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스님 일화

2008. 7. 20. 15:1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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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이 그 사납기로 소문난 만주 개 무리를 만난 곳은 회막동에서 수분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왕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잠이 없던 수월은 밤낮없이 길을 걸었다.
그 때 만주 땅에는 마적이며 비적 떼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적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수백명 씩 떼지어 다니면서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여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곤 했다.

일제는 무장독립군을 없애려고 일본군을 간도로 투입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런 마적단에게 엄청난 돈을 주어 소위 "훈춘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비적은 마적에 비해 무리도 훨씬 적고 무기도 구식 칼 따위가 고작이었으나, 악랄하기는 마적들보다 더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불침을 놓기가 일쑤였고 이불이든 살림도구든 보이는 대로 빼앗아갔다. 심지어는 입고 있는 옷까지 벗겨갔다고 한다.

이 같은 마적이나 비적들의 세력은 흉년이 들면 더욱 성행했는데, 그것은 먹고 살길이 없는 농민들이 그들의 집단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무리들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밤이 되면 몸집이 크고 용맹스러운 만주 개를 마당과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다고 한다.
이 개는 만주에만 있는 별난 개였는데 지금은 종자가 끊어졌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개들은 마을사람들은 절대로 물지 않지만 밤에 마을로 숨어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떼로 덤벼들어 여지없이 물어 죽이곤 했다고 한다.

어찌나 날쌔고 용맹스러운지 한번 물으면 결코 놓아주지를 않아서 이들을 물리치려면 총으로 쏘아 죽이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야밤에 떼로 몰려드는 개들을 정확하게 맞추어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총을 가진 마적떼도 더러 만주개의 표적이 되어 물려 죽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때 왕청 일대는 마적떼와 비적떼들이 자주 나타나던 곳이엇다. 그런데다가 호랑이가 나타나 가끔 사람을 해치는 경우까지 있어서 사람들은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밤길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그래서 밤에 어느 마을을 들러 지나가는 나그네는 미리 그 마을 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집집마다 개들을 풀어놓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특별히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이런 부탁을 거절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풍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월은 밤낮없이 길을 걸을 뿐이었다.
낮에는 무리를 이룬 조선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밤에는 조선 사람들이
말려도 한사코 홀로 걸었다.

삶과 죽음을 던져 버린 지 오래인 수월에게는 두려움 같은 것은
아예 그림자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좁은 방을 빌려서 밤을 지새야 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편한 잠자리를 갖게 해 주려는 마음에서였을까.

개척 당시, 간도 땅에 자리잡고 있던 마을들은 대개 수십리씩 떨어져 있었다.

마적, 호랑이, 비적, 만주개, 질병의 위험에 대한 대비는 그 무렵 간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여행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간도에서 몇 해를 지낸 수월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으리라.

때는 가을, 차고 맑은 간도의 달빛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수월의 발 뿌리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기러기 떼는 북극성을 지나 조선 땅을 향해 날개짓해 가건만,
수월은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북녘의 겨울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이런 수월의 발걸음이 왕청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거리에 나와 마을을 지키고 있던 만주 개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자
집집마다 묶여있던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마을은 금새 피비린내 나는 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긴장에 휩싸인 마을 사람들은 개의 목을 동여 맨 쇠사슬을 풀었고
거품을 가득 문 개들은 같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들이 마을을 습격한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속에서 숨을 죽인 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낯선 침입자가 들어선 곳은 동구 입구 밖에서 멀지 않은 곳인지, 개들의 울음소리는 동구 밖에서 멈추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과 개들이 대치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동구밖은 조용하기만 했다. 총 소리도, 비명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말 울음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손에 칼이나 몽둥이 따위를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한 사람씩 문 밖으로 나갔다.
마을은 서리를 안고 내리는 달빛만 교교할뿐
어떤 이상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금새 무리를 이루어 개들이 뛰어나간 동구 밖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은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동구 밖 수수밭이 있는 큰 길 가에 흰 바지 저고리를 입은 한 조선 노인네가 가느다란 지팡이에 작은 몸을 기대고 서 있고, 그 앞에는 미친 듯 달려간 수십마리의 개들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네는 별다른 표정 없이 가만히 개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날 밤 뒤에도 만주 개들은 수월을 만나면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수월을 반겼다고 한다.하기는 수월이 마지막 삶을 살다 간 화엄사에서 어린 시절에 수월을 눈으로 본 노인들의 말을 빌리면 수월을 반기고 따르던 짐승은 비단 만주 개들뿐만 아니었다고 한다.

수월이 손을 내밀면 날아가던 까치도 앞을 다투어 내려앉았고 , 수월이 산에 들어가면, 꿩, 노루, 토끼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한다.심지어는 맹수 가운데서도 가장 사나운 호랑이까지도 자주 스님 곁에 찾아와 마음껏 머물다 갔다고 한다.
왜 , 그러한 짐승들까지 수월을 반기고 좋아했던 것일까?

뒷날 (북한산 도선사) 청담스님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만주 개는 세퍼드보다 더 무섭습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고, 키도 세퍼드보다 더 큰데, 그 개한테 내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수백 리 먼길을 가게 되어서 길을 묻고 싶어도 개가 나올까봐 일부러 다른 곳으로 피해서 산을 넘어서 다니고 그랬습니다.

수월스님께서 계시던 절 아랫마을에는 조선 사람들이 한 칠백 호쯤 ,
중국사람들이 한 삼백 호쯤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 말이 수월 노장님 모습이 참 기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옷도 다 떨어져서 빨간 것, 푸른 것, 흰 것들을 아무렇게나 모아 누덕누덕 기워입고, 짚신도 상주들 신 모양으로 볼록하고 머리에 쓴 것도 이상스럽게 걸레인지 모자인지 모를 정도인 걸 보면 그야말로 죽은 개도 기겁을 해 짖게 생겼는데,
그렇게 사나운 개들이 그 노장님 보고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월스님 보고는 무서운 개들도 짖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 있다는 겁니다.
탐진치의 삼독이 뿌리째 딱 떨어지면
그와 같이 호랑이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토끼나 노루가
그 사람 앉아 있는 곳에 뛰어들어오고 그러는데,
삼독이 그렇게까지 없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 때 나는 나를 보고 자꾸 짖어대는 개를 보고
속으로 참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장삼입고 수도하는 중이라면서 개가 짖도록 되어 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다 그 해물지심(害物之心)이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

"해물지심"이란 생명을 해치는 마음, 곧 살생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든 살생하는 마음이 깨끗이 떨어져 버리면
목숨 있는 것들이 모두 품안으로 들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어찌 짐승뿐이겠는가?.

출처는 [달을 듣는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