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수행]십삼관법(十三觀法)에 관한 연구
2008. 7. 20. 13:5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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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관법(十三觀法)에 관한 연구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
12월 한 달 동안 천도교 홈의 천도게시판에 게재한 “무체법경의 비교 분석 연구 1. 2. 3. 4.”와 “무체법경의 필자에 대한 논의”에는 誤字가 여러 개 발견됐지만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자를 확인하고도 수정하지 않은 것은, 일부 게시판이 수정되지 못하는 사정이 있어 일괄 수정하지 않은 점을 동덕 여러분께 머리 숙여 양해를 구합니다. 수정 내용을 일일이 표시하여야 하지만 전체 원고의 양이 많다보니 표시가 어렵게 되어 세심하게 정리를 하지 못 했습니다 추후 기회를 보아서 정오표를 만들겠습니다. 수정된 원고는, 위의 원고들이 모두 다 게재되어 있는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게재되는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도 위 자료실에 게재하였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동덕 여러분들께서 새 해엔 여러분 가정의 평안하심과, 하시는 일마다 다 이루어지시기를, 성심을 다하여 한울님께 심고를 드립니다.
포덕 148년 12 월 28 일. 또 한 해를 보내며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수운대신사에 의해 동학이 창도된 이후 40여 년간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이였다. 이로 인해 동학은 수운대신사와 해월신사께서 국법에 의해 참극을 당하게 됨으로, 국금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미 이 시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의암성사는 1905년에 동학의 후신이 천도교라고 그 근원을 당당하게 밝히고 대고천하 했다. 동학이 천도교라는 종교로 다시 개벽함으로써 세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이끌고 가게 되었다. 국금의 대상이었던 동학으로부터 자유 신앙이 보장되는 천도교로의 대고천하는 1910년 이전에 이미 100 만 명 이상의 교도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거대한 종교교단이 되었다’
대고천하이후 교도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교단은 이들의 올바른 신앙과 교인다운 종도로 교육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의암성사께서는 포덕 47(1906)년 2월 1일에 발표한 종령 1, 2호를 통하여 교문의 바른 근본은 올바른 신앙이라는 것과 개인의 품행을 단정히 할 것과 종규를 잘 지킬 것과 종지와 면목을 더럽히지 말 것과 성령이 깃들고 있는 육신을 잘 키우도록 당부했다. 나아가 천도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리의 본연한 성정을 수련하여 원만한 성정을 기르는 목적을 가진 종교라고 하면서 모든 교도들은 교의나 규칙을 준수하여 천연한 성령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자주 교인들이 지켜야할 덕목과 계율들을 발표하여 100만이 넘는 종도들을 신념이 있는 교인으로 육성했다. 또 포덕 48(1907)년 5월 16일에는 종령 66호로 信用, 規則, 身權, 德義의 수행 4개항을 독실하게 수행하도록 권고하였다. 또 동년 5월 31일에는 宗令 號外로 誠,,敬,信,法 四科를 체행할 것을 당부하여 내실 있는 교단으로 성장하게 했다. 포덕 48(1907)년 6월 2일에 공표한 종령 제 71호 의거 강습소 개설을 통한 교역자와 교인의 교육을 강화하려 했고 포덕 49(1908)년 6월10일에 강습규칙을 종령 10호로 발표하여 정식으로 서울에 敎理 講習所의 개설을 시작으로 하여 포덕 54(1913)년도 말까지 전국에 700 개소에 육박하는 강습소가 개설 운영되었다.(천도교회월보 통권 10호부터 통권 37호까지 참조바람.)
그러나 수많은 종도와 강습생들 중에는 아직 천도교의 종지를 이해 못할 뿐만 아니라 수련도 제대로 안 되는 경향이 있어 성사께서는 포덕 51(1910)년 6월 18일에 강습생들에게
‘그대들은 믿을 신(信 )자를 특별히 생각해야 하네. 도통을 하고 못하는 것은 첫째 믿고 믿지 않는 데 있는 것이라 믿는 마음이 없이는 아무리 하루에 주문 몇 만 독을 외워도 소용이 없는 것이야’ 하며 장차 큰일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실을 바로 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지금 강습생 제군을 보건대 아직 신념이 박약한 것이 큰 유감이다. 시일예식에 참여치 않는 사람. 上學시간에 지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러고서야 어떻게 하날님과 스승님의 감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셨다. 이런 교단의 사정에 따라 수련법문인 惟心眞悟와 十三觀法이 발표되게 되었다.
