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즉불, 非心非佛

2009. 3. 26. 09: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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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2일 (일) 정기법회/현정선원


< 질문 >

'마음이 곧 부처'라면 비심비불(非心非佛)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 답변 >

 질문하는 태가 대부분 그런 식이오.

"이런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저런 말과  상충되지 않습니까?"· · ·

 

 모든 말은 거짓이오. 인간의 의식과 언어로는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자리를

어쩔 수 없어서 말로 하는 거요. 그렇다고 아예 입을 처닫고 있으면

그 미혹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일깨워주겠소?

말에는 진리를 담을 수가 없소. 그러니 팔만 사천 법문을 통달해서 그 속에서 아무리

고귀하고 훌륭한 말씀을 많이 알았다 해도 전혀 어방없는 데에서 헤매고 있는 거요.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은 하도 못 알아들으니까

알아듣기 쉽게 꾸며서 한 말이고, 또 그 말에 사로잡혀 '마음이 곧 부처'라고

노상 떠들고 다니는 놈한테는 다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말한 거요.· · ·

그 마음에 아무것도 붙여두지 말라 소리요.

결국 이런 말이나 저런 말이나 한낱 중생을 이끌기 위해 방편으로 한 소리일 뿐,

전부 쓸데없는 군소리요.· · · 진리 그 자체는 절대로 언어화되고 개념화될 수 없소.

말과 글로 표현했다하면 벌써 둘째 자리인 거요. 

 말과 글로는 도무지 드러내 보일 수가 없는 것이 진리이니,

설법을 듣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 더듬고 따져서 뭔가 깨닫고 안 바가 있다면

그건 벌써 몇 바퀴 굴러 헛것을 붙잡고 좋아라 하는 거요.

들은 바가 있고 들은 자가 있으면 그건 '참된 들음'이 아니오. 

 진리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그럴싸하게 잘 설명한다 해도,
그때그때

추우면 춥다하고 더우면 덥다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것이 훨씬 진리에 가깝소.
그것이 즉각즉각 그 자리에서 진리가 응현하는 거요.


 

- 대우>거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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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몸과 입과 뜻'(身口意)을 굴리는 주재자(主宰者)가 없으며,

따라서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한 생각이나마 <조작 없는 성품>(無作之性)에 맡길 수만 있으면

'부처 지혜'는 곧 앞에 나타나서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無得無證),

이것이 바로 부처이니라.
'만화(萬化)의 근원'을 궁구하여 <하나의 참된 주처>(一眞住處)를 얻었도다.

'본체'가 공하면서도 분명하여 <감관을 거치지 않고 비추어 다하되(照盡)>,

면면하여 '티끌 경계'라는 생각을 완전히 벗어났도다.

곧장 '광명'과 '경계'를 모두 여의고 '마음'도 '법'도 모두 잊으니,

우둑하게 홀로 존귀하고 활작 트여서 원만하고 담연하도다.
생명과 거래에 있어서 '변천하는 주체'가 없으니,
문득 인연을 따르되 <걸림이 없고>(無得),

고요히 비추되 <공용이 없도다> (無功用).


              ㅡ 천 동(天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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