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지키고 있지 말자/임제의현

2009. 1. 30. 12: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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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지키고 있지 말라 여러분! 시간은 아까운 것이다. 저 사이비 학도는 분주히 선(禪)을 배우고 도(道)를 배우며, 명칭을 파악하고 언구(言句)를 알아차리며,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며, 선지식을 찾아서 뜻으로 헤아린다. 착각하지 말라, 도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에게는 한 부모(父母)가 있을 뿐인데,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그대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라. 옛 사람이 말하기를, "아쥬냐닷타가 머리를 잃어버렸다가, 찾는 마음을 쉬어버린 곳에서 곧 할 일이 없어졌다"라 하였다. 선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도는 알아차리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선은 언어가 아니고 도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니 조사니 선지식이니 하는 것은 말일 뿐이고, 이 말들이 가리키는 것은 곧 선이니 도니 하는 말이 가리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 모든 말들이 가리키는 것은 곧 '나(我)'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글쓰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항상 '나'일 뿐, '나'에게서 모자랄 수도 없고 '나' 에게서 지나칠 수도 없다. 말로는 이렇게 '나'라고 하지만, '나'는 어떤 정해진 무엇이 아니다. 정해진 무엇이 아닌 이 '나'가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을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나'를 확인하려면, 그 무엇도 정하지 말고, 정해진 그 무엇에서 찾지도 말고, 지금 바로 정해짐 없이 정하고 있는 여기를 잘 살펴야 한다. 여기는 정해진 그 무엇도 없기 때문에 가볍기가 한이 없지만, 모든 움직임이 이 위에서 이루어지므로 무겁기가 한이 없기도 하다. 지금 여기 눈 앞에서 모든 것은 흘러가고 있다. 흘러가는 여기를 잘 살펴라. 그러면 흘러가지 않는 것이 있음을 문득 알아차릴 것이다. 바람부는 호수의 수면을 생각해 보라. 밖에서 물결을 보면 바람에 따라 마치 물결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물결 속으로 들어가면 물은 조금도 움직임 없이 그대로 고요히 있을 뿐이다, 한 없이 깊고 고요하게. '나'를 찾는 순간도 이와 같다. 의식 위에 드러나는 모든 것은 마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흘러가는 그 모양에 속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의식은 그대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고요히 있을 뿐이다, 한 없이 깊고 고요하게 문제는 흘러가는 의식의 모양만을 보고 그 위에서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헛되이 조작하여 그 허깨비에 의존하여 살아온 습관이다. 이 습관 때문에 의식의 흐름을 뚫고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모양 있는 것에만 의존하여 살아왔기 때문에 모양 없는 것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버릇이 된 과거를 지키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를 만나려면 바로 여기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 으로 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직 이 길 뿐이라는 믿음에 기대어서 두려워 말고 과거를 버리고 뛰어들어야 한다. '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찾는 것은 늘 의식의 표면 위로 향하여 있다. 물결 위에서 물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추구를 일컬어 바깥으로 찾아다닌다고 하거나 자기의 머리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물결 위에서 물결 보기를 멈추어버리면 보이는 것은 물밖에 없듯이, 바깥으로 찾아다니는 의식을 놓아버리면 그 자리가 바로 '나'이다.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나'가 문득 드러난다. 어떤 생각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마치 허공처럼 붙잡을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나'가 바로 모든 존재의 밑바닥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제 올 곳으로 온 것이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