십삼관법(十三觀法)이 천도교 교도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후경(二)가 출간되기 19 개월 전인 포덕 51(1910)년 8월 19일 자로 공고된 종령 제 18호(천도교회 종령존안 pp.163-164.)와 종령 제 60호(천도교 종령집 pp.124-125.)에 의해서였다.
종령 제18호(또는 60호.)
吾道는 惟一無二하니 人天而已라 雖然이나 爲其修煉者 逸乎定軌하며 昧其正的이면 不有空消心力이요 自外乎 法界眞門이라 爲此甚懼하야 口喩文飭이 不啻申複이어늘 今此考其 修煉成績하니 人各人 天各天이요 或以黃 或以白하야 得其正的者 l 幾希라. 豈不慨歎哉 玆更欽遵 聖訓하야 一大法門을 左具宣布하니 惟我宗徒(천도교 종령집에서는 敎徒라고 함.)는 欽哉欽哉하야 以爲修煉法門大則이어다.
左具
惟心眞悟
其性如月落 隱萬頃蒼波 其心如火起 燒千里長風 月隱蒼波海國朗 火燒長風雲天晴 海朗雲晴一色空 空收色收夜無語 暗中生風天復活
十三觀法
念呪觀感化觀 我無觀天有觀 我有觀天無觀 性無觀心有觀 心無觀性有觀 性無觀心無觀. 性有觀心有觀 我先觀天後觀 我有觀天有觀 我有觀物有觀 自由觀自用觀 衆生觀福祿觀 世界觀極樂觀
右籍 玄機司長 羅龍煥 轉飭
布德 五十一年 八月 十九日
天道敎大道主 (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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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우리가 믿는 도는 오직 하나요 둘이 아니니, 사람과 하늘뿐이다. 그렇지만 수련을 하는 사람이 정해진 수련의 절차를 벗어나며 正道에 的中할 줄 모르면, 쓸데없이 마음만 소모하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스스로 法界의 眞門을 나가는 것 즉 도를 터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심히 두렵게 생각하여 말로 타이르고 글로서 가르치기를 여러 번 하였지만 지금에 와서 그 수련의 성적을 살펴보니, 사람은 사람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둘이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누렇게 됐고, 어떤 사람은 하얗게 되어(도를 터득하지 못하고 수련하기 이전의 사람 그대로 변화하지 못한 사람을 비유로 말한 것임.) 정도를 적중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다시
성사님의 훈화를 높이 받들어서 일대 법문을 선포하니 우리 종도(교도)들은 더욱 더 공경하고 근신을 해서 수련을 함에 있어 수련법문의 큰 법칙으로 삼으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아래의 글은 후에 後經(一)이 간행되었을 때, 上篇 全文이 되었다. (원본 pp. 1-10.참조) 그리고 아래와 같이, 각 행 앞에 ‘聖師曰’이 덧 붙여졌다.
惟心眞悟; 사람의 성품과 마음을 진솔하게 깨닫도록 하라.
聖師曰其性如月落 隱萬頃蒼波
聖師曰其心如火起 燒千里長風
聖師曰月隱蒼波海國朗
聖師曰火燒長風雲天晴
聖師曰海朗雲晴一色空
聖師曰空收色收夜無語
聖師曰暗中生風天復活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달이 만경창파에 떨어 져 숨어 있는 것과 같고 사람의 마음은 불길이 천리장풍처럼 일어나 모든 것을 다 태우는 것과 같다. 달이 만경창파로 숨으니 바다가 밝아지고 불이 천리장풍처럼 일어나니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진다. 바다가 밝아지고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지니 색(마음)과 공(성품)이 -(般若心經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에 根源을 둔 말.)하나가 되고(한울의 마음과 성품이 됨) 공이 받아들이고 색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니 밤은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해지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바람이 일어나니 하늘이 다시 살아난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아래의 글은 후에 後經(二)가 간행되었을 때 下篇의 전문으로서 각 각 章名이 붙여져 나뉘어 간행됐다. 원래 章名은 別行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해석이 편리하도록 필자가 장명을 이어서 기록했다.(원본 pp. 92-100.참조)
十三觀法; 性과 心의 근원적인 이치는 원래 하나인 것을, 13 가지 관점을 달리 하여 살펴 볼 수 있으니 수련자는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 십삼관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觀無量壽佛經”의 十六觀法을 생각하게 된다. 十六觀法이란 極樂往生을 위하여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觀法의 하나로, 마음을 純化시키고 極樂淨土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다고 하는 元曉이후에 불교수련의 한 방법이다. 十六觀法은 1. 日想觀 2. 水想觀 3. 地想觀 4. 寶樹觀 5. 寶地觀 6. 寶樓觀 7. 華座觀 8. 像觀 9. 眞身觀 10. 觀音觀 11. 勢至觀 12. 普觀 13. 雜想觀 14. 上輩觀 15. 中輩觀 16. 下輩觀 등을 말한다.
