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의 의미

2009. 4. 29. 11: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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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오신날의 의미 부처님 오신 날 또는 석가 탄신일(釋迦誕辰日)은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음력 4월 8일이다. 8일이므로 ‘초파일’이라고도 부르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셨다.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 걷고 나서 사방과 상하를 둘러본 부처님은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가리키며 사자후를 외쳤다. 옮기는 걸음마다 수레바퀴 같은 연꽃송이가 피어올라 그 발걸음을 받쳐주었으며.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와 하늘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수행본기경』상권, 「강신품」 이 탄생게는 생명 존재 가치의 존엄성, 절대성을 보여주고 [天上天下唯我獨尊] '괴로움'이라는 인간 존재의 실상을 일러주고 있으며 [三界皆苦] 그 괴로움 해결에 대한 부처님의 대자비심 [我當安之]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게송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께서 왜 이 사바예토에 오시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고 함은 생사윤회의 괴로움의 세계인 육도 윤회에서 한 발 나아가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아(我)와 독(獨)에 대한 해석을 올바로 해야 합니다. 아(我)라는 것은 단지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고 없는 모든 존재를 의미하며 독(獨)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줏대를 가지고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독립된 주체, 주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즉, 상대적인 개념의 독존(獨尊)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독존(獨尊)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독존(獨尊)이며, 흙은 흙대로, 돌은 돌대로, 물, 바람, 공기, 날짐승, 곤충 할 것 없이 모든 유정(有情), 무정(無情)의 존재가 스스로 온전한 독존(獨尊)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 존엄의 엄숙한 선포인 것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지금, 현실 바로 이 자체의 모습으로서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절대자나 다른 것의 힘을 빌려와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온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므로 상대를 대할 때에 남이라는 고정관념, 상이 없이 나를 대하듯 자비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동체대비라 할 수 있습니다. 출가인이고 재가인이고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모든 수행자들은 이러한 중생을 향한 동체대비의 원력이 바탕 되어야 합니다. 이 동체대비의 원력이야말로 수행자를 수행자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며 궁극의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동체대비의 원력을 마음속에 품고있는 수행자들은 어떠한 경계에 대해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기에 모두를 자비로 대하며 삼계의 대도사가 되기를 서원하고, 그렇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행자는 생사(生死)앞에서도 초연하고 당당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여기서 생사란 단순한 태어남과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고액(苦厄)을 함축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수행자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 수많은 중생들의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도록 해주며 그 괴로움을 내가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동체대비의 크신 원력으로 우리 앞에 오셨습니다. 부처님오신날 우리 생활수행자들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발심을 삶의 원력으로 세워 갈 일입니다. 원력이 없는 수행자는 참된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밝은 날, 부처님 오신날 우리도 부처님같이 밝은 동체대비의 원력을 세울 일입니다. 오늘만 부처님 오신날이 아닙니다. 날마다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나의 참생명과 마주하는 그 순간순간이 바로 부처님이 우리곁에 오시는 순간인 것입니다. 온갖 번뇌와 괴로움, 집착을 텅 비워 놓아버 리고 참나 주인공과 마주하는 순간 순간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에 한마음 다잡아 용맹스레 정진할 일입니다. 방하착 생활수행의 밝은 원력을 세울 일입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법우님들의 마음 부처님 오신날이길 기도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은 인류 모두의 축제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은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날입니다.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는 인간 능력의 무한 가능성을 확인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결국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차 행복한 삶을 보장받지 못한 채 상황이며 환경, 조건, 인연에 이끌려 잠시의 행복과 이어지는 잠시의 괴로움, 행복 불행 행복 불행... 