명을 융합시킨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해야할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며, 이 작업은 불교적 가치관으로 서구 문명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문명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과학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아무리 긍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갖는 편견을 그대로 간직하는 한 대단히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게 된다.

 

이 편견이란 과학에 대한 철저한 믿음에 연유한다. 과학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작업을 전적으로 합리적 체계인 과학을 이용하여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불교를 증명하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차라리 과학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안하느니만 못하다.

 

사실 과학과 불교는 그 자체로서 서로 연관이 없으며, 마치 방법을 달리하여 산을 오르는 두 사람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헬기를 타고 산정상에 내린 한 사람과 한 걸음씩 걸어서 정상에 도달한 또 다른 사람과 같이, 두 사람이 지나온 길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산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자신들의 과거 역사와는 상관없이, 서로 같은 장소에 서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두 번째 사람이 파악하는 세계는 첫번째 사람이 파악하는 세계에 훨씬 못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걸어올라가는 사람의 눈에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전경들이 펼쳐지게 되었고, 그 사람이 보는 세계는 언젠가 그 산에 올랐다는 사람이 전해주었던 그 모습이었다. 아직 그 소식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했고, 그것은 아마 영원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선각자가 깨달았던 소식, 그 2천5백년을 전승되어온 빛나는 진리를 자연 과학이란 방식으로 한 걸음씩 땅만보고 걸어온 전혀 다른 발걸음이 이제 약간이나마 파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학의 업적은 선각자들의 깨달음만큼 포괄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불교가 과학적이라는 사실에 안심하며 안주해서는 안된다. 불교가 새로운 문명의 중심적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하여, 인류 구원의 대승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이것은 또한 서구에 진 과학문명의 빚을 동양이 정신으로 갚는 길이 될 것이다.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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