一章 念呪觀感化觀; 주문을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면, 어떻게 감화가 되는가를 잘 살펴보라.
二章 我無觀天有觀;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존재하는가를 잘 살펴보라.
三章 我有觀天無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四章 性無觀心有觀;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五章 心無觀性有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성품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六章 性無觀心無觀;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七章 性有觀心有觀; 성품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八章 我先觀天後觀; 먼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뒤에 하늘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九章 我有觀天有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章 我有觀物有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만물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一章 自由觀自用觀; 내 마음이 자유로우면, 어떻게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二章 衆生觀福祿觀;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복록이 내려지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三章 世界觀極樂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극락이 있겠는가를 잘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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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천도교 경전에서 ‘십삼관법(十三觀法)’을 해석한 글과 현기사에서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란 제목으로 ‘교리/교사 연구 논문. 란’에 2006(포덕147년)/3/28(화)에 게재한 글로서 그 해석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되어 여러 동덕들께서 살펴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현기사가 발표한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에는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너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필자.
1. 천도교 경전에 해석한 글
四. 十三觀法.(개정경전 pp. 508-509.)
1. 念呪觀 感化觀 주문을 생각하여 보는 것과 감화함을 보는 것
2. 我無觀 天有觀 나를 없다고 보고 한울을 있다고 보는 것
3. 我有觀 天無觀 나를 있다고 보고 한울을 없다고 보는 것
4. 性無觀 心有觀 성품을 없다고 보고 마음을 있다고 보는 것
5. 心無觀 性有觀 마음을 없다고 보고 성품을 있다고 보는 것
6. 性無觀 心無觀 성품도 없다고 보고 마음도 없다고 보는 것
7. 性有觀 心有觀 성품도 있다고 보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 것
8. 我先觀 天後觀 나를 먼저 보고 한울을 뒤에 보는 것
9. 我有觀 天有觀 나도 있다고 보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
10. 我有觀 物有觀 나도 있다고 보고 물건도 있다고 보는 것
11. 自由觀 自用觀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 것
12. 衆生觀 福祿觀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 것
13. 世界觀 極樂觀 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 것
2.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 -현 기 사
홈페이지: http://www.chondogyo.or.kr
‘교리/교사 연구논문’ 란에 게재됨. / 2006(포덕147년)/3/28(화)
의암성사 법설 “십삼관법”은 열세가지 관법(觀法) 으로 수도의 과정과 방향을 밝혀 주신 법설입니다.
“무체법경과 후경(後經)을 총 망라해서 압축한 매우 중요한 법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수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읽어서 외우고 평소에 수시로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므로써 자기 좌표를 알고 전진하는 수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경전은 아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실지로 체험하고 행해야만 참뜻을 깨닫게 되고 도성덕립의 경지에 이르게 될것입니다.
저는 최근 “십삼관법”이 매우 소중한 법설임을 마음속 깊이 느끼면서 수도하는 여러분께 다소라도 참고가 될까 해서 생각하는바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주문을 생각하여 보는 것과 감화함을 보는 것
“염주관 감화관(念呪觀 感化觀)”
세상사람들은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感化)도 모르고 무의미하게 살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잠자는 세계, 꿈꾸는 세계, 깨어 있는 세계, 이것 밖에 모릅니다.
이 세가지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것입니다.
주문을 외우면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혼탁한 세상물결에 잠겨서 한울님의 덕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다행히 천도교에 입교하여 주문을 외우므로 써 비로소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체험을 얻게 되는것입니다.
한울님과 통하는 길을 얻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이 계시다는것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가 있다는것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 今至 願爲大降)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 不忘 萬事知) ”이 주문을 지성으로 외우니까 한울님의 감응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그 세계를 홀로 감격스럽고 흐믓하게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2, 나를 없다고 보고 한울을 있다고 보는 것
“아무관 천유관(我無觀 天有觀)”
한울님의 감화를 받고 감개무량한 심경이 되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그 동안 한울님의 은덕도 모르고 금수 같이 살아온 것이 너무도 부그럽고 죄송함을 느낀 나머지 자기 자신마저 망각하고 한울님만 지극히 생각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궤도에 들어서게 되는것입니다.