그렇게 끊 임없이 조건에 노예가 되어 살다가 죽어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고작 추구한다는 행복조차 절대적이 지 않은 잠시의 행복일 뿐 인생 전체를 행복으로 물들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배경, 학식, 이성, 학벌 등 살아가며 행복을 잡기 위해 이런 것들을 늘려 나가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절대적인 행복 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은 항상하는 것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항상하는 것은 없었으며(제행무상) 죽지 않고 항 상 고정되게 존재하는 ‘나’를 찾았지만 누구도 항상하지 못한 채 죽어가야 했고(제법무아) 끊임없이 행복하고 싶지만 괴로움(일체개 고)이 우리 삶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나약한 존재들이 모여 자신보다 조금 더 나약한 존재들을 짓밟고 살아가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짐승들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본능과 이기가 난무한 인류의 삶이었습니 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오신 뒤로는 이런 삶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은 우리 인류에게 무한 가능성을 활짝 열어보여 주었습니다. 인간이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절대 행복이 무엇인지 를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 존재 자체는 절대 무한의 생명을 부여받고 있음을 알려 준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인류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전환이 된 것입니다. 괴로움의 삶에서 행복의 삶으로, 항상하지 않는 삶에서 항상하는 삶으로, 거짓된 어리석은 ‘나’에서 밝고 지혜로운 ‘참나’의 발견으로 인류를 안내해 준 것입니다. 그간의 인류를 거처갔던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이라도 고작 100년도 안되는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을 추구해 왔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 능력 밖의 문제라 여기며 철저히 함 묵하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가장 큰 괴로움을 도외시 한 채 작은 행복,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만을 찾고자 아웅다웅해 왔으니 인류의 영원한 행복은 어쩌면 당연히 요원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한 젊은 청년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없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인류가 가졌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음이 이해되지 않았습니 다. 역사 이래로 인류가 포기한 문제를 아니 도저히 문제일 수 조차 없을 인간 능력 밖의 문제, 모두가 신의 영역이라 생각 했던 이 문제를 한 젊은 청년 고타마가 풀어 낸 것입니다. 그 문제를 풀고 보니 인간을 비롯한 사생육도의 모든 중생들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나약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바로 신이며 부처이며 하늘이었습니다. 내가 곧 우주이며 하나가 곧 전체이고,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것 을 깨달은 것입니다. 무량수 무량광 한도 끝도 없는 무한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 저 ‘삼계개고 아당안지’를 보면 삼계의 모든 중생들이 나약하여 괴로워 함을 바로 깨달으시고는 일체 중생의 괴로움의 문제에서 풀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괴로움의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일체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헤매이기에 이 모든이를 안위케 하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발심 때문이라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그런 인류 일체 모든 중생을 구제키 위해 당 당하게 괴로움의 문제(생노병사)와 맞닥뜨려 그 문제를 풀고 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임이 확연해 진 것입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내용이지만 여기에서 ‘아(我)’는 일체의 모든 중생을 의미하며 독존(獨尊)이란 모든 존재 는 존재 그 자체로서 이미 독존임을 나타내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일체 모든 중생은 낱낱이 모두가 온전 히 스스로 존귀함을 이르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 모습 그대로 독존이라는 것입니다. 물은 물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 람대로, 미물은 미물대로... 모든 존재가 그렇듯 스스로 온전히 존귀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외부에서 행복이며 자유를 구 해 왔습니다.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학식 등이 높으면 높을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여겨왔지만, 사실은 지금의 이 모습 그대로 우리는 누구나 독존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외부적인 여건에 따라 울고 웃는, 행복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종속적인 존재가 아닌 참으로 존귀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인류는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새롭게 발견 한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하늘이며 우주나 바라문 신에 의해 지배받는 그런 종속적이고 나약한 존재가 아닌, 우리 안에 우주가 있고 세계가 있으며 진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날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은 그런 밝은 날입니 다. 이제 앞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보여주고 가신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앞에 고개숙여 귀의하며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청정하고 밝은 수행자(僧)가 되야 합니다. 그런 밝은 수행자가 되고자 크게 발심(發心)하는 날이 바로 오늘 부처님오신날인 것입니다. 길은 이미 밝게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이 바른 길임을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셨습니 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올곧게 펼쳐져 있는 길을 따라 퇴전함 없이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 길을 향해 늦추지 않고 정진 또 정진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해야 할 공통의 서원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밝은 날, 부처님 오신날 우리 생활수행자들이 나아가야 할 밝은 깨침의 길인 것입니다. -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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