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雪野中去눈 덮인 광야를 가는 이여

2009. 3. 20. 11: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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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復人程



눈 덮인 광야를 가는 이여
부디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그대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가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의 시랍니다.
소설가 조정래씨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시라는군요.
역시 치열하게 살았고 또 살고 있는 그다운 좌우명입니다.
그가 태백산맥을 쓰고 난 다음 사상이 문제가 되어
검사실을 수없이 불려다닐 때
그는 그들이 캐고 싶어하는 반박자료를 뭉치로 싸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이 되었던 자료에 자신의 생각을 깨알같이 써넣고
자료에 밑줄친 그의 무언의 반박에 결국 감옥에 집어넣진 못했다구요..

수많은 자료를 옆구리에 끼고 검사실로 들어가는 그를 보고
후배 소설가(기자) 한 사람은 '아아.. 저것이 조정래로구나' 했다는 군요.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그에 대해 제가 느낀 감동은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소신껏 정직하게 열심히 산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강렬한 기운이 그에겐 있었습니다.

그는 만해 한용운선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일제가 주는 배급쌀로 지은 밥을 먹기가 싫어 굶어 죽은
만해의 서릿발같은 기품을 그는 닮아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누구를 존경하고 누구를 스승으로 삶고 한 생을 사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그를 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해방 후 사상문제로 경찰에 끌려가 엉덩이의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곤경을 받았던 그의 아버지에게서 만해선사의 시를 배우고 사상을 배웠던
그가 만해선사를 존경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란 생각이 듭니다.

강하기만 할 것은 그는
다음 생에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싶다는,
그래서 수첩 속에 아내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내 아내의 시 가운데 이런 게 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데..."
하면서 그는 자신의 아내(시인 김초혜)의 시 한 편을 완벽하게 외우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손자가 생긴 후로는 '인사불성으로 손자들을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며 두 명의 손자 사진을 꺼내 보여주는
이땅의 다감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년엔 불교로 소재로한 작품으로 인생을 회향하겠다고 합니다.
인생에 대한 그의 원숙한 해석이 궁금해집니다.

그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을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도
제겐 살아가는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