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셔봐야 하는가?***
#구렁이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청화산 원적사는 백두대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패잔병들이
이북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가끔 공비들이 출몰하였다.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오실 때면 산 입구에서 군인들이 산 출입을
통제하였으나 스님은
"달라고 하면 뭐든지 다 줄 것이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하며
고집을 피워 매번 올라가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군인들이 통제하는 곳을 통과하여
원적사로 올라가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솔길 가운데에 웬 큼직한 구렁이 한 마리가 가로누워
꼬리를 '탁 탁'바닥에 치며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께선 그 광경을 보시고는 조용히 발길을 돌리셨다.
산아래 마을에서 숙박하시고는 다음날 아침 절에 올라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절간의 곡식이란 곡식은 다 비워져 있고
부뚜막의 아궁이에는 아직도 타다 남은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비들이 다녀간 것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원적사에 석재 광산을 하는 한 신도분이 찾아왔다.
스님의 법력을 존경하여 막대한 거금을 시주하려고 온 것이다.
"이런 큰 돈을 시주하려고 마음내신 것은 이 세상에서 희유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큰 복 짓는 길을 하나 제시할 테니
잘 생각해보시구려.
이 원적사는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리 신도도 많지 않습니다.
이 큰 돈은 지금에라도 잘 쓸 수야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살든지 살지 않든지 공부하는 스님들을 위해
다달이 얼마라도 꾸준하게 시주하신다면, 스님들이 생활걱정
하지않고 공부만 할 수 있을테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소?"
그 신도는 스님의 무욕(욕심없음)과 깊은 배려에 탄복하고
스님의 말씀대로 따르게 되었다.
#다 마셔봐야 맛을 아는가
스님께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원적사로 내려오시는 중이었다.
마침 옆자리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젊은이가 앉아 있었는데
중간쯤 되어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불교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오."
"아니, 팔만대장경도 다 읽어보지 못하고서 어떻게 스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 줄 아는가?"
"......."
#당장 죽여라
원로회의장을 맡고 계실 때였다.
스님께서 성철스님을 종정으로 재추대하는 과정이었다.
봉암사 염화실로 이상한 전화가 왔다.
다른 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사람이 스님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갖고 봉암사로 전화를 한 것이다.
내용인즉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전화였다.
스님의 대답,
"내가 죽어서 우리 불교가 올바로 서고 이 사회에 이바지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와서 나를 죽여라.
그러나 그대가 어떤 이양을 구하고자 이런 행동을 한다면 인과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일로 나 스스로 부끄러운 부분이 없다.
그것은 불보살이 증명하실 것이다."
-서암스님 가르침 [소리 없는 소리]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