만리 타향에서 외롭게 고생하다가 그리운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되니까, 너무 감개 무량해서 잠시 자기 자신을 망각한 상태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울의 권능이 사람을 이긴 (天之權能 勝人)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깊은 신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한울님께 너무 예속된 의타적 신앙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단계씩 전진하는 수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를 있다고 보고 한울을 없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무관(我有觀 天無觀)
한울님의 감화로 내 생각보다 한울님 생각을 주로 하면서 지내는 동안 한울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차차 한울님 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한울님을 부리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한울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하는 것은 좋은데 아직 육신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자만과 감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4, 성품을 없다고 보고 마음을 있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유관(性無觀 心有觀)”
한울님만 믿으면서 신앙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것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내 마음 가짐에 따라서 모든 일이 좌우 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닦아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울님 모심을 알아야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성품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마음공부에 치중하는 단계입니다.
그 동안 마음공부를 모르고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하면서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천도교 수도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도교는 한울님을 믿는 동시에 자기 마음을 닦고, 마음을 닦는 동시에 한울님을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5, 마음을 없다고 보고 성품을 있다고 보는 것
“심무관성유관(心無觀 性有觀)”
마음을 닦아서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고, 괴로운 마음을 기쁜 마음이 되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일심(一心)이 되게 하는 마음 공부를 하다 보니까 마음의 근본이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성품과 마음은 근본은 하나이지만 작용하기 전 상태를 성품이라 하고 작용하는 상태를 마음이라 한다
는것과, 성품공부를 해야 무궁한 나를 찾고 마음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도를 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성품공부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마음을 닦아서 일심이 되게 하고 나아가 무심 상태, 비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도록 정진하는 것입니다.
6, 성품도 없다고 보고 마음도 없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무관(性無觀 心無觀)”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까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는것이지 한울님 입장에서 보면 성품도 없고 마음도 없는것입니다.
수도를 걔속하므로 써 육신관념과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오로지 무형한 성령의 세계에서 살면서 모든 사물을 한울님 입장에서 관찰하는 높은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7, 성품도 있다고 보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 것
“성유관 심유관(性有觀 心有觀)”
성품도 마음도 없다고 보는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다고 보면서 성품공부와 마음공불를 병행하는 성심쌍수(性心雙修)의 높은 공부를 하는 단계입니다.
마음과 성품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심쌍방으로 잘 닦아서, 견성각심(見性覺心)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나를 먼저 보고 한울을 뒤에 보는 것
“아선관 천후관(我先觀 天後觀)”
육신의 나를 나라고 생각하면 한울이 먼저 있고 내가 뒤에 잇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래아(本來我)를 찾으면 나는 천지만물이 조판되기 전부터 있었고 천지만물은 그 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훤히 알게 될것입니다. 여기서 한울은 유형한 한울인 천지만물을 말합니다. 육신관념, 개체의식이 다 없어진 상태가 되니까 한울 보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9, 나도 있다고 보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유관(我有觀 天有觀)”
드디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나도 있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찾아 이미 천인합일이 된 상태에서 보는 것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깨닫고 보니 나와 한울, 나와 세상, 죽고 사는 것이 둘이 아니요 하나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10, 나도 있다고 보고 물건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물유관(我有觀 物有觀)”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삼라만상과 나와 일체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만물이 개개별별이 떨어져 있고 아무 관계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래의 나를 찾고 보면 천지만물이 하나의 영체(靈體), 하나의 생명체임을 알게 되고, 나와 삼라만상이 일체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것입니다.
11,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 것
“자유관 자용관(自由觀 自用觀)”
드디어 대 자유와 자용(自用)을 찾아 천지만물을 자유로 활용하며 공도공행(公道公行), 공도공용(公道公用)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철조망에 갇혀 예속된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를 잘 해서 물욕과 감정과 아집(我執)을 다 버리고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생사일여(生死一如),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닫고 견성각심(見性覺心),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되니가 매사에 순리순도 하게 되고 드디어 대 자유, 대 자용의 경지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마음의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용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 스스로 자유로워 질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내 몸 같이 여기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12,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 것
“중생관 복록관(衆生觀 福祿觀)”
오랫동안 흐린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강둑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중생이 모두 혼탁한 세상물결에 빠져 헤매고 있는 가련한 정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중생을 건져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 중생 속으로 뛰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찾고 민족과 인류를 구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사람들을 이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13,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 것
“세계관 극락관(世界觀 極樂觀)”
세계를 바라보니 세계가 너무나 어지럽고 혼란에 빠져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고, 마침내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해야 겠다는 거룩한 뜻을 갖게 되고, 또한 이것이 한울님과 스승님의 간절한 소원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인류는 한울님의 뜻도 모르고 후천운수의 근본도 모르고,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원리도 모르고, 전쟁과 질병과 가난과 온갖 부정 불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우성치고 있는것입니다.
지상천국건설을 위하여 모든힘을 기울이게 되는것입니다.
