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6. 20: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채찍과 고삐 늘 떼놓지 않음은
멋대로 티끌세계 들어 갈까봐.
잘 길들여서 온순하게 되면
멍에 걸지 않아도 절로 사람 따르리.
[십우도 5. 牧牛]
본성이 공(空)함을 보고
몸과 마음의 습기(習氣)를 다스리기는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럴 때 서원(誓願)을 발(發)하지 않으면
다시 세상을 욕심으로 살게 된다.
욕심과 발원(發願)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 욕심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발원은 나와 남을 함께 위한 것이다.
세상을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남이야 어떻게 되었든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윈윈 전략으로서의 발원이 필요하다.
둘째,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인 것이다.
욕심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내지만,
발원은 일부러 마음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나,
머무는 바 없이 베풀겠다는 서원은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아끼고,
매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강하다.
그리하여 아상(我相)이 점점 강화된다.
하지만 발원을 세워 실천하면 아상이 점점 희석되어
결국 일체가 ‘나’인 경지가 열리는 것이다.
셋째, 욕심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발원은 과정을 즐길 줄 안다.
욕심은 조만간 눈앞에 결과가 나타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발원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실행해 나가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욕심은 자기만을 위한 것
발원은 나와 남을 위한 것
모든 생명을 제도하고, 일체의 번뇌를 끊으며,
무량한 법문을 배우고, 위없는 불도를 이루는 일이
어찌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랴?
세세생생을 두고 과정을 즐기며 연습해야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면서도 애착하지 않는 비결이 바로 발원에 있다.
이른바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이다.
집착하면 머무르게 되지만,
집착하지 않으면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머무름이 없이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절에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해도 발원을 세워 실천하지 않으면
발전적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냥 소원성취나 구걸하며 다닐 뿐이다.
구걸하는 종의 삶에서 베푸는 주인공의 삶으로 바뀌려면
능동적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예컨대, ‘법륜(法輪)을 굴리겠습니다’라고
발원을 세우면 삶이 바뀌게 된다.
첫째, 인생의 목표가 바로 선다.
둘째, 가피(加被)를 흠뻑 받는다.
셋째, 공부가 잘 된다.
넷째, 가족이 잘 된다.
다섯째, 열심히 살되 애착이 없게 된다.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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