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업보를 소멸하는 수행이요. 밝은 운명으로 거듭나기 위한 신앙이다.
나를 둘러싼 몸과 현실의 환경, 그리고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온갖 생활여건들은 나의 업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착한 업을 지으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업을 지으면 악한 결과를 불러온다.
결국 내 자신과 환경을 만든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내 자신이다.
우리의 행위는 순간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없어 지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종자가 되고 그것이 점차 성장하여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오는데
이것이 곧 인과이고, 업보이다.
부처님 당시 어느 절에 5백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마하로 라는 늙은 스님은 하도 우둔하여 5백 명의 스님들이 가르쳤으나,
짧은 게송하나도 외우지 못하여 항상 무시를 당하고 청소만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이 5백 명의 스님들을 궁으로 초청하여 공양대접을 하는데,
마하로 스님만 제외되었다.
그러자,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우둔하여 게송 하나 외지 못하고
천대만 받으니 살아서 무엇 하랴" 며 산으로 올라가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였다.
이때 부처님께서 도안으로 보시고 그를 나무라셨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
마하로는 괴로움을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이 꾸짖었다.
"너는 과거 가섭 불 당시 5백 명의 제자를 둔
경률론 삼장에 통달한 큰 스승이었다.
하였지만 남을 무시하고, 경전의 이치를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과보로 생을 받아 날 때마다 우둔한 것이다.
그러니 제 자신을 탓해야지, 왜 몸을 해치려 하느냐,"고
나무라시며 게송을 읊으셨다.
내 몸을 길들여 지혜에 들어가면, 반드시 최상의 경지를 얻으리라.
제 몸도 이롭게 하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리요,
마음을 길들이고 몸을 바로잡으면, 어떤 소원도 이루게 되리라.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훗날 제 자신에게 돌아와 과보를 받나니
악을 행하여 자신을 부수는 것은, 금강석이 구슬을 부수는 것과 같도다.
마하로는 부처님이 비추시는 광명을 보자,
부처님 발에 예배를 올리며, 법문의 이치를 새기며 선정에든지 얼마 후
부처님 앞에서 곧 아라한 도를 증득하였다.
그러자 전생에 알고 있던 모든 경전들이 금방 되살아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마하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곧 왕궁에 들어가 공양하되, 5백 스님들의 최고 상석에 앉으라.
그들 모두가 전생에 너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네가 설법하여 그들 모두에게 도를 얻게 하고
국왕에게는 죄와 복이 있음을 확실히 믿게 하라."
그는 부처님의 분부대로 궁중으로 들어가 맨 윗자리에 앉았다.
스님들 모두는 “마하로가 미쳤다."고 야단들이었으나
왕의 초청을 받은 자리라 더 이상 소란은 없었다.
왕이 베푸는 공양이 끝나자, 마하로는 곧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는데,
법어(法語)는 단비와 같고, 폭포수처럼 유창하였다.
그러자 5백 명의 도인들은 놀라고 뉘우치며, 아라한 도를 증득하였고,
설법을 들은 왕과 신하들도 모두 수다원과를 증득 하였다고 한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은 본래부터 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불교에서는 죄란 본래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럼 인간의 고뇌와 죄는 어디서 생겨나는가?
그것은 곧 인간들의 마음에 의한 말과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 만들어 내고 스스로 받는 것이 곧 업보요, 죄이다.
그러므로 죄와 고뇌를 만든 것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죄와 업보를 소멸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
즉 내가 지었기 때문에 내가 해결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업보는 소멸되고 운명은 바뀐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을 열어 업보를 소멸한 "마하로" 스님처럼,
깊은 지혜의 불심으로 업보를 태워버리면, 모두 없어지고 만다.
마치 집체만한 풀덤이도 불길을 만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법문을 즐겨듣고 깊은 믿음으로 기도수행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바른 생각과 바른 말. 바른 행위로 인하여
점차 악업은 소멸되고 선업이 쌓여 밝은 운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
행동이 바뀌면, 운명은 저절로 바뀌게 된다.
부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을 잘하여
밝은 운명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불자가 되길 발원한다.
- 흥륜사 법륜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