----------------------------------------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 끝.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
12월 한 달 동안 천도교 홈의 천도게시판에 게재한 “무체법경의 비교 분석 연구 1. 2. 3. 4.”와 “무체법경의 필자에 대한 논의”에는 誤字가 여러 개 발견됐지만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자를 확인하고도 수정하지 않은 것은, 일부 게시판이 수정되지 못하는 사정이 있어 일괄 수정하지 않은 점을 동덕 여러분께 머리 숙여 양해를 구합니다. 수정 내용을 일일이 표시하여야 하지만 전체 원고의 양이 많다보니 표시가 어렵게 되어 세심하게 정리를 하지 못 했습니다 추후 기회를 보아서 정오표를 만들겠습니다. 수정된 원고는, 위의 원고들이 모두 다 게재되어 있는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게재되는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도 위 자료실에 게재하였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동덕 여러분들께서 새 해엔 여러분 가정의 평안하심과, 하시는 일마다 다 이루어지시기를, 성심을 다하여 한울님께 심고를 드립니다.
포덕 148년 12 월 28 일. 또 한 해를 보내며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수운대신사에 의해 동학이 창도된 이후 40여 년간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이였다. 이로 인해 동학은 수운대신사와 해월신사께서 국법에 의해 참극을 당하게 됨으로, 국금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미 이 시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의암성사는 1905년에 동학의 후신이 천도교라고 그 근원을 당당하게 밝히고 대고천하 했다. 동학이 천도교라는 종교로 다시 개벽함으로써 세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이끌고 가게 되었다. 국금의 대상이었던 동학으로부터 자유 신앙이 보장되는 천도교로의 대고천하는 1910년 이전에 이미 100 만 명 이상의 교도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거대한 종교교단이 되었다’
대고천하이후 교도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교단은 이들의 올바른 신앙과 교인다운 종도로 교육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의암성사께서는 포덕 47(1906)년 2월 1일에 발표한 종령 1, 2호를 통하여 교문의 바른 근본은 올바른 신앙이라는 것과 개인의 품행을 단정히 할 것과 종규를 잘 지킬 것과 종지와 면목을 더럽히지 말 것과 성령이 깃들고 있는 육신을 잘 키우도록 당부했다. 나아가 천도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리의 본연한 성정을 수련하여 원만한 성정을 기르는 목적을 가진 종교라고 하면서 모든 교도들은 교의나 규칙을 준수하여 천연한 성령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자주 교인들이 지켜야할 덕목과 계율들을 발표하여 100만이 넘는 종도들을 신념이 있는 교인으로 육성했다. 또 포덕 48(1907)년 5월 16일에는 종령 66호로 信用, 規則, 身權, 德義의 수행 4개항을 독실하게 수행하도록 권고하였다. 또 동년 5월 31일에는 宗令 號外로 誠,,敬,信,法 四科를 체행할 것을 당부하여 내실 있는 교단으로 성장하게 했다. 포덕 48(1907)년 6월 2일에 공표한 종령 제 71호 의거 강습소 개설을 통한 교역자와 교인의 교육을 강화하려 했고 포덕 49(1908)년 6월10일에 강습규칙을 종령 10호로 발표하여 정식으로 서울에 敎理 講習所의 개설을 시작으로 하여 포덕 54(1913)년도 말까지 전국에 700 개소에 육박하는 강습소가 개설 운영되었다.(천도교회월보 통권 10호부터 통권 37호까지 참조바람.)
그러나 수많은 종도와 강습생들 중에는 아직 천도교의 종지를 이해 못할 뿐만 아니라 수련도 제대로 안 되는 경향이 있어 성사께서는 포덕 51(1910)년 6월 18일에 강습생들에게
‘그대들은 믿을 신(信 )자를 특별히 생각해야 하네. 도통을 하고 못하는 것은 첫째 믿고 믿지 않는 데 있는 것이라 믿는 마음이 없이는 아무리 하루에 주문 몇 만 독을 외워도 소용이 없는 것이야’ 하며 장차 큰일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실을 바로 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지금 강습생 제군을 보건대 아직 신념이 박약한 것이 큰 유감이다. 시일예식에 참여치 않는 사람. 上學시간에 지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러고서야 어떻게 하날님과 스승님의 감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셨다. 이런 교단의 사정에 따라 수련법문인 惟心眞悟와 十三觀法이 발표되게 되었다.
십삼관법(十三觀法)이 천도교 교도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후경(二)가 출간되기 19 개월 전인 포덕 51(1910)년 8월 19일 자로 공고된 종령 제 18호(천도교회 종령존안 pp.163-164.)와 종령 제 60호(천도교 종령집 pp.124-125.)에 의해서였다.
