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비사부불(毘舍浮佛)
毘舍浮佛 同前劫 偈曰
假借四大以爲身
心本無生因境有
前境若無心亦無
罪福如幻起亦滅
(如云 心本无形 托境方生 境性亦空 心境一如)
비사부 부처님도 앞의 장엄겁 때의 부처님이다.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를 빌려서 이 몸을 삼았고, 마음이란 것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닌데 대상을 인하여 존재한다.
만약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란 것도 또한 없으므로 죄와 복도 환술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도다.
(예컨대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으나 대상에 의지하여 생겨나나니 대상의 본성도 또한 텅 비어 없으니 마음과 대상이 한결같다.’ 라고 한 말과 같다.)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으나
대상에 의지하여 생겨난다
해설 비사부 부처님에 대한 <장아함경>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6만세 일 때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종성과 성과 부모와 살 던 곳과 설법의 횟수와 제도한 사람들의 숫자와 제자들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스님이 저술한 유일한 경전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의 제목을 백운스님은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고 하였다. 즉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사람의 마음을 중간의 다른 매개체나 거리나 간격이 없이 곧 바로 가리킨 내용들 중에서 요긴하고 중요한 부분들만을 모아 놓았다는 뜻이다. 좀 더 부연하면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불교의 종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직지인심견성성불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켜서 본성을 보아 알게 하고 부처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달리 다른 수행과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사람들이 본래로 완전무결하다는 높은 뜻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이것이 선불교의 중요한 근본 종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경전의 가르침처럼 3아승지겁을 수행해서 비로소 부처가 된다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 등의 52위(位)의 지위점차를 밟아 올라가야 비로소 부처의 경지가 있다는 가르침과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선불교를 불교의 완성이라 한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조금도 더 닦을 것도 없이 그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이다.
우리들의 몸이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이 몸을 형성하고 있다. 때가 되어 그 네 가지 요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이 몸이란 아무데도 없다. 그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고, 날아가는 연기와 같고, 흩어지는 먼지와 같은 것을 착각하여 수백 년 수천 년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어리석은 인생이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같은 등등의 대상이 있으므로 인하여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 실로 대상 없는 마음이 어디에 있던가? 그러므로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도 마음도 착각에 의하여 환영처럼 보일 뿐이다. 이 얼마나 딱하고 허무한 일인가. 그런데 인간들은 죄니 복이니 하는 일에 목을 매고 있지만 죄와 복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죄와 복의 근본이 되고 뿌리가 되는 몸도 마음도 없는데 그 그림자와 같은 죄와 복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다니 딱한 일이다.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연의 기운이 있는 동안 잠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인연의 기운이 다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살다가 갔고 아버지도 그렇게 갔고 나도 또한 그렇게 갈 것이다.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해서 누가 두고두고 기억하겠는가? 기억도 잠깐이며 기억하던 사람조차도 어느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모습이며 진리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사는 일이 <직지>의 서지학적 가치보다, 그리고 세계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보다 몇 만 배 더 소중한 일임을 알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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