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수행법/대행스님

2008. 12. 29. 11: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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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다운 수행방법을 일러주세요

[질문]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냥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무언가 삶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더욱이 불자라면 삶이 곧 수행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어떻게 하는 게 참다운 수행인가라는 질문을 하고보면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수행방법도 너무나 많은 것 같구요.
스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수행의 요체로 삼으십니까?


[큰스님]

우주 삼라만상이 죄다 부처의 나툼 아닌 게 없으니
부처 중생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두두물물의 형상계에는 깨달음과 미혹이 있지요.
수행문제는 미혹한 중생을 위한 것인데
나는 '일체 경계를 남김없이 주인공, 부처자리에 되돌려 놓아라'고 합니다.
그러자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그냥 믿어라, 믿어라 하는 맹목적인 게 아니라
자신을 바로 되돌아보고 가르침을 잘 받드는데서 나옵니다.
바른 믿음이야말로 수행의 첫 걸음이자 근본입니다.

그러면 나란 무엇이냐?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확연하게 풀린다면 불법의 참맛을 알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나를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나야 그냥 나지 무엇이겠느냐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부모로부터 정혈을 받아서 태어났다고 하면 이건 육신의 나이지요.
생물학에서 말하는 나이일 뿐입니다.
참고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아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생각해보세요.
목수는 집을 지을 때 어떤 집을 지을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설계한대로 짓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기의 심성이나 성격 등을 짐작하지도 못합니다.
부모의 생각대로 아기의 모습이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요.

여기서 우리는 삶의 비밀을 짐작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얼핏 생각하기에 그 비밀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나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는 연방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항상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나로 있을 때
세상은 마땅치 않고 삶은 고(苦)가 됩니다.

반면에 가르침은 그런 나 아닌 참나를 말합니다.
그런데 참나라고 하면 금방 '또 하나의 나'를 연상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나'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나누기를 좋아하는 중생심입니다.
말하기 쉽게 앞의 나를 거짓 나, 뒤의 나를 참나라고 하지만
참나와 거짓 나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오히려 거짓 나의 근본이 참나요 둘이 아니다라고 해야 옳지요.

그러기에 생멸하는 중생심, 번뇌심, 삼독심을 나로 알지 말고
그것을 되돌려 놓음으로써
참나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거짓 나, 참나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내가 주인공에 몰록 놓으라고 하니까
주인공을 무슨 이상한 '존재'로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주인공은 나의 근거이자 동시에 모든 것의 근거이기에

主人公이 아니라 주인이자 공한 主人空입니다.
내가 주인공이라 한 것은 主人空을 말함입니다.
이것 또한 이름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