종령 제18호(또는 60호.)
吾道는 惟一無二하니 人天而已라 雖然이나 爲其修煉者 逸乎定軌하며 昧其正的이면 不有空消心力이요 自外乎 法界眞門이라 爲此甚懼하야 口喩文飭이 不啻申複이어늘 今此考其 修煉成績하니 人各人 天各天이요 或以黃 或以白하야 得其正的者 l 幾希라. 豈不慨歎哉 玆更欽遵 聖訓하야 一大法門을 左具宣布하니 惟我宗徒(천도교 종령집에서는 敎徒라고 함.)는 欽哉欽哉하야 以爲修煉法門大則이어다.
左具
惟心眞悟
其性如月落 隱萬頃蒼波 其心如火起 燒千里長風 月隱蒼波海國朗 火燒長風雲天晴 海朗雲晴一色空 空收色收夜無語 暗中生風天復活
十三觀法
念呪觀感化觀 我無觀天有觀 我有觀天無觀 性無觀心有觀 心無觀性有觀 性無觀心無觀. 性有觀心有觀 我先觀天後觀 我有觀天有觀 我有觀物有觀 自由觀自用觀 衆生觀福祿觀 世界觀極樂觀
右籍 玄機司長 羅龍煥 轉飭
布德 五十一年 八月 十九日
天道敎大道主 (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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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우리가 믿는 도는 오직 하나요 둘이 아니니, 사람과 하늘뿐이다. 그렇지만 수련을 하는 사람이 정해진 수련의 절차를 벗어나며 正道에 的中할 줄 모르면, 쓸데없이 마음만 소모하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스스로 法界의 眞門을 나가는 것 즉 도를 터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심히 두렵게 생각하여 말로 타이르고 글로서 가르치기를 여러 번 하였지만 지금에 와서 그 수련의 성적을 살펴보니, 사람은 사람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둘이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누렇게 됐고, 어떤 사람은 하얗게 되어(도를 터득하지 못하고 수련하기 이전의 사람 그대로 변화하지 못한 사람을 비유로 말한 것임.) 정도를 적중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다시
성사님의 훈화를 높이 받들어서 일대 법문을 선포하니 우리 종도(교도)들은 더욱 더 공경하고 근신을 해서 수련을 함에 있어 수련법문의 큰 법칙으로 삼으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아래의 글은 후에 後經(一)이 간행되었을 때, 上篇 全文이 되었다. (원본 pp. 1-10.참조) 그리고 아래와 같이, 각 행 앞에 ‘聖師曰’이 덧 붙여졌다.
惟心眞悟; 사람의 성품과 마음을 진솔하게 깨닫도록 하라.
聖師曰其性如月落 隱萬頃蒼波
聖師曰其心如火起 燒千里長風
聖師曰月隱蒼波海國朗
聖師曰火燒長風雲天晴
聖師曰海朗雲晴一色空
聖師曰空收色收夜無語
聖師曰暗中生風天復活
(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달이 만경창파에 떨어 져 숨어 있는 것과 같고 사람의 마음은 불길이 천리장풍처럼 일어나 모든 것을 다 태우는 것과 같다. 달이 만경창파로 숨으니 바다가 밝아지고 불이 천리장풍처럼 일어나니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진다. 바다가 밝아지고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지니 색(마음)과 공(성품)이 -(般若心經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에 根源을 둔 말.)하나가 되고(한울의 마음과 성품이 됨) 공이 받아들이고 색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니 밤은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해지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바람이 일어나니 하늘이 다시 살아난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아래의 글은 후에 後經(二)가 간행되었을 때 下篇의 전문으로서 각 각 章名이 붙여져 나뉘어 간행됐다. 원래 章名은 別行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해석이 편리하도록 필자가 장명을 이어서 기록했다.(원본 pp. 92-100.참조)
十三觀法; 性과 心의 근원적인 이치는 원래 하나인 것을, 13 가지 관점을 달리 하여 살펴 볼 수 있으니 수련자는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 십삼관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觀無量壽佛經”의 十六觀法을 생각하게 된다. 十六觀法이란 極樂往生을 위하여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觀法의 하나로, 마음을 純化시키고 極樂淨土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다고 하는 元曉이후에 불교수련의 한 방법이다. 十六觀法은 1. 日想觀 2. 水想觀 3. 地想觀 4. 寶樹觀 5. 寶地觀 6. 寶樓觀 7. 華座觀 8. 像觀 9. 眞身觀 10. 觀音觀 11. 勢至觀 12. 普觀 13. 雜想觀 14. 上輩觀 15. 中輩觀 16. 下輩觀 등을 말한다.
一章 念呪觀感化觀; 주문을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면, 어떻게 감화가 되는가를 잘 살펴보라.
二章 我無觀天有觀;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존재하는가를 잘 살펴보라.
三章 我有觀天無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四章 性無觀心有觀;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五章 心無觀性有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성품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六章 性無觀心無觀;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七章 性有觀心有觀; 성품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八章 我先觀天後觀; 먼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뒤에 하늘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九章 我有觀天有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章 我有觀物有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만물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一章 自由觀自用觀; 내 마음이 자유로우면, 어떻게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二章 衆生觀福祿觀;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복록이 내려지는가를 잘 살펴보라.
十三章 世界觀極樂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극락이 있겠는가를 잘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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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천도교 경전에서 ‘십삼관법(十三觀法)’을 해석한 글과 현기사에서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란 제목으로 ‘교리/교사 연구 논문. 란’에 2006(포덕147년)/3/28(화)에 게재한 글로서 그 해석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되어 여러 동덕들께서 살펴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현기사가 발표한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에는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너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필자.
1. 천도교 경전에 해석한 글
四. 十三觀法.(개정경전 pp. 508-509.)
1. 念呪觀 感化觀 주문을 생각하여 보는 것과 감화함을 보는 것
2. 我無觀 天有觀 나를 없다고 보고 한울을 있다고 보는 것
3. 我有觀 天無觀 나를 있다고 보고 한울을 없다고 보는 것
4. 性無觀 心有觀 성품을 없다고 보고 마음을 있다고 보는 것
5. 心無觀 性有觀 마음을 없다고 보고 성품을 있다고 보는 것
6. 性無觀 心無觀 성품도 없다고 보고 마음도 없다고 보는 것
7. 性有觀 心有觀 성품도 있다고 보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 것
8. 我先觀 天後觀 나를 먼저 보고 한울을 뒤에 보는 것
9. 我有觀 天有觀 나도 있다고 보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
10. 我有觀 物有觀 나도 있다고 보고 물건도 있다고 보는 것
11. 自由觀 自用觀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 것
12. 衆生觀 福祿觀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 것
13. 世界觀 極樂觀 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 것
2.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 -현 기 사
홈페이지: http://www.chondogyo.or.kr
‘교리/교사 연구논문’ 란에 게재됨. / 2006(포덕147년)/3/28(화)
의암성사 법설 “십삼관법”은 열세가지 관법(觀法) 으로 수도의 과정과 방향을 밝혀 주신 법설입니다.
“무체법경과 후경(後經)을 총 망라해서 압축한 매우 중요한 법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수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읽어서 외우고 평소에 수시로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므로써 자기 좌표를 알고 전진하는 수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경전은 아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실지로 체험하고 행해야만 참뜻을 깨닫게 되고 도성덕립의 경지에 이르게 될것입니다.
저는 최근 “십삼관법”이 매우 소중한 법설임을 마음속 깊이 느끼면서 수도하는 여러분께 다소라도 참고가 될까 해서 생각하는바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주문을 생각하여 보는 것과 감화함을 보는 것
“염주관 감화관(念呪觀 感化觀)”
세상사람들은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感化)도 모르고 무의미하게 살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잠자는 세계, 꿈꾸는 세계, 깨어 있는 세계, 이것 밖에 모릅니다.
이 세가지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것입니다.
주문을 외우면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혼탁한 세상물결에 잠겨서 한울님의 덕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다행히 천도교에 입교하여 주문을 외우므로 써 비로소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체험을 얻게 되는것입니다.
한울님과 통하는 길을 얻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이 계시다는것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가 있다는것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 今至 願爲大降)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 不忘 萬事知) ”이 주문을 지성으로 외우니까 한울님의 감응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그 세계를 홀로 감격스럽고 흐믓하게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2, 나를 없다고 보고 한울을 있다고 보는 것
“아무관 천유관(我無觀 天有觀)”
한울님의 감화를 받고 감개무량한 심경이 되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그 동안 한울님의 은덕도 모르고 금수 같이 살아온 것이 너무도 부그럽고 죄송함을 느낀 나머지 자기 자신마저 망각하고 한울님만 지극히 생각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궤도에 들어서게 되는것입니다.
만리 타향에서 외롭게 고생하다가 그리운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되니까, 너무 감개 무량해서 잠시 자기 자신을 망각한 상태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울의 권능이 사람을 이긴 (天之權能 勝人)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깊은 신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한울님께 너무 예속된 의타적 신앙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단계씩 전진하는 수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를 있다고 보고 한울을 없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무관(我有觀 天無觀)
한울님의 감화로 내 생각보다 한울님 생각을 주로 하면서 지내는 동안 한울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차차 한울님 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한울님을 부리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한울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하는 것은 좋은데 아직 육신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자만과 감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4, 성품을 없다고 보고 마음을 있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유관(性無觀 心有觀)”
한울님만 믿으면서 신앙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것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내 마음 가짐에 따라서 모든 일이 좌우 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닦아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울님 모심을 알아야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성품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마음공부에 치중하는 단계입니다.
그 동안 마음공부를 모르고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하면서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천도교 수도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도교는 한울님을 믿는 동시에 자기 마음을 닦고, 마음을 닦는 동시에 한울님을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5, 마음을 없다고 보고 성품을 있다고 보는 것
“심무관성유관(心無觀 性有觀)”
마음을 닦아서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고, 괴로운 마음을 기쁜 마음이 되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일심(一心)이 되게 하는 마음 공부를 하다 보니까 마음의 근본이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성품과 마음은 근본은 하나이지만 작용하기 전 상태를 성품이라 하고 작용하는 상태를 마음이라 한다
는것과, 성품공부를 해야 무궁한 나를 찾고 마음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도를 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성품공부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마음을 닦아서 일심이 되게 하고 나아가 무심 상태, 비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도록 정진하는 것입니다.
6, 성품도 없다고 보고 마음도 없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무관(性無觀 心無觀)”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까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는것이지 한울님 입장에서 보면 성품도 없고 마음도 없는것입니다.
수도를 걔속하므로 써 육신관념과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오로지 무형한 성령의 세계에서 살면서 모든 사물을 한울님 입장에서 관찰하는 높은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7, 성품도 있다고 보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 것
“성유관 심유관(性有觀 心有觀)”
성품도 마음도 없다고 보는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다고 보면서 성품공부와 마음공불를 병행하는 성심쌍수(性心雙修)의 높은 공부를 하는 단계입니다.
마음과 성품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심쌍방으로 잘 닦아서, 견성각심(見性覺心)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나를 먼저 보고 한울을 뒤에 보는 것
“아선관 천후관(我先觀 天後觀)”
육신의 나를 나라고 생각하면 한울이 먼저 있고 내가 뒤에 잇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래아(本來我)를 찾으면 나는 천지만물이 조판되기 전부터 있었고 천지만물은 그 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훤히 알게 될것입니다. 여기서 한울은 유형한 한울인 천지만물을 말합니다. 육신관념, 개체의식이 다 없어진 상태가 되니까 한울 보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9, 나도 있다고 보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유관(我有觀 天有觀)”
드디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나도 있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찾아 이미 천인합일이 된 상태에서 보는 것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깨닫고 보니 나와 한울, 나와 세상, 죽고 사는 것이 둘이 아니요 하나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10, 나도 있다고 보고 물건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물유관(我有觀 物有觀)”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삼라만상과 나와 일체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만물이 개개별별이 떨어져 있고 아무 관계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래의 나를 찾고 보면 천지만물이 하나의 영체(靈體), 하나의 생명체임을 알게 되고, 나와 삼라만상이 일체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것입니다.
11,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 것
“자유관 자용관(自由觀 自用觀)”
드디어 대 자유와 자용(自用)을 찾아 천지만물을 자유로 활용하며 공도공행(公道公行), 공도공용(公道公用)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철조망에 갇혀 예속된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를 잘 해서 물욕과 감정과 아집(我執)을 다 버리고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생사일여(生死一如),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닫고 견성각심(見性覺心),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되니가 매사에 순리순도 하게 되고 드디어 대 자유, 대 자용의 경지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마음의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용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 스스로 자유로워 질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내 몸 같이 여기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12,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 것
“중생관 복록관(衆生觀 福祿觀)”
오랫동안 흐린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강둑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중생이 모두 혼탁한 세상물결에 빠져 헤매고 있는 가련한 정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중생을 건져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 중생 속으로 뛰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찾고 민족과 인류를 구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사람들을 이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13,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 것
“세계관 극락관(世界觀 極樂觀)”
세계를 바라보니 세계가 너무나 어지럽고 혼란에 빠져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고, 마침내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해야 겠다는 거룩한 뜻을 갖게 되고, 또한 이것이 한울님과 스승님의 간절한 소원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인류는 한울님의 뜻도 모르고 후천운수의 근본도 모르고,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원리도 모르고, 전쟁과 질병과 가난과 온갖 부정 불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우성치고 있는것입니다.
지상천국건설을 위하여 모든힘을 기울이게 되는것입니다.
---------------------------------------- 십삼관법(十三觀法)에 대한 연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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